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엄기준, 상상했던 흑백 그림이 컬러로 펼쳐지는 느낌
주연을 맡은 엄기준."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 주연을 맡은 엄기준.

“뭔가를 꾸준히 계속 하고 싶다.” 엄기준의 말이다. 이 말처럼 엄기준은 쉼 없이 꾸준히 ‘뭔가’를 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도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 오른다. ‘겹치기’ 출연, 엄기준에겐 일상적이다. 약간의 불면증도 있다. “드라마를 하면서부터 (불면증이) 생겼다”면서도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없단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 개봉을 앞두고 텐아시아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엄기준, 오후 1시였음에도 눈이 벌겋게 충혈 돼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했더니 웃음이다. 연기, 노래 등에 대한 열정이 모든 걸 이겨냈다. 그 열정, 부럽다.

<더 웹툰:예고살인>에서 엄기준이 맡은 역할은 형사 기철. 수많은 배우들이 연기했던,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형사 역할이다. 기철 역시 색다른 형사는 아니다. 하지만 엄기준에겐 ‘색다른’ 옷이었다. 반듯한 이미지가 강했던 엄기준, 이번 역할은 그런 반듯함과 다소 멀어졌다. 뺀질뺀질하고, 진급을 위해 ‘줄을 탈 줄도 아는’ 인물이다. 형사 자체는 색다르지 않았지만, 엄기준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현실 속 엄기준, 그는 어떤 사람일까.

Q. 영화 <파괴된 사나이> 이후 두 번째 영화더라. 드라마 출연은 많았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없더라.
엄기준 : 그렇네요. 영화를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들어오는 게 없었다. 하하.

Q. 그럼 이번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의 경우 정말 오랜만에 들어와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하겠다고 한 것인가.
엄기준 : 시나리오를 굉장히 재밌게 봤다. 영화를 선택할 때 아니 어떤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시나리오와 캐릭터, 두 가지가 좋아야 한다. <파괴된 사나이> 역시 두 가지가 좋아서 선택한 거였다. 이후로도 쭉 그래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완전 색다른 형사는 아니지만.

엄기준
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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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색다른 형사가 아니란 말처럼 그간 형사 역할은 수많은 배우들이 해왔다.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역할이기도 하다. 엄기준만의 형사를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엄기준 : 솔직히 그 부분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괜히 뭔가 보여주려 한다면 작위적으로 보일 것 같더라. 그냥 작품 안에 있는 형사, 돌출되지 않는 형사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야기의 흐름 등이 강지윤(이시영) 작가에 의해 흘러가는데 그걸 잘 받쳐주는 게 내 역할이다.

Q.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 왔지만 하나 같이 강한 인물들이다. 목표를 향해 무섭게 달려가는,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인물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더라.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엄기준 : 어떤 캐릭터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게 그 역할이 지닌 행동의 동기가 되는 거니까. 다만 복수 이쪽으로 유난히 강해 보여서 그런거라 생각한다.

Q. <더 웹툰:예고살인>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웹툰을 이용한 게 굉장히 주효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자체에는 웹툰이 없을 것 아니냐. 시나리오를 읽을 땐 어땠나.
엄기준 : 시나리오에는 웹툰이 없지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나. 소설도 마찬가지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보면,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글을 읽으면서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는데 이 시나리오도 그랬다. 그런 부분이 있어서 정말 무서웠다.

엄기준
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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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나리오를 보면서 상상했던 그림과 실제 영화를 봤을 때를 비교한다면.
엄기준
: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애초에 내 캐릭터가 칙칙하고, 빚도 있고, 비리도 좀 있는 그런 어두운 형사 역할이었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린 그림은 흑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다른 공포영화와 색감이 다르지 않나요. 흑백이 컬러로 펼쳐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Q. 또 영화 속에 다양한 웹툰이 나오지 않나. 시나리오 볼 땐 그 웹툰을 상상만 했을 텐데 직접 본 소감은.
엄기준 : 오싹했다. 촬영할 때 강지윤 작가의 책을 보는 게 있다. 총 10페이지 정도만 그려져 있는데 그림이 서슬어린 느낌이었다. 섬뜩했다.

Q. 평소 웹툰은 자주 보는 편인가.
엄기준 : 웹툰 보다는 아직도 만화책을 좋아한다. 아직도 선물 받아놓고, 읽지 않은 만화책만 30~40권 있다. <유령> 찍을 때 명계남 선생님이 아이패드로 대본을 보더라. 그거 보고 깜짝 놀라긴 했다. 그래도 난 넘기는 게 좋다.

Q. 공포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인터뷰 할 때 ’평소엔 무서워서 공포 영화를 못 본다’고 말하는 배우들이 꽤 많다. 그런데 엄기준 씨는 왠지 공포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
엄기준 :
좋아한다. 어지간히 유명한 공포 영화들은 다 본 것 같다.

Q. 실생활에선 어떤 순간에 공포를 경험하곤 하나.
엄기준 : 음. 거의 없다. 예전에 공연을 보기 위해 유준상 형님이랑 미국 브로드웨이에 간 적이 있다. 형님은 옆에서 자고 있고, 나는 뒤척이고. 스튜어디스는 물병과 컵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비행기가 기압 때문에 ‘뚝’ 떨어지더라. 승객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그 때 스튜어디스가 엎어지는데도 쟁반을 똑바로 들고 있는거다. 컵도 그대로 있고. 그게 왜 그렇게 웃긴지. 그 상황에서도 공포심은 없었던 것 같다.

Q. 어떻게 보면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 상황에서 웃었다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진다. 유준상 씨의 반응은 어땠나.
엄기준
: 아무래도 그 상황이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무사히 잘 내렸고, 공연도 잘 보고 나서 형한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너무 깊게 잠을 자서 아예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더라. 하하.

Q. 공포가 아닌 이 영화의 다른 매력을 꼽는다면. 어떤 부분을 추천해주고 싶은가.
엄기준 : 이 영화가 죽음과 귀신 때문에 공포로 가는 건데 사실 드라마 라인은 스릴러에 가깝다. 알고 봤더니 이런 과거가 있었고, 그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이렇게 이야기가 연결성을 가지고 계속 이어지고, 넘어가는 게 너무 좋더라.

엄기준
엄기준
엄기준

Q. 방금 말한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엄기준이 연기한 기철은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을 것 같나.
엄기준 : 뺀질거리긴 하지만 나쁜 짓은 안했던 것 같다. 그냥 박봉에 살고 있는 형사겠죠. 안 그랬으면 일찌감치 죽음을 당했겠죠. 하하하.

Q. 첫 번째 영화인 <파괴된 사나이>가 100만을 살짝 넘겼지만 사실 만족할 만한 흥행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흥행에 대해 상당히 부담을 느낄 것 같은데.
엄기준 : 이런 말하면 홍보사나 영화사는 싫어하겠지만 흥행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드라마도 솔직히 <유령>이나 <여인의 향기> 등 최근 들어 잘됐지 처음엔 줄줄이 안 됐다. 이준기가 군대 가기 전에 찍은 <히어로>, 그런 드라마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주말 드라마는 조기 종영, 화려했던 <그들이 사는 세상>도 한 자리수 시청률이었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그런 욕심은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욕심이 많을수록 실망이 큰 법이라고.

Q. 일상 속 ‘인간’ 엄기준이 어떤 사람인지가 참 궁금해진다.
엄기준 : 나 스스로를 가만히 두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이거 밖에 못해’ 이런 식이 제일 많은 것 같다. 뭐 그리 심하지는 않은데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은 분명하다.

Q. 어휴.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나. 불면증도 그래서 생긴 것 아니냐. 지금 보니 눈도 벌겋다.(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벌겋게 된 눈을 보고 잠을 못잤냐고 묻자 불면증이 있다고 얘기했다.)
엄기준 : 방송하면서 불면증이 생겼다. 밤낮이 아무래도 뒤바뀌니까. 드라마 찍을 때 1주일 동안 몇 시간 못자고, 그리고 나선 몰아서 자고. 한 번은 24시간 동안 자보기도 했다. 새벽 3시에 촬영 끝났는데 간단히 술 한 잔 하고, 5시에 잠들어서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그리곤 바로 촬영 준비를 위해 메이크업 받으러 갔더니 ‘어제 뭐했냐’면서 ‘피부가 너무 좋아서 화장 잘 받는다’고 하더라. 하하. 뭐 그런 식이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순간 이렇게 됐다.

엄기준
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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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뮤지컬 할 때와 패턴이 완전히 뒤바뀌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조절이 조금은 필요하겠다.
엄기준 : 그건 맞다. 뮤지컬 할 때는 보통 새벽 3~4시에 자게 된다. 그리고 아침 11시에 일어나고. 드라마 할 때와 완전히 다른 패턴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 방송을 할 때부터 뮤지컬하고 드라마를 동시 다발적으로 했다. 시작을 <김치치즈스마일>로 했는데 방송만 5개월, 촬영기간은 7개월이었다. 그 사이에 뮤지컬과 연극을 각각 1편씩 끝냈다. 시작부터 그렇게 하다 보니 그 부분에 있어 스트레스는 없다. 오히려 지금 공연만 하고 있어서 그런가. 하하.

Q. 엄기준에게 있어 뮤지컬 그리고 연기는 어떤 의미인가.
엄기준 : 의미를 떠나 계속 뭔가를 꾸준히 하고 싶다. 뮤지컬, 영화, 드라마, 연극 상관없이. 뮤지컬이 좋은 건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다. 1995년도였던 것 같은데, 그 때 남자 3명으로 구성된 가수 팀을 만드는데 같이 하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하고 싶었는데 계약 기간이 5년이면서 그 기간에 다른 건 못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지 않겠다고 했다.

Q. 갑자기 문득, 연기와 노래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1995년도면 한참 전인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엄기준 : 연기는 고2, 노래는 고1 때부터 했던 것 같다. 그땐 이게 직업이 될지 몰랐다. 그냥 좋아서 했던 거다. 노래는 고등학교 당시 친한 친구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데 굉장히 잘 하더라. 그때부터 노래를 연습했다. 그 친구한테 직접 배워가면서. 연기는 집에서 TV를 보는데 어떤 배우가 너무 멋있더라. 그때 저거 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 드라마 어떤 드라마인지, 어떤 배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볼 수 있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첫사랑을 시간이 흘러 나중에 우연찮게 다시 봤을 때, 그 때 느끼는 실망감 같은 게 있지 않나. 그냥 기억 속에 ‘환상’을 간직하고 싶다.

글,편집.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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