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1플러스 페스티벌’ 현장

영등포 지하철역 3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주구장창 걸으면 나온다고 했건만, 문래예술공장은 도무지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러 개의 골목을 지나자 상당수의 젊은이들, 외국인들의 무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찾기도 힘든 이곳에 인파가 몰린 이유는 ‘2013 51플러스 페스티벌’(이하 51플러스) 때문. 올해로 4회째를 맞는 ‘51플러스’는 2010년 홍대입구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두리반’을 돕기 위해 처음 생겨났다. 두리반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에도 사람들이 ‘51플러스’에 모여드는 이유는 순수하게 음악을 찾기 위해서다. 이곳에 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 404, 하헌진 등 다른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핫’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뮤지션을 확인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대세’가 될 만한 탱글탱글한 음악을 미리 보러 오는 것이다.

4일 ‘51플러스’가 열린 문래예술공장은 4층 건물. 공연은 지하주차장과 1층, 2층, 옥상 네 군데에서 열렸다. 오후 6시 평소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쓰이는 1층에서는 2인조 밴드 위댄스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기타 연주와 맥 컴퓨터가 만들어낸 음표가 춤을 추고, 관객들도 춤을 췄다. 위댄스는 정규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이 CD를 직접 구워 판매한다. CD가 담긴 비닐 속 흰 종이에는 ‘난장판’, ‘선명해지는 순간’ 등 곡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있다. ‘또 놀자’가 연주되자 관객들은 정신의 끈을 놓고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김목인이 기타를 치며 ‘뮤즈가 다녀가다’를 노래하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옥상의 운치가 괜찮다. 김목인은 “몇 년째 같은 멘트에 웃어주시는 관객들께 감사하다”며 노래를 이어간다. 옥상 가운데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빌딩숲 사이로 전철이 달린다. 최근 ‘CD 없는 음반’을 발표한 시와는 “내 노래 중간에 파도소리가 들어가는데 대신 오늘은 기차소리가 들어간다”며 여유롭게 웃었다. 같은 시간 2층에서 공연한 피기비츠는 귀여운 교복을 입고 방방 뛰어댔다. 그리고 미소녀 펑크록 밴드 룩앤리슨이 공연할 때에는 남성 관객들이 방방 뛰었다.

이날 ‘51플러스’에는 약 50여 팀의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뮤지션들을 보려면 4층 건물을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넓지 않은 1층 로비에는 아티스트들의 음반,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고, 콜트·콜텍의 부당해고를 알리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었다. 일반 레코드점에서 보기 힘든 자립음악생산조합 컴필레이션 앨범, 요한 일렉트릭 바흐 등의 음반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모습은 여타 대형 페스티벌과 다르지 않은 모습. 행사 기획에 참여한 회기동 단편선 씨는 “‘쪽’만 빼고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팔 수 있다”며 웃었다.

‘2013 51플러스 페스티벌’ 현장

‘51플러스’는 자립음악생산조합, 영기획, 비싼트로피 레코즈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스폰서는 일절 받지 않았다. 참여 뮤지션들에게는 일괄적으로 출연료 10만원이 지급됐다. 뮤지션들이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 페스티벌이기에 흥행에 대한 부담은 덜한 편. 때문에 대중성이나 관객동원력보다는 얼마나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가가 섭외의 기준이다. ‘51플러스’의 스타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김태춘, 김일두와 같은 이들이다. 김태춘이 공연한 옥상에는 꽤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재작년 두리반 건물에서 열린 ‘51플러스’에서 김태춘이 몸담았던 밴드 ‘일요일의 패배자들’의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팀이 제대로 된 미국 컨트리음악으로 백인들을 춤추게 했기 때문. 이날 김태춘의 질펀한 가사에 여성관객들이 앵콜을 외쳐대는 풍경 역시 충격적이었다. 김일두의 인기도 대단했다. 대충 연주하고, 이야기하듯이 부르는 노래를 여성관객들이 따라 부르더라. 김일두의 밴드 지니어스가 공연한 지하주차장은 관객들이 몸을 부딪치는 등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행사 기획에 참여한 박다함 씨는 “예전의 ‘51플러스’에는 두리반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음악가들과 음악을 위한 페스티벌을 열고 싶었는데 이렇게 멋진 모습이 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오후 9시를 넘기고 2층에서는 로다운 30,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황보령 스맥소프트 등 인디 신 대선배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로다운 30가 ‘너의 조각’을 본때 있게 연주하자 공연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로다운 30의 리더 윤병주는 “미국 공연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국내 사정을 잘 몰랐는데 문래에 이렇게 좋은 공간이 생긴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은 지친 관객들에게 안식을 주는 무대였다. 같은 시간 1층에서 공연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 걸’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 음악을 통해서 어딘가로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많은 음악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정 가까운 시각 무대에 오른 마지막 출연자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차 끊긴 사람들 아닌가? 밤새 놀아보자”며 관객들 가슴에 불을 댕겼다. ‘의심스러워’, ‘뚱딴지’ 등이 이어지자 여성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꽤 어려운 동작을 단박에 따라하는 똑똑한 관객과 몸을 불사르는 성실한 뮤지션의 만남이었다. 한 흑인 관객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아라비안 펑키 소울에 맞춰 고함을 지르며 춤을 췄다. 이들의 춤은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자립음악생산조합(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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