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분짜리 드라마를 60분짜리 비주얼 극강의 CF로 착각을 일으키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주인공 조인성, 송혜교 이름만으로도 심장이 온전치 않은데 드라마는 전개될수록 아드레날린까지 치솟게 한다. 시각장애인 오영(송혜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으로 머뭇거리는 오빠인 오수(조인성)를 끝끝내 옆에 눕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대담하게 훑는다. 그것도 한 뼘, 두 뼘… 감질나게. 만져야만 알 수 있다며 시각장애인이 만지는 건 무죄라나? 그러고는 오수 옆에 누워 다시 한번 특유의 순수함을 발산한다. “행복했어. 오빠 니가 와서.”

오수는 영혼 없이 사는 사기꾼, 영은 주위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여자다. 사는 의미는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야 하는 남자, 죽고 싶었지만 오빠를 만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여자가 만들어내는 매력은 특별한 장소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얽히며 사랑이 움트는 드라마 속 그 장소를 찾아갔다.







오영의 집은 수백억 상속녀의 집답게 으리으리하다. 메이드와 집사도 모두 이곳에 살고 있고 갑자기 오빠라며 쳐들어온 수나 수의 오른팔 역할을 자처하는 진성(김범)도 각각 따로 방을 쓰는 설정이니 어림짐작만으로도 규모가 그려진다. 유럽의 고성 같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이곳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수목원 ‘제이드가든’이다. 가만 보니 여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로 따지면 벌써 4번째 작품을 하고 있는 나름 베테랑 촬영지기 때문. 황정음 노민석의 <풀하우스 2>, 장근석 윤아의 <사랑비> 등 한류스타들이 다녀간 곳으로 새로운 한류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단다. 영이의 집은 제이드가든 내 방문객센터다. 우체국 아저씨를 맞이하거나, 지팡이를 휘둘러 수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곳 그 알싸한 장면 속 모든 장소가 방문객센터다. 함정은 내부에 있다. 드라마에서는 집안으로 들어가면 유럽풍 디자인이 인상적인 실내가 펼쳐지지만 실상은 아기자기한 상품을 파는 기념품점이다. 2층은 레스토랑과 카페, 연회장. 드라마와 다르면 재미없지 않냐고? 제이드가든은 수목원이다. 수목원은 봄에 가장 아름답다. 게다가 수와 같은 8등신 꽃미남과 함께라면 그 어디든 아름답지 않겠는가. 휴, 나만의 오빠 너님은 대체 어디에.



o 제이드가든 7호선 상봉역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탄 후 굴봉산역에 내려 제이드가든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주소 :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 산 111번지 / 문의 : 033-260-8300)



6살 때 엄마와 헤어진 영. 언젠가 자신을 만나러 올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장소는 화원이다. 엄마가 떠난 후 버려진 채 남겨져 있는 그곳은 마치 속은 텅 빈 채 몸만 성장해버린 영과 닮아있다.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그곳을 자물쇠로 꼭꼭 채우며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영에게 의도야 어찌됐든 변화의 씨앗을 뿌린 것은 수다. 함께 꽃을 심으며 잿빛 화원을 무지갯빛으로 바꾸는 순간 영은 환하게 미소짓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숨어있다. 앞이 안 보이는 영이 지팡이를 더듬어 찾아가는 화원은 실제로 영의 집과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전혀 다른 곳이다. 영의 집은 강원도 춘천에 있지만 화원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택식물원이다. 드라마 속 아름다운 분위기 덕분에 알려지긴 했으나 사실 한택식물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식물들을 한가득 담고 있는 ‘보물’ 식물원이다. 호주에서만 볼 수 있다는 호주바오밥나무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다. 화원 속 비밀장소, 엄마가 촬영한 영상과 그동안 영이 자신의 성장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관하는 비밀의 방도 이곳에 있지 않냐고? 맞다. 하지만 그 방 역시 세트다. 비밀의 방으로 통하는 나무 문짝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o 한택식물원 남부터미널에서 백암터미널 행 버스 이용. 백암터미널에서 10-4번 버스를 타고 한택식물원 하차.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산 153-1 / 문의 : 031-333-3558)



큰일을 하려면 언제나 모의의 장소가 필요한 법. 수가 뒤집어쓴 누명으로 치러야 할 값은 무려 78억 원이다. 이 돈을 구하기 위해 가짜 오빠 행세를 하는 등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장소는 어두컴컴한 지하골방이 아닌 달달한 초콜릿 향이 가득한 디 초콜릿 커피숍이다. 디 초콜릿 커피 청담점과 논현역점이 그 주인공. 드라마 속에서 이 커피숍은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우는 곳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의 동창회 모임을 비롯해 희선(정은지)이 수의 감정을 눈치채고 질투의 화신이 돼 영에게 수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면, 무철이 수를 협박하는 장면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이며 극의 발판이 되는 곳이다. 수와 영이 TV를 보며 서로에게 달달한 초콜릿을 먹여주는 비주얼쇼크 장면을 기억하는가? 수의 입에 쏙 들어간 그 초콜릿도 디 초콜릿 커피가 자랑하는 초콜릿 세트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내 입술에 묻은 초콜릿 가루를 손으로 닦아주는 사람이 수라고. 눈을 뜨고 싶지 않다. 내 눈앞에는 언제부터 책상 위에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차가운 커피와 마감을 재촉하는 원고가 남아 있으니까.

o 디 초콜릿 커피 디 초콜릿 청담점은 지하철 7호선 청담역 9번출구에서 5분거리, 논현점은 7호선 논현역 7번 출구 옆에 위치한다. (※위 사진은 청담점에서 촬영)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63-18 경원빌딩 1층(청담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50-1번지 논현빌딩 1층(논현역점) / 문의 : 02-551-3866(청담점), 02-515-8384(논현역점)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