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영화 <월드워Z> 포스터

세계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체불명 존재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UN 조사관 출신의 제리(브래드 피트)는 가까스로 가족들과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인류 최악의 위기를 막을 단서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영화는 전 세계를 장악한 좀비에 맞선 제리의 행적과 활약상을 따른다. 15세 관람가, 20일 개봉.

황성운 : 지구를 폐허로 만든 좀비의 위협은 짜릿하다. 이를 막아내는 과정은 다소 헐겁다. ∥ 관람지수 - 7 / 좀비지수 - 7 / 인류구원지수 – 6
기명균 :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등에 업은 15세 관람가 버전 ‘발업’ 좀비. ∥ 관람지수 - 7 / 좀비지수 - 8 / 인류구원지수 – 6

2eyes ∥ ‘짜릿한’ 좀비의 위협

스틸" />영화 <월드워Z> 스틸

황성운 : 올 초 <웜바디스>라는 ‘좀비 로맨스’를 경험했다. 좀비도 사랑할 수 있다는, 신선함이 무기였다. 이번에는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좀비 떼를 만났다. 또 좀비 영화하면 떠오르는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전혀 없다. 밝은 대낮에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좀비들이 가득하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블록버스터로선 ‘자격 미달’이었을 터. 여하튼 블록버스터와 만난 좀비는 굉장히 빠른 속도와 강력한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좀비가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상당히 놀랄만한 좀비 액션 장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칭 ‘공성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성벽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는 모습 대신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는 엄청난 좀비 떼, 장관이다. 비행중인 헬기를 추락시키고, 골목 사이를 빠르게 질주하는 좀비 떼들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기세다. 인류를 멸망 위기로 몰아넣은 좀비, 영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 대중들에게도 상당한 위협을 가한다. 그 긴장감이 짜릿하다.

기명균 : 멍청한 좀비에게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월드워Z>의 좀비는 빠르다. 팔과 고개를 우스꽝스럽게 꺾은 비주얼은 그대로지만 뜀박질 실력이 업그레이드됐다. 가공할 만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이륙중인 헬기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만큼 <월드워Z> 속 좀비는 더 위협적이고, 영화의 박진감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꺽, 꺽’ 소리를 내는 좀비의 모습은 가끔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그게 또 좀비의 매력 아닌가. 또한 <월드워Z> 속 좀비들은 좀비치고 ‘소프트(?)’하다. 성벽을 넘고, 사람에게 달려들지만 팔을 뜯어먹고 내장이 삐져나오는 식의 충격적인 장면은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물론 ‘좀비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하드코어한 좀비물에 거부감을 가지는 ‘심약한’ 이들에게는 딱이다. ‘좀비 입문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나도 그랬다.

2eyes ∥ 브래드 피트의 고군분투


스틸." />영화 < 월드워 Z> 스틸.


황성운 : <월드워Z>의 결말은 정해져 있는 상황. 아무리 영화 속이라곤 하지만 설마 지구(또는 인류)가 멸망하도록 놔두진 않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좀비 처단 과정을 얼마나 긴장감 있게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월드워Z>가 선택한 길은 매우 단순하다. 오로지 제리(브래드 피트), 한 사람에 의존한다. 좀비의 위협을 피해, 좀비를 처단할 해결책을 찾아간다는 단순한 전개다. 그렇다고 제리가 좀비에 맞서 격렬하고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긴장감 하나 만큼은 ‘짱’이다. 심장을 탁월하게 쪼인다.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 시키고, 제리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한 전략이 주효했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적 색깔을 잘 버무려 맛깔나게 했다.

기명균 :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 모든 상황을 종결시키는 스토리. 히어로물이 아닌 이상,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제리가 좀비에 맞서 인류의 멸망을 막는다는 내용의 <월드워Z>도 자칫 잘못하면 그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제리의 고군분투는 결코 오버스럽지 않다. 가는 곳마다 그를 돕는 조력자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 도움이 된 소년부터, 평택의 미군, 이스라엘 여군, 보건센터 직원에 이르기까지 제리는 항상 주변 사람들과 힘을 합쳤다. 제리가 좀비에게 물리지 않을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그들에게서 얻은 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리와 다국적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좀비와 싸웠다. <월드워Z>에는 시각적 볼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eyes ∥ 수습하지 못한 결말 vs 좀비 퇴치 과정에 집중

스틸" />영화 <월드워Z> 스틸

황성운 : 판을 펼쳐놓긴 잘했다. 좀비의 발생 원인도 분명하다. 제리도 그 원인을 찾아 없애려는 것. 더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를 막을 방법조차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런데 결말은 초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물론 그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밋밋한 것만은 사실. 호기로웠던 초반 기세와 달리 끝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 물론 핵폭탄 등을 이용해 일거에 좀비 떼를 처단해도 욕을 먹을 게 뻔하고, 그렇다고 1대1 맞대결로 그 수많은 좀비를 상대했다가는 상영시간 10시간도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결말은 아쉬움을 남긴다. 초중반까지는 블록버스터로서의 위용을 갖췄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소소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후반부에 클라이막스를 두는 보통의 블록버스터와는 다르다. 좀비의 위협도 뒤로 갈수록 약해지고, 규모도 작아진다. 참고로 좀비의 공격에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도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니 잘 보길 바란다. 좀비를 처단할, 아주 중요한 열쇠다.

기명균 : 좀비의 전파는 ‘글로벌’하다. 피해자 수를 세는 그래프는 십억 단위로 늘어난다. 각국의 정부는 물론 UN본부도 늘어나는 좀비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제리가 쉽지 않은 상황을 이겨내고 좀비에 맞설 방법을 알아낸다.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딱 거기까지다. 이미 전 세계에 퍼진 좀비를 처단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무력해진 좀비는 더 이상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마무리에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그 전 과정에 집중한 판단은 성공적이다. 무책임한 결말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벌여놓은 판을 정리하게 위해 일일이 부가 설명을 붙였다면, 후반부는 자연스레 늘어진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깔끔한 결말이 낫다.

2eyes ∥ 미숙한 ‘가족애’의 표현

스틸" />영화 <월드워Z> 스틸

황성운 : 단순히 좀비 퇴치에만 집중하기는 아무래도 좀 불안했던 모양이다. 군데군데 ‘가족애’를 강조하는 장치들이 보인다. 자연스러웠으면 좋으련만. 가족애가 ‘절절히’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소리에 반응하는 좀비’라는 특징에 끼워 맞춘 설정까지. 가족을 끔찍하게 여기는 제리 외엔 그다지 가족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기명균 : <월드워Z>는 제리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에서 시작해 그들이 다시 만나면서 끝난다. 제리 가족을 통해 강조되는 가족주의는 ‘좀비와의 전쟁’과 겉도는 느낌이다. 실제로 제리가 좀비 퇴치를 위해 떠난 후부터 다른 가족들은 극의 중심에서 사라진다. ‘가족애’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부인과 두 딸을 좀비 이야기와 좀 더 긴밀하게 엮었어야 한다. 제리는 혹시나 자기가 좀비로 변해 가족을 해칠까 염려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러한 ‘가족과 좀비’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좀 더 다뤘다면, 의도한 가족주의는 좀 더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지 않았을까.

2eyes ∥ 영화 속에 등장한 한국

황성운 : 한국 사람이다 보니 할리우드 대작 속에 나오는 한국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제리가 좀비 퇴치를 위해 처음으로 찾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평택미군기지라는 구체적인 장소까지 설정된다. 반갑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 속 한국이 진짜 한국인지는 알 수 없다. 일부러 분간이 힘든 어두컴컴한 밤에 평택 기지를 찾는 것으로 설정한 듯 싶다. 한국어, 당연히 들을 수 없고, 한국 사람, 당연히 찾을 수 없다. 단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오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기명균 : 외국 영화에 한국이 등장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월드워Z>의 경우는 좀 다르다. 좀비가 창궐하는 나라의 대표가 된 느낌. 아무래도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평택 기지에서 근무했던 미국 군인은 뜬금없이 ‘북한’을 디스하기도 한다. 그만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기명균 kiki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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