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우리는 예상치 못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미모를 갖춘 김범은 데뷔 이후 줄곧 강속구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다 어느 순간 긴 휴식에 들어가게 됐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은 그에게는 자신을 담금질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누구보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했던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긴 대화를 끝낸 후, 자신이 그때까지 쌓아놓은 성취가 주변의 여러 도움을 통해 빚어진 결과물이라는 겸허한 현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그는 자신을 좀 더 책임감 강한 배우로 성장 시켰다. 달라진 작품선택은 그의 변화를 반영한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속 천사 이국수, 영화 <사이코메트리>의 사이코메트리 김준은 “배우로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4년 전 어느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소감으로 했던 그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실천하게 된 결과다.



김범은 서극 감독의 영화 <적인걸 프리퀄>로 외국에서의 작업이라는 도전도 해냈으며, 노희경 작가와 두 번째 호흡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다음이 더 궁금해지는 배우로 자신을 각인시키게 됐다. 이 깊은 변화의 와중에 있는 김범은 자신을 이제 막 연기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며 매력 또한 하나하나 되짚어나가게 된다며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 5편의 소중한 영화를 추천했다.

1.데블스 에드버킷
1998년 | 테일러 핵포드

김범: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두 배우입니다. 또 악마를 변호한다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던 영화였죠. 이 영화를 보며 알 파치노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라는 캐릭터 연기를 보고 존경했던 기억이 나요.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와 내면 갈등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영화설명: 무패행진의 신출내기 변호사 케빈(키아누 리브스)은 자신도 유죄라고 확신하는 피의자마저 무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자다. 이후 존 밀튼 투자회사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스카웃, 아내 매리 앤(샤를리즈 테론)과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이곳에서 케빈은 밀튼사 회장 존 밀튼(알 파치노)의 지시로 회사의 주요 고객들의 변호를 맡게 되는데, 승리가 거듭될수록 그 안의 선과 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내 역시 점점 이상해진다.

2.뱀파이어와의 인터뷰
1994년 | 닐 조던

김범: 각종 뱀파이어물, 좀비물들이 각광을 받는 요즘 뱀파이어 캐릭터에 남다른 욕심과 관심이 있는 저는 20년 가까이 된 이 영화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국내에서도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톰 아저씨’ 톰 크루즈와 뱀파이어와 정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 인물 중 한 명인 브래드 피트와의 만남. 톰 크루즈의 첫 내한 홍보 영화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종족 번식을 위해 힘없는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물지 않는 뱀파이어의 규율을 깨고 어린 뱀파이어와 두 남자 뱀파이어의 몇 백년 동안 이어지는 우정, 사랑 이야기들은 매력으로 다가왔죠.



영화설명: 200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청년 루이스(브래드 피트)는 가족을 잃고 죽음을 갈망하던 남자 레스타트(톰 크루즈)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뱀파이어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이들의 삶에 소녀 클로디아(커스틴 던스트)도 끼어든다. 그녀 또한 뱀파이어가 돼 세 가족이 완성된 것. 그러나 자신의 삶에 반항을 하게 된 클로디아는 자신을 창조한 레스타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맞물리는 감정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3.사랑의 블랙홀
1993년 | 해롤드 래미스

김범: 여러 영화기법을 물론 CG 등 기술발전에 따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타임슬립 영화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죠. 헌데 이 영화는 요즘의 타임슬립 영화와 뗄 수 없는 SF 장르가 아닌 로맨스물이라는 점이 독특해요. 자기중심적이던 주인공이 내일이 없는 오늘만 존재하는 나날의 연속을 겪으며 오늘과 내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영화설명: 자기중심적인 TV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는 성촉절 취재 차 펜실베니아의 한 마을로 가는데, 폭설로 하루를 더 머물게 된 마을에서 매일 아침 오늘이 반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꾸만 반복되는 성촉절 축제에 심술을 부리며 훼방을 놓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자꾸만 반복되는 일상은 그를 지치게 만들어버린다.

4.메멘토
2001년 | 크리스토퍼 놀란

김범: <인셉션>,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더불어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독특한 구성과 소재의 영화죠. 시간의 왜곡된 흐름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자아분열, 기억상실에 대한 혼란, 사건에 대한 추리에 따른 분노, 상실감, 슬픔 등 여러 폭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영화는 영화 평론가들을 비롯한 여러 관객들의 영화 분석욕구를 자아내게 했던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시간에 대해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저런 생각을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설명: 전직 보험관이었던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되고 만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사고, 범인은 존G라는 것이 전부. 범인을 잡기 위한 집념으로 그는 메모와 문신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5.김범의 다섯 번째 추천: 인 타임
2011년 | 앤드류 니콜

김범: 긴 휴식기간 이후 <빠담빠담>이라는 작품을 만나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천사로서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던 제게 정말 참신한 소재로 다가왔던 영화였어요. 모든 화폐단위가 시간이 돼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시간으로 지불하며 그 속에서도 시간의 가치로 인한 싸움들, 빈익빈 부익부 현상까지도 그려내었던 영화였죠. <가타카>로도 유명한 앤드류 니콜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조금은 미흡한 구성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소재의 참신함과 현재 내가 느끼는 시간의 소중함이라는 소재에 추천을 하게 됐습니다.



영화설명: 근 미래, 25세가 된 인간은 노화를 멈추고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게 되면 그 즉시 사망하고 만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시간으로 계산해야 하는 이 세계에서 부자는 몇 세대에 걸쳐 영생을 누리지만 가난한 자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만 한다.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급기야 살인자의 누명을 쓰게 되고 금융사 회장의 딸 실비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인질로 삼아 탈출에 성공한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실천하는 배우, 김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과거, 한 선생님이 했던 “영화는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신의 영역을 침범해 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작업이다. 몇 백 년 전 조선시대로 돌아가기도 하며 먼 미래의 가상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 배우는 천사가 되기도 하며 악마의 형상을 하기도 하지 않나.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 자아를 초월하는 작업이 바로 영화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으며 배우로서 제2의 도약을 하고 있는 김범은 자신의 소중한 영화들을 펼치며 무엇보다 영화와 배우가 가진 힘을 믿노라고 말했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현재의 소중함을 잘 알게 됐다는 그는 그래서 더 나은 미래와 누구보다 가까이 향해 있다.



글.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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