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얼굴 알려지면 잠행 취재 다니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웃음) “시장 조사하러 명동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분주히 인터뷰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온스타일 최윤정 PD(34)의 얼굴에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 특유의 홍조 띤 활력이 읽힌다.

그가 총연출을 맡은 온스타일의 <겟 잇 뷰티>는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뷰티 제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꼼꼼한 정보 전달로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뷰티 프로그램의 대명사격으로 자리 잡았다. 2005년 온스타일 <싱글즈 인 서울>을 시작으로 OCN <무비 하이라이트>, 온스타일 <론치 마이 라이프> 등의 프로그램을 거쳐 온 그는 2011년부터 <겟 잇 뷰티>의 총 연출자를 맡고 있다. “매번 발품을 팔며 직접 얻은 정보력과 트렌드 분석력이 프로그램의 힘”이라는 그에게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여성 PD로서의 힘에 대해 들어보았다.

Q. 화장품 매장에 가면 <겟 잇 뷰티>에 소개된 제품만 따로 모아놓았을 정도로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2010년 첫방송 후 벌써 4년째 프로그램을 이어오는 장수 비결이 궁금하다.
최윤정 : 여자들이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게 화장품인데 여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비교는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직접 섭외한 전문가들과 방청객 평가단의 이야기를 통해 꼼꼼하게 장단점을 분석하고 지적한 ‘디테일의 힘’이 통했던 것 같다.

Q. 요즘엔 프로그램의 영향력도 새삼 느끼나.
최윤정 : 길거리 인터뷰를 진행할 때 종종 느낀다.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면 피하곤 하는데 <겟 잇 뷰티>에서 나왔다고 하면 제작진이 몰랐던 정보까지 제보해 줄 정도로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

Q. 프로그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최윤정 : 자신있게 소개한 제품이 완판됐다고 했을 때 기분이 매우 좋다. 저렴하지만 성능좋은 제품을 소개하거나 숨겨져 있던 전문가를 발굴해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도 새로운 가능성을 던지는 작업을 한 것 같아 보람있다는 느낌이다. 뷰티 프로그램이 대부분 ‘홍보성’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있곤 하는데 그런 점을 어느 정도 극복해가고 있는 것 같다.

Q. <겟 잇 뷰티>의 힘은 깨알같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내는 데 있는 것 같은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최윤정 : 방송에 대한 어떤 주제가 정해지면 제작진과 MC가 함께 달려드는 편이다. 예를 들어 파운데이션이 주제면 1~2주간 제작진이 함께 발라보면서 직접 체험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Q. 작가와 PD 등 제작진이 모두 여자라는 점도 독특한 것 같다.
최윤정 : 현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 8명, PD 9명, 그리고 MC 유진, 김정민까지 모두 여자다.(웃음) 나이대도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비슷해서 서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도 편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회의가 전투적이지 않고 마치 수다 떠는 분위기다. 항상 화장품이나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회의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달까(웃음)

Q. 100% 여성 제작진이라는 점은 방송계에서도 이색적일 것 같은데, 여자들만의 팀워크를 이루는 방법이 남다를 것 같다.
최윤정 : 일하는 게 아니라 노는 듯이 일하는 게 강점인 것 같다. 서로 기탄없이 수다를 떠는 가운데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반짝반짝할 때가 많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여성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감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들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본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 같다. 놀 때도 우리끼리 ‘문화 데이’라고 해서 함께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몸에 좋은 것을 먹으러 찾아다니는 식이다.

Q. 총연출자로서 자신만의 리더십을 발현하는 방법이 있나.
최윤정 : 사실 <겟 잇 뷰티>는 매주 엄청난 자료조사가 필요한 프로그램이라 피디나 작가들이 일주일에 2~3번 밤을 새는 등 일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무엇보다 화합을 중시한다. 일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을 하는 공동체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리더십의 방법은 없지만 어떤 사람이든 캐릭터를 파악해서 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약간 삐딱한 사람도 그 사람만의 강점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걸 보려고 한다. 내가 조연출 때 남자 선배들에게 못 받았던 걸 챙겨주려고 한달까.(웃음)

Q. 여성 PD로서 초창기 설움을 느낀 지점도 있었나보다.
최윤정 : 입사 3년차쯤될 때만 해도 현장에 가면 대부분 아저씨들이 많았다. 기자간담회나 행사장에서 인상을 쓰고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아 ‘왜 저럴까’하고 처음엔 굉장히 신기했다.(웃음) 또 나이도 어리고 여자라며 은근히 무시하는 제작진이나 취재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에게 대놓고 “PD는 어디에 있냐?”고 묻기도 했다. 지금은 확실히 여성 제작 인력들이 늘어나면서 많이 바뀐 분위기를 느낀다.



Q. 여성 PD들만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최윤정 : 생활 속에서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재미를 잘 착안해내는 능력은 확실히 여성들이 장점을 잘 발현하는 것 같다. 다른 TV 프로그램을 봐도 디테일한 재미가 살아 있는 프로그램은 여자 PD들이 연출한 게 많더라.

Q. PD란 직종은 여전히 일과 결혼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기 어렵다는 인식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어떤가.
최윤정 : 사실 난 철저한 독신주의자였는데 다행히 내 일의 방식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막 프로그램 촬영이 진행될 때 결혼해서 신혼여행은 아직 못 갔지만.(웃음) 유능한 여자 선배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일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내게도 앞으로 숙제인 것 같다. 나름대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Q. PD를 꿈꾸는 여자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
최윤정 :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 저것 많이 경험해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여러 상황을 접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대학 때 사무직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갈빗집에서 일해보기도 했다. 처음부터 PD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PD가 되서 프로그램 제작차 찾은 프랑스에 매력을 느껴 3년 반동안 유학생활을 경험하기도 했고. 그런 여러가지 경험이 쌓여 지금 일을 하는 데도 나만의 접근 방식이나 시야를 갖게 된 것 같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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