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김상경, <살인의 추억>과 <몽타주> 그리고 10년
에 출연한 김상경." /><몽타주>에 출연한 김상경.

배우 김상경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반듯함’이다. 의사, 검사, 변호사 등 드라마에서 반듯한 직업군을 주로 해왔던 탓이 크다. 그런데 영화로 넘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히려 반듯한 이미지를 찾기 힘들다. 홍상수 감독 작품에선 ‘찌질남’의 모습이 가득하기도 했다. 또 ‘형사’ 이미지도 상당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형사’ 이미지가 강한 그가 형사 역할을 연기한 건 영화 <살인의 추억>(2003), 단 한 편뿐이란 사실이다. 그럼에도 송강호와 함께 호흡을 맞춘 김상경의 모습이 대중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김상경은 다시 ‘형사’를 택했다. <살인의 추억> 이후 무수히 들어왔던 형사 캐릭터를 거절하고, 10년 만에 <몽타주>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몽타주>는 <살인의 추억>의 잔상을 한가득 품고 있다. 사건도,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도, 영화의 구성 자체도, 상당부분 차이가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그 이유는 영화 전체에 흐르는 색깔과 분위기 그리고 김상경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과 <몽타주> 그리고 10년, 김상경에게 직접 들었다.

Q. 정확하게 10년 만에 형사다. <살인의 추억>과 <몽타주>, 그 사이의 10년을 얘기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
김상경 : 시사회 후 <살인의 추억>과 연관 짓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한다. 10년이나 됐기 때문에 역할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다만 <살인의 추억>과 유사한 지점이 많아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살인의 추억>은 실화이자 미제 사건으로 결론이 없다. 그래서인지 10년 동안 쌓인 체증이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인간 김상경은 10년 동안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기고. 그때 까칠하고 날이 서 있던 모습이 더 좋게 발전된 것 같다. 연기하는데 확실히 플러스가 된 듯하다.

Q. <살인의 추억> 이후 의도적으로 형사 역할을 피해 왔다. 그런데 수많은 제의 중 마음에 든 작품이 정말 단 한 편도 없었나.
김상경 : <살인의 추억>은 완성도가 높았고, 흥행도 잘 됐다. 그 작품 이후 똑같은 캐릭터가 많이 들어왔는데 형사 역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살인의 추억> 이후 5~6년간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에 든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믹이 가미된 영화를 하려고 한 적이 있는데 운이 안 맞았다. 산술적으로 3분의 2는 거절했고, 3분의 1은 그런 때가 안 돼서 못했다. 어찌 보면 <몽타주>를 하려고 그동안 형사와 인연이 안 닿았나 싶기도 하다. 약간 운명을 믿는 편인데 마치 운명인 것 마냥 10년의 시간이 흘렀지 않나.

Q. 앞으로 또다시 ‘형사 김상경’의 모습을 보려면 한 10년 기다려야 하나.
김상경 : 어떻게 보면 <살인의 추억>이나 <몽타주>나 색깔이 비슷하다. 앞으로 형사를 한다면 전혀 다른 모습의 형사를 하지 않겠나. 더 와일드하고, 장르적으로도 재밌는 것으로. 어찌됐던 진짜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이것도 10년 만에 했는데 앞으로 또 그러는 건 아닌지. 하하.

Q. 어떤 면에선 분명 부담이다. <살인의 추억>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아니냐. 무엇보다 김상경이란 배우가 아니었다면 <몽타주>를 보고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진 않을 것 같은데.
김상경 : 나는 회자 되는 게 좋다. 만약 <살인의 추억>을 안했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없고,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들었을 거다. 또 10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 것도 있다. 바로 전작이나 근래였다면 나 스스로도 불편했을 것 같다.

Q. 그런데 배우에게 특정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 건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김상경을 떠올리면 몇몇 작품이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나.
김상경 :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인물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벼운 게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도 했는데 성공을 못해서 부각이 안 됐을 뿐이다. 그 장르에서까지 성공하면 너무 과하게 성공하는 거 아니겠나. 하하. 그나마 요즘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다 보니 조금은 달리 보는 것 같다. 오히려 내 평상시 이미지는 웃긴 게 더 맞다.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Q. 생각해보면 영화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 않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많아도 상업영화 출연 자체는 많지 않더라.
김상경 : 확률로만 보면, 9할대 타자다. 다만 타석에 잘 들어서지 않을 뿐이다. 하하. 예술영화에서도, 상업영화에서도 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다만 옛날에는 기준도 높고, 만나는 작품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에서 빠져나오고, 준비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지금은 나오는 시간도, 몰입하는 시간도 빨라진 것 같다. 될 수 있으면 계속 찍어가고 싶다. 좋은 영화가 많이 와주길 바랄 뿐이다.

[INTERVIEW]김상경, &lt;살인의 추억&gt;과 &lt;몽타주&gt; 그리고 10년
김상경." /><몽타주> 김상경.

10년 만에 형사 역을 맡게 된 김상경.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이다.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에도 ‘하하호호’다. 100%도 아닌 500% 만족도라고 연신 자랑이다. 영화 개봉을 앞둔 주연 배우가 ‘홍보성’ 멘트를 날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김상경의 단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짜’ 심정이었다.

Q. 영화를 보니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가 상당히 흥미롭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어땠나.
김상경 : 보통 작품을 선택할 때 감독님 그리고 시나리오를 본다. <몽타주>는 입봉 감독이기 때문에 감독은 선택 기준에서 제외됐다. 그러면 시나리오가 전부다. 사실 어린이 사건 사고를 그린 작품은 선택 순위에 없다. 그런 소재의 영화 자체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도가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희한하게 구조를 짰더라. 한국영화, 외국영화를 포함해 이렇게 구조적 트릭을 써서 만든 영화를 본 게 없었던 것 같다.

Q. 그런데 잘 알다시피 시나리오가 좋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더욱이 연출을 맡은 정근섭 감독이 데뷔 감독 아니냐.
김상경 : 맞다. 책이 영화로 올곧게 만들어지는 게 쉽지 않다. 소위 좋은 감독의 공통적인 점은 책 보다 잘 찍어낸다는 거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신인 감독이 어떻게 찍어낼지 궁금했던 것도 있다. 촬영 중반쯤 지났을까. 감독님께 ‘집에서 연출 연습하냐. 벌써 당신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사회 때 처음 보고 너무 놀랐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5배 이상 좋아졌더라.

Q. 보통 배우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처럼 만족해하기란 쉽지 않은데. 남들은 모르는, 자기만 아는 아쉬움이란 게 있지 않나.
김상경 : 그거 역시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내 작품 보면서 이렇게 만족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엔 자기 영화 보고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 나를 보니 그 보다 더 오버하는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만든 사람들끼리도, 평단도, 관객도 좋았다.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많진 않은데 <몽타주>가 그런 작품이다.

Q. <몽타주>의 만족도를 <살인의 추억>과 직접 비교할 수 있겠나.
김상경 : <살인의 추억>도 워낙 좋은 작품이지만 일면으론 <몽타주>가 더 좋다. 또 어떤 의미에선 가지고 있던 큰 짐을 더는 느낌도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던 딜레마가 있었고, 항상 부채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시원하다.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보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그날 눈물 많이 흘렸다. 물론 흥행까지 확 터지면 좋겠죠. 영화로 인해 ‘도가니법’이 생긴 것처럼 우리 영화로 실종 어린이에게 더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INTERVIEW]김상경, &lt;살인의 추억&gt;과 &lt;몽타주&gt; 그리고 10년
김상경." /><몽타주> 김상경.

<몽타주> 속 형사 청호는 15년 전 유괴사건의 담당형사.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5일 전, 사건 현장에서 국화 꽃 한송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동일한 수법의 사건이 다시 발생, 청호는 15년 전 그 놈이라고 확신한다. <살인의 추억> 서태윤도 그랬다. 젊은 여인을 무참히 강간, 살해한 범인을 그렇게도 잡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그 서태윤이 시간이 흘러흘러 청호가 된 것 같다.

Q. 영화 자료를 보니 ‘<살인의 추억>에서 끝까지 못 잡았던 범인을 <몽타주>에선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란 말을 했더라. 영화 시나리오에는 결말이 다 나와 있지 않나. 그래서 그 말의 속뜻이 궁금하더라.
김상경 : <살인의 추억>은 실화를 다루고 있고, <몽타주>는 픽션이다. 그럼에도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몽타주>를 하면서 <살인의 추억>하고 반복되는 지점이 얼핏얼핏 있더라. 그러면서 마치 그때 해결되지 않은 지점이 이제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Q. <살인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나름 ‘과학수사’를 외치는 샤프한 형사였다가 점점 범인을 잡지 못하면서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몽타주>에선 무기력해진 모습부터 출발한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그렇게 연결되더라.
김상경 : 나 역시 영화 흐름상 그렇게 느꼈다. 그 사건을 잊으려고 사표까지 냈는데 그 놈이 다시 나타나니까 미치게 되는. 그래서 남겨졌던 숙제를 다시 하는 느낌도 들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와 김상경, 두 형사를 섞어놓은 듯 했다.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의 짬뽕쯤. 그렇다고 감독님하고 그런 설정과 의도에 대해 전혀 이야기한 바 없다. 그런 생각을 아예 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Q. 송강호와 김상경, 참 멋진 파트너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그런 파트너가 없다. 대신 김상경과 엄정화가 파트너처럼 보이더라. ‘감정상’ 파트너 정도. 둘이 맞붙는 신도 거의 없는데 <살인의 추억> 송강호 김상경처럼 영화 내내 함께 하는 것 같더라.
김상경 : 사실 영화 속에서 세 번 만난다. 그렇게 봐주면 너무 고맙다. 사실 신경을 많이 썼던 게 만나는 숫자는 적은데 만날 때마다 소화해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 큰 거다.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겹겹이 쌓아온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한 번에 보여줘야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15년을 함축해야만 했고, 말 대신 한 컷으로 설명해야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선 정화 누나 못지않게 슬프고 힘든 것을 묻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만나는 장면은 누나가 오열하고 나서이다. 그 오열 장면을 너무 좋아하는데 좋은 연기와 좋은 연출이 만났을 때 나오는 신이다. 나중에 회자될 것 같다. 여하튼 그 신에서 오열하자마자 나로 딱 넘어온다. 그 호흡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이처럼 남이 했던 호흡을 연결해서 한다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Q. 앞부분에 말했듯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빠다. 아무래도 감정적인 부분에선 훨씬 더 와 닿았겠다.
김상경 : 아픔을 느끼는 게 전혀 다르다. 예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때리는 것을 보면 단순히 ‘왜 저럴까’ 했는데 지금은 욕이 먼저 나간다. 아이가 있다 보니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배우로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Q. 그런데 아이를 둔 배우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린이 범죄 관련 소재 자체를 어려워하더라.
김상경 :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나 역시 안 좋아한다. 영화 자체를 안 보게 된다. 다만 <몽타주>는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경각심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칼로 찌르길 하나, 총으로 쏘길 하나. 그런 게 일단 없다. 그리고 실종 아이들이 매년 1만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 그런 관심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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