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듯 그 모습에 괴로웠던 나의 마음, 변함없는 나의 노래 그칠 줄을 모르네.
박성연 ‘물안개’ 중

박성연 〈Park Sung Yeon With Strings〉
‘한국 재즈의 대모’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24인조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앨범. 일흔을 앞에 둔 박성연은 앨범재킷에서 활짝 웃고 있고, 앨범 속지에는 1969년 첫 공연의 사진, 해먼드오르간의 거장 잭 맥더프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도 있다. 사진 속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앨범에는 사진보다 아름다운 노래들이 담겼다. 박성연의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숙성되는 재즈 보컬의 표상과도 같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듯이 야누스를 꿋꿋이 지켜온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녹음된 박성연의 노래는 가슴 저리다 못해 뜨겁게 적시는 감동을 전한다. 최희정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은 오케스트라와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인 송영주(피아노), 최은창(베이스), 오종대(드럼)의 앙상블은 박성연의 노래를 훌륭하게 보좌하고 있다. 무반주로 노래하는 ‘Danny Boy’에서 목소리의 떨림, 숨소리 하나하나는 박성연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즈는 마법이 아니지만, 박성연의 노래는 마법과 같다.

이승철 〈My Love〉
4년 만에 나온 이승철의 11집. 이승철은 매 앨범마다 상당한 음악적 야심을 보여줘 왔다. 최근에는 심사위원, OST 전문가수의 이미지가 생겼지만, 그는 엄연히 ‘앨범형 아티스트’다. 일례로 미국 프로듀서, 엔지니어,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며 팝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으려 힌 4집 〈색깔 속의 비밀〉(1994)은 당시로서 군계일학이라 할 만한 훌륭한 음질과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줬다. 이런 욕심은 〈My Love〉에서도 엿보인다. 신곡들은 대체로 감상하기에 편안하다. 가창력을 자랑하는 곡은 단 한 곡도 없으며 대신 그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에 완전히 올라타 자연스레 귀에 감긴다. 영롱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첫 곡 ‘사랑하고 싶은 날’부터 지금의 이승철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는 ‘손닿을 듯 먼 곳에’까지 9곡이 고르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만든 ‘늦장 부리고 싶어’와 ‘40분 차를 타야해’는 이승철의 새로운 면모를 끄집어내고 있다.

김예림 〈A Voice〉
결론적으로 말해 김예림의 장점만 살린 똑똑한 앨범이다. 〈슈퍼스타K3〉를 막 끝내고 김예림을 만났을 때에는 수줍은 소녀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최근 쇼케이스 장에서 노래하는 것을 봤을 때에는 전혀 떨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라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오디션 출신 신인 가수를 본 중에 가장 안정적인 노래였다. 윤종신, 이규호, 조휴일, 신재평(페퍼톤스), 정준일(메이트) 등 화려한 작곡가진이 만든 다섯 곡은 김예림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면서 지금의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출중한 완성도다. 장르가 제각각이라 색이 모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첫 앨범이 아닌가. 김예림은 쇼케이스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해달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녀의 바람을 충분히 이뤄줄 앨범이다. 신기한 것 한 가지는 〈슈퍼스타K3〉가 끝난 지 벌써 1년이 흘렀음에도 김예림의 신보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는 것이다. 잘만 만들어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 생리인데 말이다. 여기엔 분명히 김예림만의 매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 매력이 뭘까?

무당 〈Past & Future Vol.1〉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또는 하드록으로 회자되는 무당이 30년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과거 심의에 걸렸던 ‘멈추지 말아요’ 등 예전 곡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으며 신곡 ‘백수탈출’까지 네 곡이 담긴 2.5집이다. 전설로 회자된 무당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지난달 24일 ‘서울 레코드페어’ 전야제에서였다. 환갑을 훌쩍 넘긴 무당의 리더 최우섭(65)의 목소리는 젊은이처럼 쩌렁쩌렁했고, 기타 연주는 광폭했다. 록의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지는 무당의 음악은 흐뭇하기까지 했다. 최우섭은 메탈계의 실력파 후배들인 김현모(베이스), 이도연(드럼)과 꽤 오래 합을 맞추며 권토중래를 꿈꿨다. 앨범에는 헤비메탈의 고전적인 느낌이 잘 살아 있다. 8분이 넘는 곡 ‘Magic Dance’의 광활한 연주는 앨범의 백미. 무당은 과거의 곡을 복원한 형태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할 예정이다.

포브라더스 〈세기말 반동자〉
포브라더스는 벤처스의 서프 록부터 리버풀 머지 사운드, 개러지 리바이벌에 이르기까지 로큰롤의 초기 사운드를 간직한 밴드다. 인디 신에는 오! 부라더스부터 락타이거스, 문샤이너스, 테디 보이스 등 록 음악의 초기 형태인 로커빌리, 힐리빌리와 같은 고전적인 리듬을 차용해 흥겨운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들이 있어왔다. 물론 각 밴드 멤버들의 경력, 취향에 따라 들려주는 음악은 천차만별이지만. 최근 홍대에 브리티시 록, 개러지 록 밴드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기본’을 짚어내는 팀들은 보기 힘들다. 일단 기본을 짚어야, 이후에 개성이든, 특색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포브라더스는 커다란 가능성을 안고 간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달려간다.

판타스틱 드럭스토어 〈Dance With Me〉
판타스틱 드럭스토어의 정규 1집. 작년 데뷔 EP 〈This Is Nothing〉을 발표한 판타스틱 드럭스토어는 다양한 공연을 통해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신보에서는 한층 강력해진 개러지 록을 선보이고 있다. 신보에서 판타스틱 드럭스토어는 ‘일취월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 성장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This Is Nothing〉에서는 제목처럼 자신들의 10분의1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작의 곡들이 개러지 록이라는 틀 안에서 전형성으로 다가왔다면, 신보의 음악들은 가사와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판타스틱 드럭스토어의 장기인 댄서블한 리듬은 여전히 잘 살아있다.

러블리벗 〈Love Is Lovely But…〉
2013년 들어 여성 뮤지션들의 모양새가 점점 변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기타를 연주하고 예쁘게 노래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상당히 많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최근 들어 퓨어킴, 선우정아, 정란 등 새로 등장한 세력들이 출중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기존의 한희정, 박새별 등도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등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러블리벗은 여성 프로듀서 1인이 중심이 된 프로젝트 그룹으로 ‘여성 판 공일오비, 또는 에피톤 프로젝트’라고 하면 되겠다. 발라드부터 전자음악까지 여러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으며 감성적인 멜로디로 수렴된다.

사라 브라이트만 〈Dreamchaser〉
음악계에는 많은 여신들이 있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은 정말로 여신이라 할 수 있다. 새 앨범에서도 어김없이 켈틱 풍의 멜로디, 팝과 오페라의 조화, 그리고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미 팝페라의 상징이 돼버렸기 때문에 음악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 듯. 팝페라의 대표적인 가수로 전 세계 3천 만장의 앨범판매고를 올렸으며 곧 뮤지션 최초로 우주여행도 간다고 한다. 그녀의 단독공연은 대형 뮤지컬을 상회하는 스케일을 지닌다. 2004년에 한국에 처음 내한공연을 왔으 때에도 엄청난 스케일의 무대를 보여줬다고 하는데, 이번 공연 역시 기대를 모은다. 쉰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우시겠지.

바비 맥퍼린 〈Spirityouall〉
앨범의 뒷면에 적혀있듯이 바비 맥퍼린이 ‘아메리카나’를 재해석한 앨범이다. 아메리카나(Americana)는 블루스, 가스펠, 모던포크, 컨트리, 블루그래스, R&B 등 미국의 루츠뮤직을 뜻한다. 바비 맥퍼린은 재즈, 월드뮤직, 클래식을 아우르며 보이스 퍼포먼스(Voice Performance)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독보적인 존재. 작년에 그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무대 위에 의자와 마이크 한 대만 달랑 놓여있더라. 그는 90분 동안 손바닥으로 가슴을 두드려 리듬을 만들고 팔세토와 그로울링을 오가며 뽑아낸 각종 소리로 ‘지구의 모든 음악’을 들려주려는 듯했다. 이번 앨범에는 그런 특화된 퍼포먼스는 없다. 초특급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훌륭한 미국 전통음악 위로 바비 맥퍼린은 자기 식의 가스펠, 포크 등을 들려주고 있다.

O.S.T. 〈World War Z〉
영화 〈월드 워 Z〉를 보고 온 지인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그냥 재미있다더라. 대개 영화 OST라고 하면 삽입된 유명 노래들의 모음집이거나, 영화만을 위해 따로 제작된 스코어들을 수록하는 경우라 나뉘는데 이 앨범은 후자다. 영화의 오프닝, 엔딩에 나오는 록밴드 뮤즈의 곡들은 이 앨범에 실리지 않았다. 뮤즈의 매튜 벨라미는 〈The 2nd Law〉를 작업할 때 영화의 원작소설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류 최후의 대재난을 그린 소설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앨범이라 그렇게 스케일이 큰 앨범이 나온 것일까? 영화음악은 〈다이하드〉, 〈웜 바디스〉, 〈설국열차〉 등의 음악을 맡은 마르코 벨트라미가 맡았다. 방대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영화의 긴장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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