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tvN 월화드라마 <나인> 마지막회
tvN 월화드라마 <나인 : 아홉번의 시간 여행> 최종회 5월 14일 오후 11시 다섯 줄 요약
죽음을 앞둔 선우(이진욱)는 시아(조민아)를 만나 먼 훗날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피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시간이 흘러 오국장(엄효섭)의 영향으로 기자가 된 선우는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민영(조윤희)과 인연을 맺는다. 민영은 어린 시절 만난 선우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지만 선우에게 끌리고, 선우 역시 민영에게 끌리며 둘은 연인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문득 민영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된 선우는 네팔로 향한다.
리뷰
그 동안 <나인>은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감행했다. 시간의 흐름에서 보통 과거란 바꿀 수 없는 팩트이지만 <나인>은 ‘향’이라는 판타지를 활용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과거의 프레임에서 시간 여행을 통해 원하는 방식대로 현재를 변화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과거를 여행하는 선우(이진욱)는 번번히 실패했고, 아이러니하게도 9개의 향을 썼지만 향을 사용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원죄의 문제에 속한 몇 가지만이 올바른 방식으로 결과를 맺었을 뿐 큰 맥락 속에서 인물들 간의 관계는 변화하지 않았다. 최진철(정동환)이 몰락하고, 형 정우(서우진)가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은 ‘향’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이뤄낸 결과다. 선우의 시간 여행으로 원죄는 이렇게 속죄의 영역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이들 간의 관계는 처음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정우는 유진(가득희)과 결혼을 하지 못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시아(조민아)는 이름을 주민영(조윤희)로 바꾸고 다시 선우와 인연을 맺는다. 오국장(엄효섭)과 선우의 관계도 변함이 없고, 여타 인물들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미 정해진 ‘운명론적’ 세계 속에서 과거에서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사건’은 변했을지언정, ‘선택’해야만 했던 그들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2013년)의 선우가 과거에 갇힌 채 했던 행동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과거 자체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면서 미래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시간 ‘여행’에 불과했던 그의 행동이 실제적으로는 과거의 ‘한 부분’이 되면서 미래는 전반적으로 뒤틀렸다. 그의 존재는 과거의 선우(박형식)에게 인지됐고, 별개의 자아로서 과거의 세계에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시아 역시 현재의 선우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했던 것이고, 결국 선우가 과거로 돌아가 죽게 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나인>에서 선우는 자신이 과거로 ‘여행’을 하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현실을 바꾸는 현재의 변인 요소가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신’이 된 것처럼 ‘향’을 휘둘러 운명을 지휘했지만, 실상은 그가 과거로 감으로써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 아닌 ‘실체’로서 과거의 일부분으로 현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결국 그가 ‘향이 나 자신’이라고 결론 지었던 것은 향을 통해 과거로 넘어온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향이라는 운명 속에 들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선우는 결국 다시 한 번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현재의 선우가 과거의 선우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자라난 선우는 다시 현재의 선우가 되었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 됐다. 그리고 현재, ‘향’이라는 운명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억과 기회를 앞두게 된 선우는 새로운 미래를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미 정해진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이제 선우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가 됐다. 여전히 ‘향’이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선우가 ‘향’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는 적어도 20회의 선우에게는 무한한 선택의 영역이다. 더구나 현재 선우는 죽음을 앞에 둔 것도, 향이 필요로 한 것도, 정우(전노민)의 절망스러운 마지막을 본 것도 아니다. 상황은 바뀌었고, 선우는 향이 바꿀 수 있는 과거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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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인>은 다시 판타지와 팩트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것은 극 초반 네팔에서 ‘팩트와 판타지’를 논하던 선우는 이미 향을 가진 상태였고, 최종회의 선우는 향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단 한 번도 과거에서 ‘팩트와 판타지’에 대해 논한 적이 없던 선우임을 감안해 볼 때, 이 선언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게 한다. 엔딩에서 선우가 비행기를 타던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 운명을 상징하는 듯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운명이 동일하게 반복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팩트와 판타지’를 구분하며 선언하는 선우의 상황이 극명하게 다르고, 향이 모두 소멸된 상황에서 더 이상 운명론적 세계관이 필요할 이유가 없어졌다. 향을 찾은 선우에게 ‘팩트와 판타지’란 변할 수 없는 과거(팩트)와 최진철과 형 정우의 죄값(판타지)이었지만, (향이 없는) 현재의 선우에게 팩트는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왔던 미래의 선우가 남긴 메시지이며, 판타지는 앞으로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선택이자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미래다.운명과 판타지, 즉 향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이제 선우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에 있던 정우의 죽음을 바라본 나이 든 선우에 대한 의문이 어떠한 것이든 결국 <나인>이 남기는 이야기는 우리의 미래는 언제나 여러 가지의 결과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행 이론처럼 20년의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세계로 이어졌던 것처럼, <나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다. 최종회에 이르러 모든 결말을 열어 둔 상황으로 만든 건, 결국 <나인>이 결정된 것 없는 미래를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걸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다 포인트
- 20년 전 뿐만 아니라 2007년부터 차분히 짚어주신 덕에 휴대폰의 변천사를 다 봤네요.
- 주민영을 통해 ‘전대미문의 귀여운 또라이’를 보았습니다. 주준영과 주민영… 주에서 시작해서 영자로 끝나는 여자들이 다 참 ‘전대미문의 귀여운 또라이’들이네요.
- 울다, 웃다, 놀라다… 10주 동안 송재정 작가님 손바닥에서 놀다 멘붕 온 시청자 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 민경진 (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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