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한 사람이 있다. 항상 변함없는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을 건다. 꾀꼬리 같이 고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 난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람은 기계 속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항상 나에게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도로 교통에 대해 친절하게 말해주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굴까.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나는 너를 궁금해 한다.1) 전철 속 너의 목소리
성우 강희선(왼쪽)과 제니퍼 클라이드
전철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우 강희선이다. 강희선은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의 목소리로 유명하며 만화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엄마 봉미선으로도 알려진 베테랑 성우다. 현재 서울메트로 1~4호선, 코레일, 부산도시철도 등 우리나라 전철 대부분의 안내방송을 맡아 대표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희선 덕분에 전철 속 시민들은 때로는 샤론 스톤이 말하는 섹시한 목소리에 즐겁고, 때로는 짱구를 혼내는 봉미선의 목소리에 졸음을 쫓는다.
전철의 목소리는 또 있다. 철도회사마다 다른 성우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도 재미다. 서울도시철도에서는 은영선 성우, 9호선에서는 이윤정 성우 등이 활약하고 있다. “지금 내선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와 같은 열차진입방송은 박형욱 성우가 전담하고 있다. “This stop is ~”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사람은 전문 성우가 아니라 아리랑TV 리포터 출신의 EBS 영어강사인 제니퍼 클라이드라는 점도 흥미롭다.
강희선과 제니퍼 클라이드의 지하철 방송 2) 버스 속 너의 목소리
성우 전숙경
버스 속 목소리는 15년째 안내를 책임지고 있는 성우 전숙경의 목소리다. 외화 <그레이 아나토미>의 크리스티나 목소리로 유명하다. 전숙경의 버스 안내는 방송사 입사 전에 1999년 서울시내버스 안내방송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시작됐다. 버스 안내는 정류장 위치가 바뀌거나 명칭이 바뀌면서 업데이트가 자주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 달에 두 번씩 새롭게 녹음을 한다. 전숙경은 K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점은 톤이 왔다 갔다 하거나 어투가 바뀌면 안 되거든요. 그걸 일정하게 유지시켜가며 녹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버스 안내 녹음의 고초를 전하기도 했다.
3) 내비게이션 속 너의 목소리
성우 지미애
지역별 사투리 버전, 연예인 버전 등 내비게이션 목소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지만 안정감과 친숙함으로 신뢰를 주는 지미애의 목소리가 단연 돋보인다. 지미애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부터 현재까지 개발되는 제품까지 줄곧 한 회사의 기계에서 활약했다. 지미애 목소리의 내비게이션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내비게이션 시장점유율의 60%를 차지했다니 ‘국민 길 안내 목소리’라고 불러도 될 정도. 그러나 내비게이션 안내는 2만여 개가 넘는 패턴을 녹음하고 합성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매 분기마다 달라지는 교통상황에 따라 새로이 업데이트 하는 것도 필수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탓에 변한 목소리가 오히려 혼란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미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반드시 옛날 목소리를 먼저 듣고 녹음에 들어간다. 처음 녹음할 때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대로 소리 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해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4) 엘리베이터 속 너의 목소리
성우 정부용
엘리베이터 안내양은 사라졌지만 엘리베이터 안내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있다. 경력 40년의 성우, 정부용이 그 주인공이다. 정부용은 KBS 뉴스에 출연해 처음 엘리베이터 녹음을 한다고 했을 때는 기분이 나빴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엘리베이터가 자신의 목소리로 움직인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고운 목소리로 안내하는 엘리베이터 목소리의 얼굴이 사실은 올해 60세의 ‘어머님’이라는 것에 놀랍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따뜻함이 있기에 귀에 더 속속 들리는 것은 아닐까.
5) 여자만 있나? 남자 목소리도 있다!
성우 홍성헌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등 안내 목소리에는 여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 속에서 당당히 제 역할을 차지한 남자 목소리도 있다. “출입문에 기대거나 손을 짚으면 다칠 위험이 있사오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문이 닫힙니다”라며 전철 보조 목소리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남자 목소리를 기억하는지. 그 목소리의 주인은 홍성헌 성우다. 이연걸 전담 성우로 알려진 홍성헌이 나지막이 말하는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를 들으면 어디선가 이연걸이 나타나 우리를 지켜준다고 느낄지도?홍성헌의 지하철 방송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KBS2, MBC, SBS
음성제공.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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