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로부터 한국 기자들을 초청한다는 초대장이 날아왔다. 디즈니가 한 국가의 취재진을 단독으로 초청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아무래도 <아이언맨3>의 한국에서의 흥행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 공항으로 향하며 목적지인 LA를 떠올려본다. 천사들의 도시, 한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가장 많이 실현된 도시, 디즈니랜드와 다저스 구장과 비버리힐즈가 있는 도시,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영화산업의 도시. 하지만 LA에 도착한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도시에 품고 있던 거대한 환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라 하기엔 LA의 풍광은 너무나 황량하고 쓸쓸하다. 이곳이 ‘영화의 도시’임을 체감하게 하는 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시간 반 쯤 달렸을까.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The Walk of Fame)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LA에 오긴 했구나’ 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하지만 이 역시 TV나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화려한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유명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거리를 쭉 따라 걸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코닥 극장(Kodak Theatre)과 최신 영화가 가장 먼저 상영된다는 맨스 차이니즈 극장(Mann’s Chinese Theater)을 눈에 담는다. 극장들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건, 영화 속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들. 스파이더 맨, 브루스 웨인, 잭 스패로우를 눈앞에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 그들과 사진을 찍으면 팁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허락 없이 사진을 찍었다간, “파파라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1. 사진을 찍으면 팁을 줘야하는지 모르고 ‘도촬’했다가 파파라치라고, 배트맨과 베인과 트랜스포머에게 공격당할 뻔 한 정모기자. 2 유명인들의 밀랍 인형을 전시해둔 ‘마담투소’ 3. ‘명예의 거리’에서 발견한 ‘휴 잭맨’의 이름.(왼쪽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LA 도착 3일째 되는 날, LA 버뱅크에 자리한 디즈니 스튜디오로 향한다.(둘째 날 방문한 디즈니랜드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자세하게 다루겠다.) 정문을 통과하자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일곱 난쟁이가 기둥을 받치고 있는 ‘팀 디즈니’ 빌딩이 보인다. ‘팀 디즈니’ 빌딩 앞에 있는 월트 디즈니와 미키 마우스 동상이 “어서와” 하며 반기는 듯하다.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가족적인 애니메이션을 지향했던 창립자 월트디즈니의 성향이 건물 곳곳에서 읽힌다. 건물에 새겨진 디즈니 캐릭터들이 없다면, 대학캠퍼스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디즈니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 건물 한 쪽을 그 영화와 관련된 아이템들로 채운다. 작년엔 <주먹왕 랄프> 개봉에 맞춰 사탕과 미니 오락기 등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올해엔 그 자리를 <몬스터 주식회사>의 단짝콤비 마이크와 설리가 차지하고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몬스터 대학교>의 개봉이 임박했음은 감지한다.

대학캠퍼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디즈니 스튜디오. 건물 곳곳에 디즈니 캐릭터들이 숨어 있다. 디즈니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디즈니 스토어’에서는, 직원들에게 상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프랭크 G 웰스 씨어터’ 건물 1층에 있는 아카이브에 들어서자, 캐릭터 가면을 뒤집어쓰고 일하던 중년의 여성이 우리를 맞는다. 이 괴짜 여성은 디즈니의 아카이빙을 담당하고 있는 제니 핸드릭슨. 올해로 입사 20년이 된 그녀는, 일할 때 디즈니의 캐릭터 가면을 즐겨 쓴단다. 디즈니에 최적화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아카이브에는 월트디즈니가 사용한 개인소품들과 오늘의 디즈니를 있게 한 캐릭터 상품, 그리고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회의록 등이 보관돼 있다. 미키 마우스의 공식 초상화와 오스카 트로피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한국기자들에게 디즈니의 역사를 소개해 준 이는 디즈니 스토리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하워드 그레이스. 그의 안내에 따라 디즈니를 간접 체험해 보시길.

디즈니 스튜디오 아카이브

“이 아카이브에는 예약을 하거나 초대 받은 분들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가끔은 직원들을 위한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는 곳이죠. 워낙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보관된 곳이기 때문에, 과거 자료를 보고 싶은 작가들이 이곳에 와서 제작 당시에 있었던 오리지널 노트를 찾곤 합니다. 그런 자료들이 몇 백 박스씩 있거든요.”

아카이브에 보관돼 있는 미키마우스 초상화

“여기 미키마우스 초상화가 있군요. 왼쪽이 1978년도에 그려진 미키마우스 공식 초상화랍니다. 미키가 15세 됐을 때의 그림이죠. 바로 옆에 있는 초상화는 올해 그려진 건데, 그러고 보니 미키마우스도 벌써 85세 할아버지가 됐네요. 으허허허허. 디즈니 스튜디오는 올해로 90세가 됐습니다. 캔사스에 살던 월트디즈니가 이곳으로 이주해 온 건 1963년도예요. 자신의 형인 로이 디즈니와 손잡고 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 디즈니의 출발이죠. 스튜디오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삼촌의 차고에서 일을 했다고 하니, 엄밀히 말하면 허름한 차고가 월트 디즈니의 모태죠.”

과 장편만화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여 그해의 오스카상 부문 중 단편 만화 영화상과 과학기술상을 수상한 바있다." />멀티플레인 카메라.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어브 아이웍스가 개발한 장비로서 1937년에 단편만화 영화 <옛 방앗간>과 장편만화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여 그해의 오스카상 부문 중 단편 만화 영화상과 과학기술상을 수상한 바있다.

“디즈니 명작들을 탄생시킨 9명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들을 우리는 ‘나인 올드맨(nine oldman)’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들이 보여준 개척정신과 창의력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죠. 이 ‘멀티플레인 카메라’는 월트디즈니와 ‘나인 올드맨’들이 만화의 입체감과 원근감을 불어넣기 위해 고안한 장비예요. 굉장히 크죠? 이래봬도, 옛날에는 이 거대한 장비가 있어야만 사슴 ‘밤비’가 숲 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장면 등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굉장히 획기적이라 평가받은 기계죠. 이제는 만능 컴퓨터에 밀려 골동품이 됐지만, 저희에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물품입니다. 밖으로 나가, ‘애니메이션’(Animation) 빌딩으로 이동할까요? ”

“이곳은 1940년에 오픈한 ‘애니메이션’ 빌딩이에요. 점보(1941년)와 밤비(1942년) 등이 탄생한 곳이죠. 하지만 40년대는 디즈니에게 어둠의 시절로 기억됩니다. 정부가 디즈니 스튜디오를 장악해서 군사기지로 활용했거든요. 오, 이런 동화나라에 군사기지라니. 지금 생각해도 슬프군요. 다행히 디즈니는 <신데렐라>를 통해 부활할 수 있었죠. 이후 수많은 작품들이 이곳 ‘애니메이션 빌딩’에서 다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애니메이터들이 1985년에 LA 부근의 글렌데일로 이사를 가면서 지금은 다른 분야 실무를 담당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지만요. 저기 ‘잉크 앤 페인팅(Inking&Painting)’ 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보이십니까? 과거, 여기에서 그림 작업이 끝나면 ‘잉크 앤 페인팅’ 건물로 넘어가서 색을 입히는 수작업을 했더랬죠. 아, ‘애니메이션’ 빌딩과 ‘잉크 앤 페인팅’ 빌딩 사이를 잇는 지하 통로도 있습니다. 비나 눈이 올 땐 지하 통로를 이용해서 작업물을 옮겼죠. 종이가 젖지 않게 말입니다.”

애니메이션 빌딩에 보관 돼 있는 캐릭터 스토리 스케치와 콘셉트 아트들

“애니메이션 빌딩 내부에는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흔적들이 있습니다. 양쪽 벽을 보세요. 미키 마우스, 라이언 킹, 주먹왕 랄프, 101 달마시안, 미녀와 야수 등의 스토리 스케치와 컨셉트 아트들입니다. 여기 <미녀의 야수>의 야수 그림이 있군요. 이 캐릭터를 그린 분은 글레인 케인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애니메이터예요. 글렌인 케인은 어떤 캐릭터를 그릴 때 해부학적인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직접 공부하기도 했죠. 선들이 굉장히 러프하지 않나요? 이런 작업을 통해 완벽한 선을 추구했던 아티스트랍니다. 오! 제가 좋아하는 밤비의 오리지널 아트워크도 있군요. 이 그림을 주목해 주세요. 신비롭지 않나요? 중국계 아트 디렉터 타이러스 왕이 참여하면서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그림입니다. 그 분이 지금 103세인데,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 디즈니사는 2년마다 스튜디오에 크게 기여한 직원들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핸드 프린팅 행사예요. 애니메이터든, 마케팅 담당자든, 감독이든, 배우이든, 이매지니어든 디즈니에 이바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손도장을 찍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여기는 꿈의 나라니까요.”

글,사진,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디즈니 스튜디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