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촬영감독" /><크루즈 패밀리> 전용덕 촬영감독

전용덕 촬영감독.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레이아웃과 촬영 분야를 맡고 있다. 16일 국내 개봉하는 〈크루즈 패밀리〉의 촬영감독(Head of Layout)이다. 레이아웃은 실사로 따지자면 연출·촬영 분야를 이르는 말로, 영상 속 각 객체들의 배열과 배경·위치·빛의 방향·색채 등을 총괄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업무를 말한다. 〈쿵푸 팬더〉(2008)에서 한국계 감독 여인영과 호흡을 맞춘 후로 〈슈렉 포에버〉(2010)에도 촬영감독으로 참여하며 한 층 깊어진 연출력을 뽐냈다. 여인영 감독과 함께 한국의 제작자로 국내 컨텐츠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롤모델로 손꼽히기도 한다. 지난 3일 〈크루즈 패밀리〉의 홍보차 내한 한 그의 얼굴엔 〈크루즈 패밀리〉에 대한 자신감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의 흔적이 역력했다.

[소설 같은 인터뷰]: 취재한 내용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전용덕 촬영감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각색한 1인칭 시점의 소설. 〈편집자 주〉

전화벨이 울린다. 드림웍스 인사담당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함께 일하고 싶다, 면접부터 보자는 이야기.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내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전부 가지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대답을 구했다. 8월부터 함께 일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은 무슨 생각. 바로 ‘오케이’ 대답을 내던지곤 아내와 샴페인을 터뜨렸다. 내 인생의 퍼즐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시기가 있듯 나에게도 그 시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이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들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1988)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5). 나는 이 두 작품을 보며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토이 스토리2〉(1999)는 내가 CG 애니메이션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 물론 처음부터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원래 디즈니나 드림웍스, 픽사, 소니 등과 같이 큰 물에서 놀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지만 현실을 녹록치 않았다. 한국에서도 취업이 쉽지 않아서 고생을 해야 했고, 미국 건너와서는 더 했다. 블루스카이사에 가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어서 맨하탄에 위치한 직원 8명이서 일하는 작은 곳에서 2년간 일을 했다. 그 후에 시카고의 빅아이디어사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위한 레이아웃 아티스트를 뽑는 데 운이 좋게 취직이 됐다. 그땐 열정도 넘쳤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정리해고를 당했고 60군데 이상의 회사에 ‘제발 날 한번만 써보세요’하는 이력서를 보내며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 즈음 동부의 뉴저지 회사에서 연락이 왔지만 한 번 높아진 눈높이를 낮추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선택을 유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5월이었던가. 비자 문제 때문에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오랜만에 이메일을 확인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외로움은 극으로 치달았다. 기어코 스팸메일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나를 찾는 사람이 없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곳에 뭔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드림웍스” 오, 세상에. 드림웍스 인사담당자가 2주전에 내게 보낸 메일이었다. 나를 찾아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했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꿈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전용덕 촬영감독 필모그래피" /><크루즈 패밀리> 전용덕 촬영감독 필모그래피



〈쿵푸팬더〉(2008)와 〈슈렉 포에버〉(2010)를 거쳐 〈크루즈 패밀리〉까지 왔다. 제작을 마치고 미국 개봉 일주일 전에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시사회를 가졌다. 나는 제작하며 200번도 더 영화를 봤기에 아이들의 반응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몸개그가 나오는 곳은 아이들이 좋아하겠구나 싶었고 가족적인 부분은 어른들이 웃겠구나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확하게 일치했다. 모두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 시간의 노고가 모두 눈 녹듯 사라졌다. 사실 나의 가장 소중한 관객의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래서 더 행복했다.

한국에서의 개봉을 앞둔 시점, 시사회 겸 인터뷰를 위해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을 찾았다. 3D 애니메이션 최초로 다큐멘터리 촬영기법을 사용한 만큼 촬영기술에 대한 질문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크루즈 패밀리〉의 촬영감독을 맡은 나와 〈쿵푸팬더〉 시리즈를 연출한 여인영 감독이 드림웍스에 몸담고 있기 때문인지,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가치와 전망을 묻는 질문이 많았다. 나조차도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기에 대답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너무 상업적인 마인드로 애니메이션을 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애니메이션의 성패의 관건은 ‘관객과의 공감’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는 4,5년의 기간을 두고 계속해서 테스트 스크리닝 작업을 하며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들의 창의적인 능력과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할리우드에 밀리지 않음에도 꾸준한 ‘투자‘와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말도 전했다.



전용덕 촬영감독 사진" /><크루즈 패밀리> 전용덕 촬영감독 사진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을 때, 어느 기자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 “감독님께선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계시고, 특히나 젊은 세대에게 ‘멘토’로도 잘 알려지셨습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질문을 듣고 나니, 불현 듯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에 대한 과분한 평가 때문도 아니었고, 단지 내가 걸어온 힘겨운 여로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은 끈기를 요하는 장르이고, 무언가 결과물을 얻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얻고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시작해야한다고 말했고, 드림웍스에 14개의 부서가 있음을 언급하며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다만 하나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많은 것을 두루 경험하라고 말했다. 작품을 한다는 것은 마치 은행에 있는 잔고를 찾아 쓰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스스로 되물었다. ‘나는 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가’라고. 그러자 생각이 정리됐다. 애니메이션은 사실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생각만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비주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지 않나. 생각이 명료해지니 목표가 더욱 또렷이 보였다. 목표는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상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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