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자신의 창작곡 발표에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꼈던 그녀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카페 ‘스튜디오70’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가능성을 발견한 기획사 ‘풀로 엮은 집’의 제안으로 프로듀싱 개념도 없이 스스로 모든 음악과정을 도맡아 처리해 데뷔 EP ‘독백’을 발표했다. 대중적 반향은 미미했지만 일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자 용기를 얻었다. 이에 여러 곳에서 정규앨범 제작 제의가 들어왔지만 대부분 제작조건이 취약했다. 정규 1집 녹음을 진행하던 중에 뒤엎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은 싱글 발표 후 가장 아쉬움을 느꼈던 ‘사운드’의 질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강허달림은 1집에 대해 “속을 너무 많이 썩어 음반이 나왔을 때 보기도 싫었습니다. 프로듀서 이름이 첫 브클릿 인쇄에 누락되어 폐기시키고 다시 인쇄를 했죠. 재킷도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의 작업을 거쳤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극복의 의지를 드러낸 대견한 가사와 탁월한 리듬감은 그 자체로 그녀만의 블루스가 되었다. 2008년 발표된 강허달림의 1집 <기다림 설레임>은 삶의 진솔한 향내가 감동적인 한국 토종 블루스명반이다. 29세 때 만난 한 남자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은 기다림과 극복의 미학이라는 음악적 감성을 제공했다.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끝내 자존심만은 잃지 않는 여성특유의 인내를 담고 있는 명곡 ‘기다림, 설레임’과 탁월한 감성적 보컬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미안해요’ 같은 창작곡들은 그 결과물이다.
EP 독백 (2005),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 2집 넌 나의 바다 (2011) (왼쪽부터)
그녀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비트 강한 경쾌한 리듬이 공존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그래서 청자를 때론 서정적 분위기의 노래에 푹 빠져들게 하고 때론 어깨를 들썩이는 흥겨움으로 인도한다. 절망과 고통의 흔적은 탁월한 리듬을 통해 극복되고 이내 희망의 메시지로 거듭나게 하는 힘은 강허달림 노래만의 차별성이다. 1집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앨범’에 선정되었고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올리며 그녀에게 ‘블루스 디바’라는 애칭이 자연스럽게 부여되었다.ADVERTISEMENT
전작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진 이야기를 담아낸 노래들은 장르적으로도 블루스를넘어 편안하고 익숙한 팝 영역으로 영토를 넓히며 폭넓은 대중과의 소통가능성을 모색했다. 피아노와 기타 한 대를 중심에 둔 소박한 편곡 트랙들은 특유의 절규 없이 잔잔한 보컬만으로도 바다처럼 넓디넓은 사운드의 여백을 넉넉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탁월한 보컬리스트서의 능력을 조용하게 웅변한다. 하지만 1집에서 경험한 애절한 감성과 탁월한 연주력이 합체된 가슴 찡한 감동을 기대한 대중에게 여유로워진 정서적 변화와 소박한 편곡 구성 그리고 보컬에 무게감을 둔 2집은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실 삶의 향기가 진동하는 강허달림의 독특한 보컬 질감은 그 자체로 매력을 발휘하는 곡과 내공 깊은 연주와 앙상블을 이룰 때 감동이 배가되는 곡으로 확연하게 갈린다. 그런 점에서 2집은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아쉬움을 남겼지만 향후 음악여정의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강허달림은 “블루스는 운명적인 장르지만 특정 음악장르에 매몰되기보다 좋은 노래를 찾아가는 음악여정을 오래 하고 싶다.”고 말한다. 행복해진 그녀는 많은 대중을 감동시킨 애절한 정서가 사라진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블루스를 넘어 팝, 포크, 록큰롤로 스펙트럼을 넓히며 사운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녀의 진검 승부는 장르의 매몰이 아닌 장르의 해체를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는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출산 일이 코앞이기에 이달 말 홍대 앞 라이브클럽 ‘벨로주’에서 열리는 단독공연은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출산 전 마지막 공연이 될 것 같다. 반가운 소식 하나 더. 명반으로 각인된 그녀의 1집이 금년 내로 아날로그 LP로 제작될 예정이라 한다.
ADVERTISEMENT
강허달림 프로필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1974년 6월 7일 전남 승주 출생
1997년 서울재즈아카데미 1기 보컬전공 수료,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 보컬
1998년 5인조 프로젝트 밴드 <풀 문> 결성
2002년 ‘Blues Project Band’ 보컬
2003년 블루스 밴드 <신촌 블루스> 객원보컬
2007년 인디 레이블 Run Music 설립
2008년 1집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앨범’ 선정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락부분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여성뮤지션’부문 노미네이트, 2013년 1집 수록곡 ‘기다림, 설레임’ < 한국 100대 인디명곡> 선정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