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굉장히 평범했다. 너무 잘생겨서 현실감이 떨어진다거나, 개성이 너무 뚜렷해서 쉽게 기억되는 그런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 <지구를 지켜라!>, <예의없는 것들>, <박쥐>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신하균은 자신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재능의 소유자’임을 증명해보였다.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와, 바보와 광인, 해맑은 청년 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변신은 실로 놀라웠다. ‘4차원적인’, ‘비현실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앞에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하지만 정작 신하균 자신은 “캐릭터만으로 작품을 선택한 적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그건 바로, ‘새로운 것’.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스릴러부터 멜로, 액션, 코믹 등 다양한 장르가 경계를 가르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있다. 작품의 규모나 캐릭터의 비중이 들쑥날쑥 한 것도 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다.
그가 영화 <런닝맨>을 선택한 것 역시, 이전엔 맛보지 못한 본격 액션 영화이기 때문이다. <런닝맨>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20세기 폭스’가 메인 투자하는 첫 한국영화라는 점에서도 이목을 끈다. 자연스럽게 ‘신하균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게 아닌가’란 기대와 호기심이 따른다. 하지만 주위의 호들갑스러운 반응 속에서 신하균은 오히려 담담하다. “성과가 좋다면 해외에도 소개될 수 있겠으나, 그건 추후의 문제예요. 한국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게 먼저 아니겠어요?” 물론 욕심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기대는 해요. 제가 출연하는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영화라는 게 그러려고 하는 거잖아요.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고 즐기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해외 관객들도 보고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런 그가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음악은 어떤 빛깔일까. 깊은 밤과 어울리는 음악들로 빼곡하다.
1. Sean Lenon의 < Friendly Fire >
신하균의 첫 번째 추천 앨범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사이에서 태어난 션 레논의 < Friendly Fire >다. “션 레논의 곡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잔상이 남겨요. 존 레논과는 또 다른, 섬세함과 연약함이 극대화된 그의 목소리도 그렇고…” 존 레논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뮤지션 션 레논. 그가 오롯이 한 명의 뮤지션으로 인정받게 해 주였던 앨범이 바로 2집 < Friendly Fire >다. 이 앨범 수록곡 중 신하균의 마음을 유독 사로잡는 곡은 션 레논의 대표곡이기도 한 ‘Parachute’다. “‘Parachute’를 가만히 듣다 보면 노래 속 주인공을 위로하고 싶어져요. 분명 우울하고 슬픈 곡이지만, 그 안에서 위로의 힘을 찾을 수 있달까…”
2. Radiohead의 < OK Computer >
“라디오헤드가 ‘Creep’으로 첫 등장했을 때도 그 파장은 대단했지만, 이 앨범이야말로 마치 ‘내가 라디오헤드다’를 대변하는 듯해요. ‘No surprise’, ‘Paranoid Android’, ‘Karma Police’… 1997년도에 나왔으니 벌써 16년 정도 됐네요. 90년대를 관통해온 청춘들에게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는 시대의 명반을 동시기에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이 아니까 싶어요.” 라디오헤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절정으로 보여준 앨범으로 평가받는 게, 3집 < OK Computer >다. 영미권에서만 1000만장 이상이 팔린 기념비적인 음반으로 라디오헤드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선보인 첫 앨범이기도 하다. 음울하면서도 서정적인 발라드 곡 ‘No Surprises’는 정려원, 김C 등 많은 뮤지션들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추천하기도.
3. Portishead의 < Dummy >
그가 세 번째로 추천한 음반은 1994년 발표된 포티쉐드의 데뷔 앨범 < Dummy >다. “몽환적이기도, 나른하기도, 끈적하기도, 아름답기도 한 곡들을 듣고 있다 보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이 앨범이 지닌 치명적인 중독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일단 듣기 시작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으니 좀 위험한 앨범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혹 잠 못 드는 밤이라면 베스 기븐스의 보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4. Lana Del Rey의 < Born to die >
“추천 곡들 중 가장 최근 앨범이자, 가장 어린 아티스트”일 거라고 신하균이 소개한 라나 델 레이는 1986년생이다. 유튜브에 올린 자작곡 ‘Video Games’의 비디오가 2,7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디바로, 음악계 뿐 아니라 패션브랜드 모델로도 발탁돼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매혹적인 목소리와 도발적인 미모를 겸비한 아티스트인 셈. “사실 노래만 들었을 때는 이렇게 나이가 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단순히 성숙하다를 넘어서, 듣는 이를 강하게 잡아끄는 완숙미가 느껴지는 보컬이었죠. 특히 그녀의 목소리로 듣는 ‘Blue Velvet’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Blue Velvet’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블루 벨벳>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곡으로 라나 델 레이만의 목소리로 새롭게 탄생됐다.
5. Doors의 < The doors >
신하균의 마지막 추천 음반은 1960년대 히피, 그리고 사이키델릭 세대를 대표했던 록그룹 도어즈의 < The doors >다. 그의 말대로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짐 모리슨이고, 도어즈의 명반이에요. 이것만으로 ‘The End’이지 않을까요?” 역사상 가장 화려한 데뷔 앨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 The doors >는 수록곡 ‘Light My Fire’의 빌보드 1위 등극과 함께 도어즈 시대를 열었다. 불꽃처럼 짧은 생을 살다 간 짐 모리슨의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올리버 스톤이 1991년 제작한 영화 <도어즈>와 2009년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웬 유어 스트레인지>를 추천한다.
“주연을 일찍부터 해서 그런지, 책임감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대신 외적인 부분들. 가령, 현장 분위기 같은 건 이제 선배로서 신경을 써야 한다고 느끼죠. 예전에는 혼자 몰입하고, 혼자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실없는 농담도 잘 던지고 그래요.” 실제로 낯을 많이 가려 인터뷰하기 어려운 배우로 유명했던 그는 요즘 위트 넘치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길 정도로 넉살이 늘었다. 반면 배우 신하균이 아닌, 인간 신하균으로서의 그는 아직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침투하길 좋아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화성에서 온 이 남자’는 아직도 지구와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다.
글.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이진혁 eleve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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