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 김대중, 폴 아웃 보이, 소울사이어티(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추잡하다, 추잡하다, 어쩜 그리 추잡한 인생은 잘도 간다.
이승열 ‘Minotaur’ 中

이승열 〈V〉

이승열은 정말로 변신이 절실했나보다. 이승열의 팬이라면 유앤미블루 시절 앨범부터 전작인 〈Why We Fail〉까지의 음악과 이번 〈V〉의 음악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이승열의 라이브를 봤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차기작을 내놓으려고 저리도 심각하고,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했다. 치열한 음악적 탐구와 고민의 산물로 여겨지는 새 앨범에서 이승열은 기존의 자신을 뒤엎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제까지 이승열의 음악이 영미 록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면 〈V〉에서는 이를 벗어나고 있는 것. 그는 단보우의 이국적인 사운드와 아랍풍의 보컬, 그리고 분절된 밴드 사운드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승열 역대 앨범 중 가장 난해한 경우로 분류될지 모르겠지만 혼돈 속에서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We Are Dying’ ‘Who?’ ‘Fear’ ‘Cynic’ 등의 곡들은 반복해 청취할수록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2013년 최고의 앨범’ 후보로 거론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씨 없는 수박〉
작년 ‘인디 신의 강남스타일’이라 회자된 노래 ‘300/30’의 주인공 김대중의 정규앨범을 참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300/30’의 미덕은 공감백배 노랫말. 지방에서 올라와 싸구려 방을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곡의 델타 블루스 곡조에 맞춰 울며 웃을 수 있었을 게다. 이처럼 김대중은 델타 블루스에 한국적인 해학을 담을 줄 아는 구수한 블루스맨이다. 〈씨 없는 수박〉에서 그의 화법은 진솔하고 투박하며 때로는 진중하다. “아들아 내가 씨 없는 수박이라니 하늘이 두 쪽 난다”라고 노래하는 김대중의 목소리는 블루스에 올라탄 한국인의 유머라 할 수 있겠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블루스맨 김대중의 ‘블루스 이름’이라고 하는데 머디 워터스, 비비 킹과 같은 예명인가 보다. 김대중은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들 대선배 블루스맨들과 맥을 함께 한다. 머디 워터스의 ‘I can’t be satisfied’를 개사해 노래한 ‘Blues To Muddy’는 김대중의 뿌리를 잘 보여주는 곡.

양병집 〈EGO &LOGOS〉
김민기, 한대수 등과 함께 한국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장으로 꼽히는 양병집이 8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8집. 양병집은 1집 〈넋두리〉 등을 통해 70년대부터 유신 정권에 억눌린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노래를 불러왔다. 양병집을 보면 ‘파시스트를 죽이는 도구’라는 문구가 새겨진 통기타를 들고 노래했던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두 우디 거스리가 떠오른다. 우디 거스리는 길 위에서 익힌 음악에다 자신이 접한 부조리한 현실을 가사로 옮겨 노래를 불렀다. 양병집은 미국 포크, 구전민요 등에 현실참여적인 가사를 붙이는 한편 자신의 오리지널 곡을 선보였다. 그런 본인을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싱어&가사라이터’라 표현한다고. 〈EGO &LOGOS〉에는 과거에 발표했던 곡들과 동료들이 만들어 준 곡들이 새로운 녹음으로 담겼다. 가수 이장희의 동생인 이정한이 편곡으로 참여했다.

그린 티 〈Jazz It Up〉
‘한국의 맨하탄 트랜스퍼’라는 호칭은 본래 낯선 사람들의 것이었다. 이제는 보컬그룹 그린 티가 그 호칭을 물려받아야할 때가 아닐까 한다. 알토 임경아, 테너 김일영, 소프라노 은재, 바리톤 서종운으로 이루어진 그린 티는 팝과 재즈를 넘나들며 수려한 아카펠라를 들려준다. 흥미롭게도 낯선 사람들의 리더였던 고찬용과 현재 그린 티의 리더 임경아는 친한 사이라고 한다. 2집인 〈Jazz It Up〉에는 재즈 팬들에게 익숙한 스탠더드 ‘Corcovado’ ‘Autumn Leaves’ ‘Angel Eyes’ 등이 담겼다. ‘Fly Me To The Moon’에는 한국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이 메인 보컬로 참여했으며 그린 티가 화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한국 1세대 재즈연주자 최선배는 ‘I Thought About You’ ‘Misty’에 관록이 담긴 연주를 더했다.

소울사이어티 〈Diamonds〉
분명히 소울사이어티의 음악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재즈월간지 ‘엠엠재즈’의 부록CD에서 들었었다. 에스뵈욘 스벤숀 트리오가 커버를 장식한 2005년 8월호였으니 벌써 10여 년이다. 프로듀서 윤재경이 중심이 된 프로젝트 그룹 소울사이어티는 Soul과 Society의 합성어인 팀 이름처럼 소울 공동체를 표방한다. 〈Diamonds〉는 8년 만에 발표된 2집으로 채영, 남주희를 주축으로 정인 소울맨, 랑쑈, 한소현, 제이 킴 등 한국 소울계의 베테랑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단지 소울, R&B를 가요에 접목하는 것을 넘어서서 현지의 감성에 가까운 흑인 감성의 음악을 들려준다. ‘Jamin’’의 섹시함은 단연 일품.

이진우 〈주변인〉
이제 인디 신 한쪽에서 ‘에피톤 프로젝트 류’의 음악이 유행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게 새로운 음악은 아니다. 90년대에는 이런 감성의 가요가 주류시장에서 소비됐지만, 최근 그러지 못하면서 그 범주의 뮤지션이 인디 신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스타일이 다시 주류 가요계로 옮겨가고 있다.(이는 필시 고무적이다) 정규 1집 〈주변인〉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이진우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1집 〈유실물보관소〉의 타이틀곡 ‘한숨이 늘었어’에 보컬로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진우는 많은 악기들을 다룰 줄 알아 원맨밴드 형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레코딩은 세션 연주자들이 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봄의 시작’을 비롯해 봄과 어울리는 잔잔한 곡들이 담겼으며 소속사 파스텔뮤직의 캐스커 융진, 루시아 등이 힘을 보탰다.

O.S.T. 〈Before Midnight〉
영화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귀를 닫고 사는 요즘이다. 내용을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전작들을 워낙 설레면서 봤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연인처럼 반갑게 맞이하고 싶은 영화다.(과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귀가 즐겁고 머리가 복잡하며 심장이 뜨거워지는 영화”라고 하더라. 전작 〈비포 선셋〉에서는 여주인공 셀린느(줄리 델피)가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한 ‘Waltz For A Night’가 큰 사랑을 받았다. 음악감독 그레이엄 레이놀즈가 작업한 이번 O.S.T.에는 영화의 배경인 지중해에 어울릴법한 이국적인 정취의 음악들이 담겼다. 그레이엄 레이놀즈는 “최소한의 장면에 최소한의 배우들이 많은 대사를 주고받는 영화이기에 음악이 영상 자체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영상과 음악이 얼마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곧 알게 되겠지.

폴 아웃 보이 〈Save Rock And Roll〉
해체 소문이 돌았던 미국의 팝펑크 밴드 폴 아웃 보이가 4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한층 강력해진 음악으로 말이다. ‘로큰롤을 구하라’는 제목처럼 ‘진격의 의지’가 엿보인다. 폴 아웃 보이는 엘튼 존, 빅 션, 커트니 러브 등의 쟁쟁한 아티스트들과 협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는 음악적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폴 아웃 보이 팬들이라면 펑크록, 이모코어를 저만치 밀어낸 변신이 낯설 수도 있겠지만, 이제 5집 밴드가 아닌가? 더구나 컴백작에서 이런 왕성한 취향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폴 아웃 보이가 어떤 방식으로 로큰롤을 구할지 이번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확인하시길.

가브리엘 애플린 〈English Rain〉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가브리엘 애플린의 노래를 들으니 또래의 남성 싱어송라이터 제이크 버그가 떠올랐다. 애늙은이 같다는 말이다. 외모는 청초한 소녀지만 목소리와 음악스타일은 서른을 훌쩍 넘긴 레이첼 야마가타쯤 돼 보인다. 애플린은 여타 많은 가수지망생들처럼 열다섯 살에 유튜브에 커버 동영상을 올리며 알려졌다. 애플린이 그 많은 지망생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목소리와 연주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애플린은 최근의 트렌디한 어쿠스틱 음악이 아닌 과거 1960~70년대 스타일의 향취가 묻어나는 음악을 선보인다. 자료를 보니 조니 미첼과 레너드 코헨을 오래 흠모해왔다고 하는데, 이것이 허언은 아닌 것 같다. 소녀가 부르는 어른의 노래.

조 새트리아니 〈Unstoppable Momentum〉
일단 조 새트리아니의 연주를 오랜만에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조 새트리아니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극악의 기타 메커니즘의 정점에 선 기타리스트다. 로큰롤 기타에서 하이 테크니컬 록 기타로 전환점을 마련한 반 헤일런, 속주의 유행을 몰고 온 잉베이 맘스틴에서 한 발짝 더 진보한 조 새트리아니는 레가토, 스윕 피킹, 태핑, 아밍, 하모닉스 등 온갖 주법을 주머니에서 꺼내듯 능숙하게 구사하며 그야말로 ‘기타의, 기타에 의한, 기타를 위한’ 음악을 꾸준히 추구해왔다. 테크닉과 악곡의 배치를 재치 있게 해내는 센스는 14집인 이번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전작들에 비해 다소 차분해진 감이 없진 않지만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은 그대로다. 조 새트리아니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이들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존재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연주자이니 말이다. 그의 앨범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고 고맙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내한하는 조 새트리아니의 제자 스티브 바이의 연주도 기대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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