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몽타주> 포스터

아이가 유괴됐다.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고,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15년이 훌쩍 지났다. 세상은 이 사건을 잊은 지 오래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5일 전, 사건 현장에 들른 형사는 그 현장에 놓인 꽃 한 송이를 보게 된다. 15년 전부터 이 사건에 매달린 형사와 아이의 엄마는 그 꽃송이를 토대로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결과는 실패. 공소시효도 끝.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됐다. 그런데 며칠 후 15년 전 유괴사건과 똑같은 방식의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과 엄마 그리고 눈앞에서 손녀를 잃어버린 할아버지까지, 얽히고설킨 이들의 실타래가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황성운 : 구조적 트릭, 완벽했다. 엄정화의 감정 ‘제대로’다. ∥ 관람지수 - 8 / 사건 구성 지수 - 9 / 공소시효 지수 – 9
정시우 : 살인은 누구에게도 추억이 될 수 없다. ∥ 관람지수 - 7 / 사건 구성 지수 - 8 / 공소시효 지수 – 7

2eyes ∥ 매력 찾기

황성운 : <몽타주>는 미제사건을 다룬 수사물이다. 그동안 수없이 다뤄져 왔던 소재. 이 말은 곧 신선함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근섭 감독은 ‘지향점’이 뚜렷했다.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던 소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현재 발생한 사건을 통해 미제로 남은 유괴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흥미롭다. <내가 살인범이다>가 과거의 사건을 글(책)로 풀었다면, <몽타주>는 과거의 사건을 모성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사건’ 자체는 특별함이 없으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특별했다. 입봉 감독이 한 건 크게 쳤다. 공소시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공소시효가 끝났는데 범인이 잡혔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것 같다. <몽타주>는 공소시효가 끝난 이후의 상황을 들이댄다. 기존의 공소시효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형태다. 이를 통해 공소시효 자체를 조롱하는 듯하다. 구조적인 신선함과 트릭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들도 잘 살아났다.

정시우: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미제사건을 그린 <살인의 추억>의 메인 카피다. 보이지 않는 범인에 대한 갈증을 이보다 절절하게 표현해 낸 문구가 있을까. 이 문구는 지난 10년간 충무로를 유령처럼 떠돌며, (공소시효를 소재로 한) 유사 스릴러물들을 탄생시켰다. 최근 들어 공소시효를 다루는 방법은 조금 더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해 개봉된 <내가 살인범이다>가 <살인의 추억> 속 범인이 공소시효가 끝난 지금 스스로 세상에 나온다면 어떨까’라는 콘셉트로 신선함을 안겼다면, <몽타주>는 ‘공소시효가 끝난 후 그와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로 기존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꾀한다. <몽타주>는 구조적인 면에서도 영리한 짜임새를 지닌 영화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5일 전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공소시효가 끝나는 시점까지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다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추리로 넘어가면서 관객과의 본격적인 두뇌 싸움을 시작한다. 초반과 중반, 그리고 인물 각자의 사연이 두드러진 후반부의 분위기가 워낙 다른 탓에 한 영화에서 여러 장르를 맛 본 기분이 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감독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스틸" /><몽타주> 스틸

2eyes ∥ 복수와 반전

황성운 : 또 하나 눈여겨 볼 지점은 사적복수. 큰 범주에서 <몽타주>는 사적복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리고 사적복수는 영화의 반전과 공소시효와도 연결돼 있다. 이런 것들을 엮어가는 솜씨가 신인감독답지 않게 탁월했다. 하지만 기존에 흔히 봐왔던 그런 사적복수의 형태와는 큰 차이점을 지닌다. 기존의 사적복수를 다룬 영화들은 범죄자에 대한 직접적인 ‘응징’에 초점이 맞춰졌다. 때문에 사적복수가 또 다른 살인과 범죄를 부르는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대중들도 많았던 게 사실. <몽타주> 역시 ‘응징’을 하긴 한다. 하지만 개인적 응징에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사적복수가 피해자를 법의 심판대까지 올리게 된다. 사적복수의 마지막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 사적복수의 새로운 형태다. 기존 사적복수에 피로감을 느꼈다면, <몽타주>는 새로움을 전해 받을 수 있을 듯. 이 때문에 반전을 잘 감추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이야기의 반전뿐 아니라 반전 자체로 인해 만들어진 구조가 이 영화의 근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시우 : <몽타주>는 ‘유괴극’에 머무르지 않고, ‘복수극’으로 확장되는 영화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복수의 방법’이 꽤나 신선하다. 탄탄한 시나리오로 일찍이 주목받은 작품이라더니, 사실임을 확인했다. 다만 반전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에서 반전을 내세운 홍보는 작품에 그리 이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신선한 건, 촘촘하게 설계된 구조적 트릭 때문이지 반전 때문이 아니다. 뒤에 가서 모든 실타래가 풀리는 ‘미스터리 퍼즐’의 요소에 집중해서 감상하는 게 여러모로 이롭겠다.

2eyes ∥ 김상경과 엄정화 VS 김상경 엄정화 그리고 송영창

황성운 : 보통의 수사물은 파트너가 있기 마련.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김상경처럼. 또 때론 <공공의 적> 설경구와 이성재 또는 설경구와 정준호처럼. 형사 선후배를 통해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론 형사와 범인의 팽팽한 맞대결을 통해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몽타주>는 그런 전형에서도 탈피했다. 형사 청호(김상경)와 피해자의 엄마 하경(엄정화)이 파트너다. 그렇다고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많이 만나는 것도 아니다. 단 3번 만났다. 그럼에도 같은 사건을 쫓는 김상경과 엄정화의 시선과 감정은 일치한다.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서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묘한 긴장과 대립을 만들어간다. ‘감정’만으로도 훌륭한 파트너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정시우 : 딸을 잃은 엄마와 범인을 잡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거는 형사, 그리고 15년 전 일어난 사건과 같은 방법으로 손녀를 잃은 할아버지(송영창). <몽타주>의 인물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것이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 마디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피해자의 사연이 어느 것 하나 소외 되지 않고 다뤄진 느낌이다.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하고,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소름끼치는 성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인지라, <몽타주> 같은 상업영화를 온전히 상업적으로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틸." /><몽타주> 스틸.

2eyes ∥ 엄정화 최고의 작품 VS 익숙한 모습

황성운 : 지금까지 엄정화를 ‘과소평가’한 것 같다.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전에도 연기를 잘 하는 배우긴 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자연스러움’ 보다는 뭔가 ‘인위적’인 느낌, 만들어서 연기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무런 연기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걷고 있는 것만 봐도 가슴 한켠이 아릴 정도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표현 가능하다니. 그녀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든 행동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크린 벽을 넘어선다. 엄정화의 최고작이라 하고 싶다. 데뷔한 지 20년, 그런데도 다음이 더욱 궁금해졌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시우 : 딸 잃은 어미의 슬픔을 거부감 없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미혼 여배우’가 누가 또 있을까. 엄정화만한 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로 분한 엄정화는 낯설지 않다. 그녀는 이미 <오로라공주> <마마> <해운대> 등에서 모성애 넘치는 모습을 선보인바 있다. 어떻게 보면, <몽타주>의 하경은 엄정화에게 잘 맞는 맞춤복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엄정화 최고 작품이라는 일부의 평가에는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겠다.(내게 그녀의 최고작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다.) 하지만 ‘저평가 된 배우’로 인식되던 엄정화가 자신을 옭아매던 어떤 선입견들에게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데, <몽타주>가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는 확신은 든다. 점점 배우의 얼굴을 갖춰가는 그녀가 반갑다.

2eyes ∥ <살인의 추억>의 강한 잔상

황성운 : <몽타주>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서 본 듯한’ 잔상이 강하기도 하다. 특히 <살인의 추억>과 많은 비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경에 대한 기시감도 지울 수 없다.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이후 딱 10년 만에 형사 역할을 맡았다. 그랬기에 그 잔상은 생각보다 크다. 캐릭터적인 특징도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마치 10년 전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을 놓쳤던 형사가 <몽타주>에서 다시 수사를 시작하는 것 같다. 김상경은 “워낙 작품성이 뛰어났던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회자되는 게 오히려 좋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장점으로 작용할 진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정시우: 김상경 캐스팅은 ‘신의 한 수’ 일지도. 범인을 잡지 못해 자괴감에 빠진 형사 청호를 보고, <살인의 추억> 속 서태윤 형사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작품 몰입을 방해한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덕분에 청호의 사연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15년간 지옥 속에서 살아 온 청호는 앞으로 지옥에서 살 것임을 예고했던 태윤의 또 다른 얼굴, 혹은 미래의 모습으로 보이는 까닭에 15년이라는 시간도 굉장히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 많은 인터뷰에서 “10년 묵은 체증이 이제야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있는 김상경의 심경을 관객들 역시 일정 부분 느끼게 될 공산이 크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미치게 잡고 싶었다’는 그 마음을.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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