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시티>는 김반장(드럼, 보컬)을 구심점으로 김태국(베이스, 퍼커션, 보컬) 윤갑열(기타, 퍼커션, 보컬), 조명진(키보드, 퍼커션) 정상권(퍼커션, 보컬)의 5인조 라인업을 구축했다. 서울 수유리 산동네 지하 연습실에서 탄생한 거칠지만 즐겁고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넘쳐났던 이들의 리듬 향연은 기분 좋은 에너지를 한껏 뿜어댔다. 2004년 결성 이후 9년간 쌈지, 펜타포트, 지산 등 국내 중요 페스티벌과 일본 후쿠오카 썬셋 라이브, 태국 방콕 팻 페스티벌과 스마일리 레게 페스티벌, 프랑스 골든 터치 사운드시스템파티, 자메이카 밥 말리 몬쓰 셀러브레이션 페스티벌,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와 캐나디언뮤직위크 등 세계 유수의 각종 페스티발에 초청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레게밴드로 우뚝 섰다.

봄기운이 화사했던 지난 4월 2일, 열흘 일정의 해외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한 <윈디시티> 2기 멤버들을 만나러 서울 정릉 골에 위치한 그들의 아지트로 찾아갔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순수한 영혼의 교감으로 공동체를 이룬 멤버들의 음악여정과 새롭게 방향타를 잡은 음악적 지향점을 듣기위한 인터뷰는 4시간 정도 이어졌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차 마시고, 라면 끓어먹고, 밤까지 구워먹으며 자유분방하게 진행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인터뷰를 하는 건지, 함께 어울려 노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즐겁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적산가옥인 이들의 아지트는 정확하게 70년대에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완벽한 아날로그 공간이었다.

독특한 ‘김반장’의 예명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그는 22세 때 신용카드 대금이 장기간 연체 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다. 은행 추신부로 명단이 넘어가자 매일같이 “빨리 돈 갚으라.”고 그에게 독촉 전화를 했던 사람이 있다. 은행 추신부의 ‘김반장’이다. “은행 추신부에 반장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당시 하이텔 동호인들의 이름이 영어에서 한글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시절을 생각하며 닉을 ‘김반장’으로 지었어요.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예명으로 유명했었습니다(웃음).”



2장의 정규앨범을 비롯해 국내외적으로 발표한 다양한 싱글 음반들을 통해 <윈디시티>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사운드를 펼쳐내는 레게밴드로 각인되었다. 특히 2005년 발표한 1집 ‘러브 레코드’는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과 노래부문을 휩쓸며 2관왕에 등극한 한국 레게음악의 명반이다. 2008년 김반장은 <윈디시티>와는 별개로 국내 최초의 Reggae/Dub밴드 <아이앤아이장단>을 결성했다. 당시 프랑스 낭트에서 한국여자친구 마고(본명 박재연)를 만나러 온 Reggae/Dub음악가이자 엔지니어 화가였던 프랑소와(한국명 화랑)과 김반장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이에 멜로디카와 북을 치는 스마일리, 건반 주나영(후에 준백으로 교체), 보컬 장군이 가세해 밴드 라인업을 구성했다.

‘더브(dub)’란 미리 녹음한 보컬과 악기소리에 ‘딜레이’와 ‘리버브’ 같은 이펙팅 효과를 사용해 환상적인 음향 효과를 내는 마치 음악으로 공기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김반장과 화랑 그리고 화랑의 아내가 된 마고 세 사람은 앨범작업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2008년 소량 발매된 <아이앤아이장단>의 미니앨범 < Culture Tree >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국내에 장단마니아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외국의 레게 저널에 소개되어 미국의 대형레이블 ‘어니비 레코드’에서 월드와이드하게 유통해 해외에서 더 유명한 한국 레게 앨범이 되었다. 또한 밥 말리가 있던 자메이카 레게의 산실인 < 12Tribe Of Israel >에 소개되어 현지에서 ‘뉴 사운드’라는 뜨거운 찬사를 받았고, 시카고의 Dub 라디오 스테이션에 방송된 이후 ‘한국의 룻츠 더브 뮤직’이라는 호평을, 독일의 레게/일렉트로니카 잡지 ‘riddim’과 ‘DE:BUG’에서는 스페셜 이슈로 다뤘다. EP와 2010년 1집의 민화적이고 다채로운 캐릭터가 복잡하게 장식된 커버 이미지는 마고가 정성스럽게 수작업으로 그려 강렬하고 유니크한 앨범 아트웍 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실험적 사운드를 예감시켰다.

2009년 <윈디시티>는 멤버들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모든 멤버가 떠나고 휴지기에 들어간다. “전 멤버들과 음악을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제가 미숙하고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음악을 좀 더 전통적인 흙으로 가자고 주장했고 갑열, 상권은 세련된 도시적인 분위기로 가고 싶다고 해 결국 갈라섰습니다.” 김반장은 멤버들의 분열 후 레게의 본고장인 자메이카로 떠나 음악적 영감을 받고 돌아왔다. 결론은 한국의 전통과 뿌리를 찾아가는 토종 레게였다. 새로운 멤버들을 규합해 6인조로 거듭났다. 이전의 <윈디시티>음악은 기본 소스를 김반장이 도맡아 작업했지만 지금은 멤버 모두가 참여해 다채로운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원활한 밴드 운영을 위해 리더는 라국산이 맡았다.

라국산의 예명은 서울 이태원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박스에다 조잡한 글씨로 ‘작명’이라 쓰고 영업한 기인 노숙자가 작명했다. “마치 진담처럼 밥 말리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하기에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걸 알았는데 소리를 음파 진동으로 이야기하고 음악은 에너지라는 말에 솔깃했어요. 그 노숙자형이 내게 ‘강석현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살았냐’며 라국산으로 바꾸라 했습니다. 이번 해외공연에서도 시카고에 갔을 때 홈리스로 보이는 흑인과 흥미롭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국적을 초월해 숙자씨들과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라국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를 걸어가다 힙합 노래듣고 얼어붙었다. 그래서 용돈 5천원을 모아 미국 모타운 사단의 박스달러로 유명했던 5인조 훼밀리 밴드 ‘드바지DEBARGE’의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흑인음악이 뭔지도 모르고 잡지를 탐독하며 열심히 들었던 당시, 화곡동 동네 친구들과 우장산에 올라가 노래와 랩을 따라했는데 반주가 없어 심심해 돌맹이를 두드리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2004년 포항에 있던 해병대에서 직업군인으로 4년간 복무했을 때도 그는 음악만 들었다. 바다가 좋아 전역 후에도 한동안 포항에 살았던 그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그곳 페스티발에서 악기상들이 팔던 북을 처음 만져본 후 타악기 음악에 관심을 가진 그는 2009년 ‘아이엔아이장단’의 공연을 보면서 김반장의 제의로 밴드에 참여했다.

2009년부터 3인조 월드뮤직밴드 수리수리마하수리로 활동하고 있는 홍일점 멤버 백여사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는 지금도 밴드에서 드럼과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고 친할머니는 장고를 치고 어머니는 사물놀이까지 했단다. 그녀는 분당 서현고 밴드부에 들어가면서 드럼을 쳤다. 악보가 없어 직접 만들면서 작곡을 배우고 싶어 한양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음악은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000년에 휴학을 하고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인도 바라나시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작곡을 잘하려면 모든 악기를 한번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곳에서 인도타악기 타블라를 2개월 정도 배우고 돌아왔지요. 그런데 복학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다시 휴학을 하고 캐나다로 떠나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현지에서 만난 음악친구들과 밴드 ‘펑크라솔’ 만들었습니다. 1년 후 귀국하니 부모님이 학교를 마치라고 해 복학 후 밴드 세션을 시작했습니다.”

작곡가로 먹고 살려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사운드 디자인을 배우러 캐나다 벤쿠버로 다시 유학을 다녀와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회사에 있던 벤쿠버 학교선배가 우리나라는 이 일에 대한 인식도 지원도 없어 돈을 벌지 못하니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유치원 영어선생님으로 1년 쯤 일하다 에너지가 딸려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시간강사로 한예종 무용과에서 즉흥 춤 강의를 하던 중 2008년 <아이앤아이장단> 연주에 반해 스마일 리(송영우)의 군 입대로 생긴 공백이 틈타 2009년에 라국산과 같이 멤버로 들어왔습니다. 이미 1집 녹음을 끝내고 마스터링 작업 중이어서 앨범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오진우(기타)는 중학교 2학년 때 점심값을 아껴 검은색 베스타 일렉트릭 기타를 샀지만 보수적인 부모님 때문에 방치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PC통신에서 알게 된 제주도 밴드공연에 구경을 간 후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클럽 레드제플린에 놀러갔다 5인조 밴드 ‘전기 쓰레빠’에서 리듬기타를 연주하게 되었다. 이후 제주상고에 스쿨밴드 ‘MEG’가 생겨 2개의 밴드 활동을 병행하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제주 한라대 음악과에 입학한 그는 밴드<썬 플라워>를 결성해 블루스, 펑크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해군군악대에 다녀온 그는 수업에는 관심 없이 기타만 쳐 제주 관광대 음악예술과에 재입학을 했다. 이때 밴드 <선플라워>의 멤버 형이 기타강사로 와 연습실에서 죽치고 살며 밴드 <이디라마> 2집과 양정원 2집에 세션으로 참여했다. 오진우도 <아이엔아이장단>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던 차에 2011년 제주도 가시리문화회관에 내려 온 <윈디시티>의 공연에서 잼을 하게 된 인연으로 하던 일 다 그만두고 상경해 정식 멤버가 되었다.

신서방(본명 신재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0년부터 영화 특수 분장 일을 했다. 2009년에는 특수분장 전문회사 ‘제페토’를 만들어 독립해 <여고괴담 3편>에 참여했고 <7광구> 진행도중 나왔다. 사업은 잘되었지만 교통사고에다 애인과 헤어지고 집안도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는 개인적 우환이 한꺼번에 터져서 심신이 고단했기 때문. 그래서 모아놓은 돈으로 인도로 3개월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현지에서 문제가 생겼다. 열차에서 자고 일어나니 주머니에 동전 3개만 남고 여권, P3, 현금을 다 도둑맞았던 것.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라나시. “잃을게 없다고 갔는데 다 털리고 나니 허무했어요. 잃을게 엄청 있었던 거죠. 갠지즈 강에서 시신 태우는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죽어서 태워지는데 나는 젊고 짱짱한데 뭐가 무섭냐?’는 생각이 들어 현지 식당에서 일하면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북인도의 마날리에서 2달간 머물렀는데 우연하게 길거리에서 러시아 히피가 부르는 ‘디저리드’ 소리가 귀가 아닌 발끝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당시 인도를 여행했던 외국친구들이 많이 듣던 노래가 레게였다. 귀국 후 그 음악들을 다시 듣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홍대 앞 리뎁션 바를 찾았다. “레게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하니 인도에서 들었던 ‘디저리드’ 악기소리가 생각나 직접 만들었어요. 근데 소리내기가 엄청 힘들어 유투브를 보고 익혀 한강에 나가서 불기도 했죠. 그러다 한국에도 레게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윈디시티였어요.” 2010년 겨울, 그는 라국산이 서울 정릉 달분이 누나 집에서 ‘와다다 사운드 시스템’ 단체의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곳에서 ‘손이 있으면 북을 칠 수 있다“는 김반장의 권유로 북을 처음 쳤다. 돈 벌이만 생각하는 각박한 삶이 싫었던 그는 분리가 아닌 하나 되는 음악인 레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마음이 끌려 2011년 밴드에 합류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노선택은 서울 옥수동 달동네의 잘나가는 꼬마 춤꾼이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술 한 잔 하고 와서 5백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사촌들끼리 디스코 춤을 추게 경쟁을 시켰어요(웃음). 동네 선술집의 빨간 조명 아래서 흘러나오던 뽕짝 사운드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지요. 그때 듣던 사운드가 지금보다 따뜻한 사운드였던 것 같아요.” 인물이 출중한 그의 아버지 노광길씨는 가수 백난아에게 레슨을 받고 밤무대 가수활동을 했단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eye in the sky’ 듣고 기타 리프에 반했다. 친구 집에서 세고비아 기타를 만지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동아방송대에 들어간 그의 동기들 중에는 빅마마, 브라운아이드걸즈 멤버로 유명해진 가수들이 꽤 있다. 2010년 노선택은 3인조 어쿠스틱 포크 락 밴드 <그릇>을 결성해 콘트라(더블)베이스를 맡고 있다. 그때 거주했던 성산1동의 해바라기 마트를 오가면서 백여사와 친분이 생겨 2012년 9월 밴드에 합류했다.





2012년 <윈디시티>는 새 출발을 알리는 디지털 싱글 <잔치 레게>를 통해 한국의 구수하고 토속적인 향취를 레게리듬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한국형 레게음악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로 ‘청국장 레게’라 정체성을 규정한 이들은 사람과 세상이 하나가 되어 흥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잔치’라는 이미지로 그려냈다. 연이어 발표한 미니앨범 ‘모십니다’는 마치 무당이 굿을 시작하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의 노래다. 이 노래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들을 합체해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감겨오는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굳이 다양한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장단과 ‘삼태기’, ‘잔치’ 같은 단어만으로 한국적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이들의 새로운 사운드에는 ‘흥’과 ‘한’이라는 한국적 향내가 진동한다. <윈디시티>는 서로 “상처 주고 상처를 받고”, 온통 “걱정 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중을 향해 “함께 만나 신나게 흥나게 뛰어 노세”라고 노래하고 있다.



윈디시티 프로필

1기(2004년) 김반장(보컬, 드럼) 김태국(베이스 기타, 퍼커션, 보컬), 정상권(퍼커션, 보컬), 윤갑열(기타, 퍼커션, 보컬) 조명진(키보드, 퍼커션)

2기(2012년) 김반장, 라국산(퍼커션, 코러스), 백여사(백정현. 키보드, 멜로디카), 신재원(신서방)(퍼커션, 디저리두, 코러스), 오진우(기타), 김태헌(베이스)

3기(2012년) 노선택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2005년 1집 ‘러브 레코드’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부문 수상

2010년 다큐멘터리 ‘저수지의 개들’ 1기 멤버 출연

소속 레이블 비빔프로덕션, 루비살롱레코드



사진제공. 민트페이퍼



글, 사진.최규성(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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