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는 도화지에 한 폭의 노래그림을 그려나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 원로 음악평론가 이백천선생은 페이스 북에 올린 그녀의 노래를 듣고 “고운 잎새의 숨결…하! 소리가 꽂닢이다~~~naive and pure!!”라고 극찬을 하셨다. ‘힐링’이 남발되는 시대인지라 비록 어감이 진부하고 그 가치가 반감되었지만 정작 치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노래는 드물다. 시와의 노래들은 우리 시대 최고의 ‘힐링’ 음악으로 손색이 없다.그녀의 가슴과 입을 통해 흘러나와 공기 속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멜로디 붓은 온 세상을 담백한 파스텔 톤으로 채색하며 노래를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준다. 단박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혹적인 음악은 결코 아니지만 그녀의 순수한 노래 가락에는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중독성이 담겨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의 노래는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과 닮은꼴이다. 그래서 넘어지고 깨지는 일상다반사의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그녀의 노래는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진심어린 인사말이 된다.
음반을 소장했던 아날로그시대에서 음원을 소비하는 디지털시대가 도래한지 오래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이지만 가수나 뮤지션들은 방송홍보 혹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 유성기로 시작된 음반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LP, 릴테이프, 카세트테이프, CD, MP3등 다양한 형태로 진보되어 왔다. 최근 시와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음반이 없는 음반’을 발표했다. 총 4곡으로 구성된 그녀의 <시와, 커피> 디지털음원들이 아날로그 향기가 진동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율배반적 현상은 시와 만의 특별한 소통방법 때문이다.
완벽한 디지털음원인 이 흥미로운 음반의 수록곡들은 디지털 세상에 대한 저항적 메시지로 무장했다. 그렇다고 무기가 무시무시하거나 거창한 것은 아니다. 느릿하고 애잔한 가락이지만 농밀해진 보컬의 질감과 한층 내밀해진 스토리텔링, 그리고 소박하고 따뜻한 아날로그의 정서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전부다. 경쟁과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디지털세상은 오직 내가 세상의 중심일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걸 또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일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시와의 노래들이 특별한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꺼이 타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번 앨범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할머니가 화로 불 주위에 둘러앉은 손자손녀에게 군밤을 구워주며 들려주었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풍경을 질박한 한지에 따뜻하게 그려냈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온갖 나무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을 때 시와를 만났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기운을 피부로 느끼며 홍대 앞 골목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의 근사한 사진들을 담았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직접 내려주는 그윽한 커피 향기와 맛을 즐기는 예상치 못한 기쁨도 맛봤다는 사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시와, 커피>이니 그녀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듣는 노래그림 이야기는 그녀의 노래에 담긴 향과 맛을 이해하는데 근사한 길라잡이가 되었다. 시와는 “전남 담양으로 귀촌해 사는 친구가 전기를 쓰지 않고, 촛불을 켜고 아궁이에 불 을 때며 평화롭게 사는 모습에 감동받아 가능한 것부터 제 삶을 조금씩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플라스틱 CD가 마음에 걸려 ‘CD 없는 음반’ 제작을 결심했습니다.”라고 음반 탄생배경에 대해 말해준다.
그동안 3장의 음반을 유통해 본 그녀는 아무런 홍보 없이 세상에 내던진 음반들보다 오히려 정식 유통을 시도했던 2집에서 가장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해 공연하면서 음반을 유통하는 방식이 자신에게 더 효과적임을 깨달았다. 그런 고민 끝에 선택한 이번 음반의 타이틀 <시와, 커피>는 2012년 10월부터 시작된, 그녀의 홈페이지와 팬 카페의 기획 공연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싱글은 열두어 명 남짓한 소박한 공간에서 가수와 청자가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소박한 음악을 나누기 위해 만든 11곡 중에서 가장 호응이 좋았던 4곡을 선곡한 프로젝트 음반이다.
‘시와’라는 예명은 이집트 북부에 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의 이름이자 예전에 그녀가 자주 찾았던 홍대 인근에 소재한 맥주 바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시와 공연이 자주 열리던 그 곳에서 자신의 공연을 꿈꿨던 그녀는 바가 사라진 후에 클럽 공연을 시작하며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와’라는 예명은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사라진 공간과 대상들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는 그녀의 로망으로 이해하면 된다.
시와는 경북 포항에서 음악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 서울, 인천 등 수도권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그녀의 기억에는 10살까지 서울 잠실과 인천 구월동의 대단위 주동아파트에서 살았던 유년기의 추억이 강력하다. 특히 도심에서 자연과 더불어 놀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인천 구월동이란 공간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의 친환경적 유전인자를 배양시킨 감성의 고향으로 아롱 새겨져 있다. 당시 아파트 담장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아파트 벗어나면 논밭에서 개구리 알을 채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포항으로 내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라디오 음악방송을 끼고 살았다. 당시 즐겨 들었던 MBC 라디오 ‘밤의 디스크 쇼’에서 가요를 즐겨 들었다. 처음엔 ‘변진섭, 이문세, 신승훈, 이승환, 푸른하늘, 김현식의 노래를 듣다가 ‘우리 노래 전시회 4집’, 남성듀엣 ‘16년 차이’, 노찾사‘의 노래를 들은 후부터 카세트테이프를 사기 시작했고 여고 때부터 CD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또한 7살 많은 외가 막내 삼촌으로부터 <뚜아에무아>등 70년대 포크송까지 폭넓게 접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 듣고 자란 그녀는 “음악실기 성적이 잘나오는 정도였고 직업 가수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1996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입학한 그녀는 교내 노래패에 들어가 기타를 배우면서 유재하, 어떤날, 시인과 촌장 등 다양한 음악을 접했는데 특히 ‘노래마을’이 구사한 서정적인 민중가요가 마음이 왔다. 졸업 후, 특수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될 것 같아 특수아동을 위한 음악치료과정을 연수했다. 그 과정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보게 된 그녀는 음악만의 힘과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자연에 대한 생각을 삶의 중심에 두다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담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다.
습작기를 지나 첫 완성곡 ’길상사에서‘를 만들었다. 중대 결심을 했다. 작곡을 하면서 음악만의 힘과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그녀는 2006년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30살 늦은 나이에 홍대 앞 라이브클럽 ‘빵’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노래는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되는 회화성이 탁월하다. 한동안 가수와 교사생활을 병행했던 그녀는 좀 더 오래, 좀 더 즐겁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란 생각에 2010년 10년 동안 일해 온 특수교사 생활을 접고 프로뮤지션으로 전업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시와의 음악은 평범해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녀의 노래는 치열한 삶을 살다 고단해진 우리의 심신에 휴식을 안겨주는 산들바람의 향기와 힐링의 결이 담겨있다. 2007년 홍대 앞 클럽 ‘빵’ 컴필레이션 3집에 수록된 데뷔곡 ‘화양연화’는 ‘시간이 정박된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뒤늦게 뮤지션으로의 변신을 결심한 그녀에게 용기를 안겨줬다. 특별한 홍보 없이 직접 제작한 데뷔 EP는 무려 5번이나 재발매를 거듭하는 예상치 못한 바람몰이를 통해 그녀의 음악활동에 탄력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2009년 EBS
(좌측부터) 시와 첫 EP 시와1 (2007), 시와무지개 1집 매직스트로베리(2009), 시와 정규 1집 소요(2010)
2007년 초 라이브클럽 ‘바다비’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RAINBOW 99와 프로젝트 듀엣 2010년 정규 1집은 내면의 풍경을 독백하며 자신의 삶을 위로했다면 2집은 청자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육필 편지 같았다. 이번 앨범 <시와, 커피>는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녀의 노래는 1, 2, 3인칭이라는 시각의 다양화를 모색하며 진화하고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번 앨범의 녹음은 자연풍광이 근사한 제주에서 진행했다. 긴장되는 녹음작업이라는 압박을 자연의 기를 받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모든 걸 홀로 진행했지만 밴드<투명>에서 활동하는 정현서의 도움은 완성도를 높였다. 첫 트랙 ‘그대의 우물에서’에서 시와는 특유의 깨끗하고 투명한 목소리의 매력만으로 단박에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쓸쓸한 정서가 지배하는 이 노래에 훈훈한 생동감이 더해진 것은 보컬 뒤로 숨어 있는 나직하고 차분한 청현서의 프렛리스 베이스 연주가 덧칠되었기 때문이다.
(좌측부터) 시와 정규 2집 Down To Earth(2011), 시와무지개 시와무지개 2집 우리 모두는 혼자 (2011), 시와 EP 시와, 커피 나무가 필요해(2013)
‘마시의 노래’는 시와의 애절한 목소리와 통기타 그리고 아코디언의 앙상블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이 앨범의 백미다. 노래 가사는 ‘마시’라는 친구가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에 받은 인상과 그때 만난 또래의 어부 이야기다. 가사에 담긴 이국적이고 아련한 그리움의 정서는 아이리쉬 혼성밴드 <바드>의 멤버 박혜리가 연주하는 아코디언 손풍금 선율을 타고 극한의 서정성을 구현하고 있다. 봄눈별의 아련한 인디언 플루트 소리로 시작되는 ‘인사’는 시와의 어쿠스틱 기타선율과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이 매력적인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한다. 그녀는 “김선재 시인의 시 ‘마지막의 들판’을 읽자마자 눈앞에 한 폭의 풍경이 그려지면서 이 노래의 멜로디가 선물처럼 뚝 떨어졌다”고 한다.가장 경쾌하고 밝은 마지막 트랙 ‘나는 당신이’는 트위터에 올라 온 글 ‘나는 당신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좋았다가 미웠다가 좋았다가..’를 읽고 만든 곡이다. 자연스러운 운율이 실린 글을 읽으니 절로 멜로디가 흥얼거려져 그 자리에서 곡을 완성했다. 노래는 막힘없이 만들었지만 문제는 편곡. 셔플 리듬을 기반으로 한 밴드시스템의 편곡은 다음 앨범을 위해 남겨두었기에 정현서의 조언에 따라 여러 트랙의 코러스를 합체시켜 목소리의 입체적 구성을 시도했다. ‘나는 당신이’는 제주도에서 기타녹음을 따로 작업해 왔다. 그런데 서울에서 들으니 공연 때의 활기와 자연스러움이 부족해 다시 녹음을 시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원테이크로 또다시 기타를 치고 노래하고 코러스를 입혀 완성했다.
일종의 ‘디지로그’ 형식인 시와의 프로젝트 음반 ‘시와, 커피’는 디지털 음원과 재킷, 소책자는 존재하지만 가장 중요한 CD가 없다. 그러니까 재생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음반 소책자를 무료 배포하고, 이메일로 음반을 주문하면 답신으로 노래를 첨부해 보내주는 방식으로 배포되는 생소한 음반이다. 자연보호의 메시지를 담긴 이 음반을 제작을 위해 그녀는 인디 레이블 ‘나무가 필요해’를 만들었다. 시와의 새 노래들을 들으려면 음악 서비스가 가능한 모든 국가의 아이튠즈 계정과 밴드캠프, 현대카드뮤직으로 가거나 6천원을 내고 이메일(withsiwa@hanmail.net)로 직접 주문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듣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대중을 위해 현재 친환경적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CD 제작을 타진 중이다.
시와 프로필
1977년 11월 9일 경북 포항 출생
2000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졸업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앨리> 음악감독
2010년 여성신문사 신진여성문화인상
2011년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 음악감독
인디포럼 작가회의 올해의 활약상
2012년 에세이집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발간
2013년 인디레이블 나무가 필요해 창립
글, 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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