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스페셜 단막 2013 <유리 반창고> 2013년 6월 26일 오후 11시 10분
다섯 줄 요약
가출 청소년 선우(이혜인)가 아빠 대행 아르바이트를 경도(박상면)에게 맡기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혼 후 자신에게 무심한 엄마와 친척집을 전전하는 환경이 싫어 가출한 선우. 일하느라 딸 유리와 함께 하지 못해 사고를 당하게 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경도. 가수가 꿈인 선우와 왕년에 가수였던 경도는 여러 사건으로 얽히면서 상대방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함께 거리 콘서트를 하며, 과거의 상처로부터 한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다.
리뷰
‘우리는 한 가족’ 선우가 팸 멤버들과 같이 사는 방 벽에 붙어 있는 문구다. <유리 반창고>는 흡사 이 문구와 같았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채팅을 통해 만났지만, 가족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붙인 문구. 그것처럼 <유리 반창고>도 가족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내 게시하고 있었다.
<유리 반창고>에는 가족의 의미가 많이 나온다. 가족끼리는 미안하고 말고가 없다 하고,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고 한다. 핏줄은 일부러 만들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이것을 시청자가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 손쉬운 방법은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시청자 스스로가 느끼게 하려면, 갈등이 깊어지고 해결되는 가운데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하지만, <유리 반창고>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과 동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감정이 쌓일 시간이 없다.
선우는 엄마에게 불만이 있고, 중간에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팸 멤버로 안 받는다고 할 정도로 완고하지만, 그 갈등을 해결할 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도의 말 몇 마디와 엄마의 말 몇 마디에 마음을 풀 뿐이다(심지어 엄마가 그런 중요한 말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없다). 경도는 딸 유리에게 미안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선우와의 만남을 통해 중환자실에 들어갈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지만, 실상 선우때문에 깨닫게 된 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유리가 얼마나 아빠와 함께 하고 싶었는가 하는 것뿐이다. 결국 의미 없는 사건은 감정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설명적으로 나열된 주제는 카타르시스를 가져오지 못한다.
<유리 반창고>는 가출 청소년들이 채팅으로 만나 이룬 팸, 아빠 대행 아르바이트 등 전통적인 가족과 다른 형태를 보여주며,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할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좋지 않은 표현 방법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과 감정에 제한을 받게 된 것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수다 포인트
- 딸 방을 딸기우유 뿌려놓은 듯 꾸며놓은 박상면씨. 핑크 마니아인줄 몰랐네요. 혹시 제일 좋아하는 가수도 핑크 플로이드?
- K본부의 구라 부자(父子)를 향한 사랑. 아빠가 두드림으로 맡았던 시간을 아들에게 이어주는.
- 로이킴&정준영의 ‘먼지가 되어’에 이은 박상면&이혜인의 ‘먼지가 되어.’ 역시 명곡은 누가 불러도 명곡이네요.
글. 김진희(TV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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