차라리 나, 먼 곳으로 떠날 거야, 어제의 난 소멸되고 또 다른 나.김바다 〈N. Surf Part 1〉
김바다 ‘N. Surf’ 中
김바다의 팬들이라면 그의 멋진 컴백을 바라고, 바랬을 것이다. MBC 〈나는 가수다〉 경연에 나섰던 시나위의 김바다, 그리고 작년 음악 페스티벌에 오른 아트 오브 파티스의 김바다는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서는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과거는 과거이고 앞으로 할 음악은 많기 때문이다. 김바다는 훌훌 털고 첫 솔로앨범으로 돌아왔다. 〈N. Surf Part 1〉에 담긴 각기 다른 스타일의 네 곡은 김바다의 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렉트로니카로 채색된 록 사운드, 댄서블한 비트가 강조된 음악은 김바다의 목소리를 거치면 심오한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N. Surf’는 근래 보기 드문 섹시한 곡. 솔로 아티스트로서 김바다의 면모를 보여준 이 앨범은 최근 국내에 늘어나고 있는 일렉트로 팝 밴드들에게 선배로서 관록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용필만 멋진 컴백이 아니다. 김바다 역시 멋지게 돌아왔다.
나윤선 〈Lento〉
최근 나윤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여태껏 이 땅에서 재즈 뮤지션에게 이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이게 단지 ‘한류’ 내지 ‘국위선양’이 조명 받는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윤선의 표현력은 재즈를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의 가슴도 뜨겁게 만들 정도로 대단하다. 처음 그녀의 공연을 봤을 때에는 무당과 같은 귀기에 놀랐다. 이후 뮤지컬을 보는듯한 퍼포먼스에 요동쳤으며, 나중에 얼핏 가요적인 느낌의 친숙함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느리게’라는 뜻의 앨범 명처럼 8집 〈Lento〉에서 나윤선은 내부로 수렴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물론 ‘Momento Magico’와 같은 곡에서는 이제 자신의 소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스캣을 들려주기도 한다. 나인 인치 네일스를 커버한 ‘Hurt’는 3집 〈Down By Love〉에 담긴 ‘Manic Depression’(지미 헨드릭스 곡) 만큼이나 멋지다. ‘아리랑’이 가슴을 움직였다면 나윤선의 전작들도 들어봤으면 한다. 재즈를 몰라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가을방학 〈선명〉
가을방학의 2집. 가을방학의 친숙함이 무엇이 특별하냐고 대놓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정바비가 만들고 계피가 노래한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와 같은 곡들이 꽤 다양한 층의 사람들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관객층을 보면 유독 여성들이 가을방학을 편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은근히 중년 남성들도 계피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1집〈가을방학〉 이후〈실내악 외출〉로 살짝 외출을 시도한 가을방학은 2집 〈선명〉에서 더욱 선명해진 색을 들려준다. 전보다 기타가 더욱 강조되고, 사운드는 미니멀해졌지만, 가을방학 특유의 가슴을 간질이는 감성은 짙어졌다. 비슷한 편성의 여타 팀들과 다른 점이 뭐냐고 물으면 ‘3월의 마른 모래’, ‘진주’와 같은 노래를 들어보라고 대답하면 될 듯. 그리고 가사를 읽으며 들어보길.
정은채 〈정은채〉
정은채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주연을 맡은 그 정은채다. 처음에 앨범재킷만 흘겨보고 음반을 들었을 때에는 그 안에 담긴 음악이 꽤 괜찮게 들렸다. 그런데 정은채가 여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이런저런 선입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앨범을 반복해 듣다보니 쓸데없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윤, 린 등과 작업했던 권영찬이 프로듀서 및 작곡으로 참여했으며 정은채는 전곡(다섯 곡)의 가사를 썼다. 정은채가 작곡한 두 곡의 멜로디가 권영찬이 만든 세 곡보다 본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그녀의 가사는 여배우의 허세가 아닌 진솔한 일기로 읽힌다. 음악을 듣고 있자니 아직 보지 않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보고 싶어진다. 물론 이 음반과 그 영화는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겠지만.
시크릿 〈Letter From Secret〉
올해로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걸그룹들이 상큼하고 발랄한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시크릿의 네 번째 미니앨범 〈Letter From Secret〉은 편지지 형태로 된 앨범 외관부터 내용물까지 ‘달달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시크릿은 매 앨범마다 매번 다른 콘셉트를 펼쳐왔다. 그래서 때로는 여타 걸그룹들 사이에서 정체성이 모호해 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시크릿은 섹시함보다는 귀여운 이미지를 더 잘 소화한다고 생각한다. 전효성도 귀엽지 아니한가? 이번 앨범은 발랄했던 ‘별빛달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앨범의 완성도는 전작보다 훨씬 나아졌다. 시크릿은 이번 앨범을 통해 과거 g.o.d처럼 폭넓게 사랑받는 아이돌그룹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과연?
이광석 〈파란 시간〉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의 2집. 민중가요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래 가사에 ‘해고통지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만 하는 것은 지겹지 않나? 민중가요도 그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노래할 뿐이다. 〈파란 시간〉은 민중가요라기보다는 이광석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가볍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심각하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가? 하지만 그의 노래가 공감이 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곳이 걱정 투성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마시며 듣기에 좋은 노래들. 하지만 희망을 노래하며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고 보채기도 한다.
스눕 라이언 〈Reincarnated〉
스눕 독이 아니다. 스눕 라이언이다. ‘갱스터 랩의 레전드’ 스눕 독이 이름을 바꾸고 낸 열두 번째 정규앨범. 개명을 한 스눕은 앨범에서 레게, 정확히는 댄스홀을 선보이고 있다. 밥 말리의 아들 데미안 말리의 음악 스타일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 본래 댄스홀은 힙합의 근원 중 하나다. 스눕이 근원을 돌아간 이유는 아프리카로의 회귀가 골자인 ‘라스타파리 운동’ 때문이라고 한다. 스눕은 “진정한 레게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가지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위험한 남자였던 그가 어쩌다 평화전도사가 됐는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음악은 출중하다. 수록곡 ‘Get Away’는 2NE1과 함께 노래해도 어울릴 법하다. 5월 4일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에서 둘의 협연을 기대해본다.
피닉스 〈Bankrupt!〉
프랑스 록밴드 피닉스의 정규 5집. 피닉스는 데뷔앨범에 실린 ‘Too Young’이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실리는 등 관심을 모았다. 이후 매 앨범마다 승승장구하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다프트 펑크, 에어와 함께 프랑스의 팝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피닉스의 일렉트로니카와 록이 결합한 사운드는 로맨틱하다. 역시 프랑스의 음악이라서 그럴까? 타이틀곡 ‘Entertainment’는 놀랍게도 한국 드라마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 도입부 멜로디는 비디오게임 ‘쿵푸’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그네들에겐 동양에 대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고정돼 있나보다. 우리가 프랑스 음악에 대해 로맨틱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윌아이엠 〈#willpower〉
윌아이엠은 현재 팝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프로듀서다. 최근에는 케이팝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등 상당한 오지랖을 자랑한다.(실제로 윌아이엠의 사운드는 케이팝 트렌드와 잘 맞닿아있다) 윌아이엠이 이끄는 블랙 아이드 피스는 21세기의 첫 십년 동안 빌보드차트에서 가장 사랑받았다. 간혹 윌아이엠의 음악을 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앨범에는 저스틴 비버,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 브라운 등 최고의 팝스타들을 비롯해 2NE1이 참여했다. 한편 크리스 브라운이 피처링한 ‘Let’s Go’에 대해서는 윌아이엠이 표절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음악은 블랙 아이드 피스보다 일렉트로니카 성향이 훨씬 강한 전형적인 클럽음악이다. ‘UMF Korea’에서 공연하면 안성맞춤일 음악.
리사 발란트 〈Stay A While〉
이달에 내한공연을 갖는 재즈 보컬리스트 리사 발란트의 앨범. 독일 출신인 리사 발란트는 고국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 사랑받아왔다. 청자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음색은 그녀의 가장 큰 매력. 그야말로 5월에 어울리는 재즈보컬이다. 앨범에서는 도어즈의 ‘Light My Fire’, 롤링 스톤즈의 ‘As Tears Go By’, 비틀즈의 ‘Here There And Evreywhere’ 등 유명 팝 넘버들이 담겼다. 리사 발란트는 편안하게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한다. 굳이 원곡을 재현하기보다는 재즈의 맛을 잘 살린 보컬을 들려준다. 발란트는 앨범 〈Wowowonder〉에서는 리아나의 ‘Umbrella’를 커버하는 등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이 앨범에서는 프린스의 야하디야한 노래 ‘Kiss’를 재즈로 해석한 것이 재미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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