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실용음악과 학생만 수천 명이 넘는데 그 중 프로로 데뷔하는 이들은 극소수예요. 반면 가요계에는 몇몇 작곡가가 수백 명의 가수를 상대로 곡을 쓰고 있죠. 제가 노래한 학생들의 곡이 관심을 받으면 다른 가수들도 이들을 찾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가요계에 곡을 공급하는 커다란 밭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6월 12일 개인 스튜디오 진앤원뮤직웍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조용필 열풍의 중심에 외국 작곡가들의 곡 ‘바운스’와 ‘헬로’가 있었다. 이승철도 11집 〈My Love〉를 작업하면서 외국 작곡가의 노래를 여섯 곡 받았다. 하지만 〈My Love〉에는 외국 작곡가의 곡이 단 한 곡만 실렸다. 대신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곡이 두 개 들어갔다. 이는 정말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형 가수이자 작곡가인 이승철이 아직 학생인 아마추어 작곡가의 곡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정규앨범에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학생들이 만든 ‘늦장 부리고 싶어’와 ‘40분 차를 타야해’가 이승철의 신선한 매력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4년 만에 나온 이승철의 새 앨범 〈My Love〉는 발매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조용필 효과’도 작용했을 것이다. ‘헬로’의 열기를 이끌어갈 후발주자는 이승철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데뷔년도, 나이로만 따지면 이승철은 조용필의 한참 후배다. 하지만 둘은 닮은 점이 많다. 록밴드 출신이기에 솔로 데뷔 후에도 밴드 작업을 선호했다. 조용필에게 ‘위대한 탄생’이 있었던 것처럼, 이승철에게는 ‘미래로’란 밴드가 있었다.(현재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인 최희선, 이태윤, 최태완은 과거 미래로의 멤버이기도 했다) 또한 해외 레코딩이 일반화되기 이전에 조용필은 〈The Dreams〉(1991)을, 이승철은 〈색깔 속의 비밀〉(1994)을 미국 프로듀서, 엔지니어,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며 팝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으려 했다. 즉 둘은 슈퍼스타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모범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려 노력해온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컴백하는 이승철에게 ‘조용필의 파격’을 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철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 신분인 후배들에게 눈을 돌렸고, 진주와 같은 노래를 찾아냈다.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이승철은 이 두 곡을 통해 인력은 많으나 문턱은 높은 음악계 현실을 꼬집고, 동시에 음악적으로 새로운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외국 작곡가가 만든 여섯 곡 중 나머지 다섯 곡은 가을에 나오는 〈My Love〉 파트2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약 이승철이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곡을 뒤로 하고 파트2에 들어갈 외국 작곡가의 노래들을 모두 파트1에 넣어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이승철은 매 앨범마다 상당한 음악적 야심을 보여줘 왔다. 최근에는 심사위원, OST 전문가수의 이미지가 생겼지만, 그는 엄연히 ‘앨범형 아티스트’다. 위에서 언급한 4집 〈색깔 속의 비밀〉에서는 당시로서는 군계일학이라 할 만한 훌륭한 음질과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줬다.(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음질에 전혀 손색이 없다) 음반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던 시절에 무려 40억 원을 들여 자신의 스튜디오를 지은 그가 아닌가? 이런 욕심은 〈My Love〉에서도 엿보인다. 새 앨범의 곡들은 대체로 감상하기에 편안하다. 가창력을 자랑하는 곡은 단 한 곡도 없다. 대신 그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에 완전히 올라타 자연스레 귀에 감긴다. 영롱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첫 곡 ‘사랑하고 싶은 날’부터 지금의 이승철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는 ‘손닿을 듯 먼 곳에’까지 9곡이 고르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음질 역시 명불허전이다.
‘늦장 부리고 싶어’와 ‘40분 차를 타야해’ 두 곡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그저 이승철의 디스코그래피 중 잘 만든 앨범 정도로 그칠 수도 있었을 게다. 이승철은 자신의 밴드 ‘황제’의 멤버들이 교편을 잡고 있는 동아방송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작품들을 40여 곡 들어본 후 최종적으로 두 곡을 택했다. 이승철은 “20여 곡 정도가 마음에 들었지만 앨범 콘셉트에 맞지는 않아 다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수경 양이 만든 ‘40분 차를 타야해’는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로 창작자의 풋풋한 감성이 잘 배어있다. 이 노래 막바지에 휘파람이 들려오는 순간은 앨범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큼 여운을 남긴다. 이승철의 음악적 파트너인 전해성 작곡가는 “그 나이에 나올 수 있는 가사가 신선하고 좋았다”고 평했다. 최재원 군이 만든 ‘늦장 부리고 싶어’는 힙합의 리듬과 록 사운드가 절묘하게 결합한 곡. 이승철은 후배들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장르를 접하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이 가진 기술적인 미숙함은 전해성 작곡가의 후반작업으로 갈무리됐다.
이 두 곡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지 학생들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결과물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곡은 앨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실 이승철 정도의 위치가 되면 하고자 하는 어떤 작곡가와도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해외 작곡가의 곡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제는 아예 외국 작곡가의 곡을 직거래로 가져오는 추세다. 만약에 이승철이 외국 작곡가에게 받은 여섯 곡 전부를 〈My Love〉 파트1에 수록했다면 어땠을까? 조용필과 이승철이 연이어 앨범 수록곡의 반 이상을 외국 작곡가와 작업한 결과는 그런 ‘직거래’ 경쟁을 더욱 부채질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장의 문턱이 낮은 작금에 젊은 작곡가들은 더욱 갈 곳이 없어지게 될 거다. 올해로 마흔여덟 살인 이승철. 그의 앨범 발매 주기로 봤을 때 〈My Love〉는 40대를 정리하는 앨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준 이승철의 혜안은 정말이지 빛나는 선택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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