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드라마 <직장의 신> 포스터
직장인의 현실을 적절하게 풍자하고 코믹 요소로 버무린 KBS 2TV 월화드라마 < 직장의 신 >을 향한 반응이 뜨겁다.일본 드라마 < 파견의 품격 >을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에서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은 주인공 미스김 역을 맡은 김혜수의 파격적인 코믹연기. 데뷔 27년 차 여배우의 빨간내복 열연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미덕은 굴지의 장류계 대기업 Y-JANG 영업팀을 통해 오늘날 평범한 직장인들의 현실을 어루만졌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원작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룬 정규직 직원과 계약직 직원 간 간극을 처절하게 드러낸다. < 직장의 신 > 매회 오프닝을 장식하는 내레이션은 IMF 이후 16년이 지난 현재, 우리 노동시장의 아픈 현실을 브리핑한다. 대기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가고, 그 가운데 생겨난 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인류(?)의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장황한 내레이션을 뒤로하고 시작되는 매회 에피소드에는 “꿈이 스펙을 넘는다”며 열심히 노력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는 계약직 정주리(정유미)의 허탈한 현실이 담겨있다. 정규직의 절반도 못 미치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은 들어오기 무섭게 학자금 대출 이자로 빠져나가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 겨우 들어온 회사에서는 정규직들 잔심부름하기 바쁘며 그마저도 3개월 이후 계약이 갱신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같이 입사한 정규직 동기는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나는 시집가면 그만둘 거야”라고 하는 현실이라니,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 직장의 신 >은 계약직을 향한 사회의 싸늘한 차별뿐만 아니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계약직들이 그토록 바라는 정규직의 삶 역시도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또 다른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Y-JANG 최고 엘리트인 장규직(오지호)은 수석입사에 최연소 대리승진, MBA 연수과정에 선발돼 하버드도 밟은 실력파다. 귀국하자마자 팀장으로 발령, 같은 5년차 동기보다 연봉 2,000만원을 더 받으며 승승장구 한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회사가 신뢰하는 엘리트, 장규직 역시 회식 때 부장 옆에서 탬버린 치며 아양 떠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며 단 한 번의 실수에 가슴 졸이며 사직서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한다. 그의 삶이 계약직들의 불안한 현실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엘리트 팀장의 현실도 이러한데, 그저 평범하고 사람 좋은 무정한(이희준) 팀장이나 “월급이 사이버머니 같다”며 푸념하는 다른 직원들의 현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그리는 매회 에피소드는 곧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직장인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직장의신방송화면
이렇듯 지친 현실을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직장인들에게 Y-JANG의 슈퍼우먼, 미스김은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존재다. 초인적인 능력을 발하며 회사가 처한 온갖 문제를 뚝딱 해결해내는 미스김. 이런 초능력은 사측에 도리어 ‘나를 고용하기 위한 필수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칼퇴근은 기본, 점심시간도 철저하게 지키며 회식은 나의 업무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늘의 별따기’ 같다는 정규직 제안에 고마워하기는커녕, “회사의 노예가 되기 싫다”며 단번에 거절, 3개월만 일하고 훅 외국으로 날아가 버린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 소모되고 있는 직장인들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판타지다.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현실에서 내가 미스김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124개의 자격증을 다 따다가는 이미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어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직장의 신은 어떻게 해야 될 수 있을까. 현실 속에서 미스김과 같은 초능력이 특정한 개인이 아닌 조직원의 협업 속에서야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성원이 조직의 성과를 위해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와 이들 개개인이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발휘해 인정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이상적인 조직이 있어야만 미스김의 초능력도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 결국 신의 직장이 직장의 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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