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민규동-김태용, 이해영-이해준, 김곡-김선 등 공동연출이 있기는 하지만 드문 사례이긴 하다. 어떻게 연출을 함께 하게 됐나?김병서(왼쪽), 조의석(오른쪽) 감독" /><감시자들> 김병서(왼쪽), 조의석(오른쪽) 감독<감시자들>은 <일단 뛰어> <조용한 세상>을 연출한 조의석 감독과 <호우시절> <푸른 소금> <위험한 관계>의 촬영을 담당한 김병서 감독의 공동 연출작이다. 홍콩영화 마니아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임을 눈치 챌 수도 있다. <감시자들>의 원작은 홍콩 유내해 감독의 <천공의 눈>이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의 큰 그림은 유내해 감독의 아이디어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게 좋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님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가깝게 (<영웅본색>을 리메이크 한)<무적자>부터 바다건너 (<엽기적인 그녀>를 리메이크 한)<마이 세시 걸>까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시자들>은 각색 영화의 지침서까지는 아니어도, 참고서로는 불릴법하다. 빼야할 부분은 과감하게 버리고, 더해야 할 부분에 공을 들인 ‘선택과 집중’이 좋다. 연출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게 뭔지, 맥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인상이다. 두 감독을 만나, <감시자들>에 대한 뒷얘기를 들어봤다.
김병서: 이전 현장에서 촬영에 도움이 될 만한 레퍼런스를 찾다가 우연히 홍콩 영화 <천공의 눈>을 보게 됐다.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연출에 대한 갈증이 있는 상태였는데, 의석이 형에게 그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님을 소개시켜 주더라. 대표님도 <천공의 눈>이 기획적으로 재미있겠다는 판단을 하셨는지, 역으로 우리에게 공동연출을 제의해 오셨다.
조의석: 내가 이성적이고 드라이한데 반해 병서는 감성적인 부분이 있다. 또 연출경험이 있는 내가 현장을 오래 쉬고 있는 상태였고, 병서는 연출경험은 없지만 열 작품을 쭉 해 온 현장성이 있으니,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시너지가 있으리라 보신 것 같다.
Q. 스태프들과 관계 설정은 어떻게 했나? 구체적으로 잡고 들어갔나, 아니면 촬영을 하면서 잡아나갔나?
김병서: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갔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일치시키고, 현장에서는 촬영과 연출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현장에서 얘기하는 사람이 두 명이면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까. 이견이 있는 부분들은 하루 촬영이 끝난 후에 얘기를 나눴다. 그날 찍은 부분과 내일 찍을 부분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고, 다시 나가서 찍고, 그런 방법으로 촬영을 했다.
Q. (김병서 감독 바라보며) 연출에 갈증이 있었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역할을 분리했으니 갈증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김병서: 아니다. 현장에선 카메라를 잡았지만, 내 목소리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잖아. 촬영감독으로서 그랬다면, 그건 ‘월권’이었을 텐데 연출자로서의 역할도 있었기에 갈증은 충분히 풀었다.
Q. 이런 얘기 위험할지 모르겠는데, 영화 현장에서 촬영감독이 연출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경우도 횡행한 걸로 안다. 부정적인 의미로든 아니든.
조의석: 나는 경험한 적이 없는데, 그런 경우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예전에는 조금 많았던 걸로 안다. 그땐 경험 많은 촬영감독을 신인감독에게 붙이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런 경우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노하우 없는 신인감독이 답답하게 보일 수 있잖아. 그러다보면 연출에 관여하는 일들이 생기는 거지. 그런 것들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들어오면 동의가 되는 부분이니 말이다. 다만, 오버하는 지점이 생겼을 때 문제가 되는 건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 걸로 안다. 또 2-3 작품을 한 감독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말이다.
조의석: 어떻게 찍든 국내관객들에겐 낯선 영화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영화를 하는 동료들의 시선도 우리에겐 중요했다.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각색 포인트를 어떻게 잡느냐를 두고 고민이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집중한 게, 감시라는 새로운 소재와 여형사의 성장담이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부각시켰다. 범죄 전문가와 감시 전문가들의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출발했다.
Q. 엄태웅 주연의 영화 <특수본>(감독 황병국)도 <천공의 눈> 콘셉트를 참조해 로케이션 장소를 선택한 걸로 아는데, <천공의 눈>이 영화하는 사람들을 잡아끄는 특별한 매력이 있나보다.
조의석: 그러게.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그 얘기를 듣긴 했다. 황병국 감독님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언급 하시니까 “<천공의 눈>을 많이들 아나보다” 싶었다. 그와 동시에 “황병국 감독님은 왜 이 원작을 안 샀지? 먼저 하길 잘 했다.”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Q. <천공의 눈> 외에, 참고한 영화가 있다면?
조의석: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아르고> <타운> 등 감시에 관한 모든 영화들. 도보 추격신에서의 긴장감을 위해 <본> 시리즈도 참조했다. 그리고 <타인의 삶>과 <컨버세이션>! 감시를 다룬 영화 중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Q. 웃음 강박, 멜로 강박, 눈물 강박이 넘치는 충무로 바닥에서 오로지 하나의 장르에 우직하게 매달린 건, 여러모로 탁월한 선택 같다.
조의석: 그건 원작의 장점이기도 하다. 원작 자체가 드라이하다. 밀키웨이 레이블(두기봉 제작사) 쪽이 ‘쿨’하기도 하고. 그걸 한국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있어서 공간을 먼저 생각했다. 홍콩이라는 굉장히 밀도 높은 도시가 넓은 공간의 서울로 옮겨지니, 그 안에 액션의 규모를 키우고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면 좋을 것 같았다. 대신 원작이 가지고 있는 정서들, 이를테면 인물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는 것들은 그대로 가지고 갔다. 리듬감을 위해 생략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Q. 처음 계획한 게, 흔들리지 않고 쭉 갔나?
조의석: 조금 흔들렸다. 우성 선배가 들어오면서 약간.(웃음) 그런데 그렇게 되면, 황반장(설경구)과 제임스(정우성)의 듀얼이 될 것 같았다. <히트> 같은 영화가 되면 병서랑 내가 이 원작을 좋아했던 의미가 퇴색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행히 우성 선배도 “날 가지고 뭘 하려고 하지 마라. 난, 지금이 좋다”라고 하셔서, 처음 계획대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조의석: 캐릭터들이 다 달랐다. 경구 형은 일단 “싫다”다. “싫어! 이거 뭐야? 어떻게 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스타일이라서, 어떨 때는 상처도 받고 그냥 무시해서 가기도 하고 부탁도 드려야 했다. 그런데 또, 다 해 준다. 너무 잘 하고. 첫 테이크가 특히나 좋은데, 본인이 정해 놓은 룰 안에서 귀신같이 놀아주시는 스타일이다 우성 선배는 “내가 이거에 올인 해 줄게. 너희가 나를 어떻게 가지고 노나 보자!” 이런 마인드로 접근해 주셔서 밀고 당기는 재미가 있었다. (한)효주 씨 같은 경우는 계속 질문을 한다. 난처하게.(웃음) 거기에서 서로 “어버버버” 하면서 만들어 묘미가 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이)준호다. 날것이 하나 톡 들어온 거니까. 준호랑은 얘기도 많이 하고. 통화도 참 많이 했다.
Q. 말한 대로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본능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매사에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배우가 있다. 연출자로서 어떤 게 더 편한가?
김병서: 장단점이 있다. 본능적인 배우들은 스태프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서 오는 텐션들이 영화에 역으로 담기는 거지. 그분들의 직관이 영화에 영향을 주면서 또 하나의 무언가를 자가생성해 나가는 쾌감이 있다. 송강호 선배가 대표적이다. 반면 철저한 계산을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들과는 전체를 디자인하며 협업하기가 좋다. 영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약속이잖아. 그 약속들을 치밀하게 만들어가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조의석: 병서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있었을 거다. 열 작품을 하면서 여러 배우들과 작업을 해봤으니까.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배운 케이스다. 다양한 분들을 겪으며 섭섭할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큰 공부가 됐던 것 같다. 오랜만의 연출작이라 더 신경을 쓴 부분도 있고 말이다.
Q. 정우성이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조의석 감독이 전작(의 실패) 때문에 위축돼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조의석: 좋게 얘기해 주신 거지, 분명히 느끼셨을 거다. 많은 감독들을 겪어 본 선수이시니, ‘쟤가 지금 멘붕이구나’, ‘쟤가 지금 이 장면은 너무 좋아하는 구나’ 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셨을 거다. 나 역시도 ‘시선의 감옥’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공동연출을 바라보는 시선도 시선이었지만, 전작의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도 극복해야 할 문제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리스크였다. ‘감독이 조의석이라는 게 <감시자들>의 가장 큰 문제다’라는 댓글도 있었거든.(웃음) 거기에서 오는 부담이 굉장히 컸고, 그래서 더 예민했던 것 같다.
Q. <감시자들>은 촬영과 편집도 탁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많이 회자되는 게, 정우성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골목격투 장면이다. 일단 골목 신에서는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이 많이 거론되는 분위기다. 창문 신의 경우 <아저씨>가 생각나는데, 그래서일까. 흥미롭긴 한데, 그리 참신한 느낌은 아니었다.
조의석: 골목액션의 기본 콘셉트는 ‘제임스가 구두 방에 앉아있는 자기의 윗선에게 시선을 꽂아놓고 한 호흡으로 정진한다!’였다. 거기에 “<올드보이>는 수평, <베를린>은 수직액션을 보여줬으니 우리는 둘 다 해 보자”는 무술감독님의 아이디어를 더해져서 그런 액션이 탄생했다. 우성 선배가 <비트> 이후 처음으로 맨몸을 쓰는 액션을 한 건데, 돌아온 정우성에 대한 쾌감이 있으리라고 무술감독님이 판단했던 것 같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와이어를 단 허명행 무술감독이 우성 선배와 함께 뛰어내리면서 찍었다.
김병서: 근간은 같다. 카메라가 어디까지 쫓아갈 것인가에 대한 차이일 뿐이다. <아저씨> 같은 경우 유리창을 깨고 바닥에 착지한 후 달려가는 모습까지를 카메라가 원빈의 후면에서 보여주는 방식이고, 우리는 뒷모습과 더불어 정면도 팔로우 한 거다. 조금 더 다양한 앵글을 보여준 거지. 그런데 둘 다 <본> 시리즈라는 원형이 있다 보니, 쾌감에서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조의석: 첨언하자면, <아저씨>는 중간 중간 카메라의 컷을 쪼개서 이어 붙인 경우다. <본> 시리즈도 창에서 아래 층 창으로 들어갈 때, 분명 갈아 끼우는 순간이 있었을 테고. 그런데 우리는 정우성이 유리창을 깨고 나온 후 승용차 보닛 위를 구르고 서서 달려 나가는 것까지를 한 호흡으로 보여줬다. 이건 정말이지, 정우성이니까 가능했던 거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아나 몰라?(웃음) 또 하나의 차별점이라면 그 한 컷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황반장이 다른 호흡으로 또 뛰어내린다는 거다. 거기에서도 황반장은 ?는 입장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뒷모습을 찍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거기에서 시선이 관조적으로 빠지면서 앞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역시 무술감독님의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Q. 인물들이 감시의 주체인 동시에 감시의 대상이 된다. 다층적인 ‘감시의 시선’에서 오는 긴장감이 흥미로운데, 어떻게 접근했나?
김병서: 뛰지 않는 도보 추격극이기 때문에 리듬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스테디 캠(핸드헬드의 떨림을 제거한 카메라)이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이라면, 헨드헬드는 중력을 그대로 느끼면서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 전체 상황을 관조적으로 보여주는 여경보 촬영기사의 스테디 캠과 감정을 실은 나의 핸드헬드가 결합된 방식을 통해 리듬과 긴장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또 인물들의 동선이 굉장히 많이 교차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한 테이크 안의 컷이 어디에서 편집될지는 후반편집의 여지로 남겨둬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각 테이크 안에 여러 편집 가능한 지점들을 마련해 두기 위해 신경을 썼다.
Q. (이 질문과 답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우연으로 상황이 풀리는 몇몇 신은 아쉽다. 가령 시야에서 사라졌던 제임스가 비가 그치자 갑자기 나타난다는 식의 설정들 말이다.
조의석: 그건 병서도, 회사도 그리고 나도 굉장히 아쉬워하는 장면이다. ‘제임스가 우산을 든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쏟아진다. 우산들이 접히면서 시야가 확 넓어지자 제임스가 다시 보인다’ 이 과정을 통해 쾌감을 주고자 했다. 그랬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우연이 어느 정도 상쇄가 될 테니까. 그런데 원하는 장면을 충분히 찍지 못한 상태에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연출자로서 선택을 해야 했다. 어떤 부분을 먼저 찍을지. 타이트 한 신들은 조명을 치고 찍을 수 있으니, 넓은 것부터 찍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 넓은 부분에서 제대로 표현을 못한 거다. 연출적인 잘못이다. 병서도 너무 아쉬웠던지, 조용히 와서 “형, 그거 놓친 거 알아요?”라고 얘기 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성질을 냈다. “그러면 네가 찍을 수 있게 해 주던가!” 하면서.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말하니까, 괜히 ‘욱’한 거지.(웃음)
김병서: 서로, 속상했으니까.(웃음)
조의석: 연애, 맞다. ‘촬영은 엄마고, 연출은 아빠’라는 말들도 많이 한다. 싸우기도 하고 의지도 하니까. 우리가 조금 특이했던 건, 현장에서 역할을 분리했다는 거다. 만약 둘이 함께 모니터 앞에 있었다면, 더 많이 싸웠을 거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공동연출의 개념이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Q. 감독 지망들이 궁금해 할 질문 같은데, 약간 불만족스러운 감독 데뷔의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기회를 먼저 잡아야 할까, 조금 더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까.
김병서: 완벽한 준비라는 게, 그런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없을 것 같다. 부족하더라도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탄탄하게 만들며 길을 걸어나게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조의석: 이 지점에서 우리의 다른 성격이 또 나온다.(웃음) 나는 기회가 왔을 때, 연출자로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 준비라는 게 연출적으로 대단한 공력은 아닐지라도, 책임감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상업영화에서는 특히나 더. ‘물 들어올 때 배 띄워라’고 하지만, 배가 있어야 띄울 거 아닌가.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도 분명히 있으니… 그 지점에서는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파트너십은 어떻게 될지도.
김병서: 하반기에 있는 박흥식 감독님의 <협녀: 칼의 기억>(전도연 이병헌 김고은 주연)에 촬영감독으로 들어간다. 그 작품을 끝내고 돌아와서, 이유진 대표님과 다음 아이템에 대해 고민해 볼 계획이다.
조의석: 병서의 다음 선택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연출에 대한 욕망이 크다면, 시간이 걸리고 배가 고프더라도 거기에 ‘올인’ 했으면 했거든. 그렇게 해서 병서만의 색깔을 보여줬으면 했거든. 아마 내가 느꼈던 ‘시선의 감옥’을 병서가 <협녀: 칼의 기억>에서 느끼지 않을까 싶다. ‘연출에까지 이름을 올렸는데, 왜 또 촬영을 한대?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시선이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잘 해 내리라는 믿음은 있다. 워낙 욕심이 많은 친구인지라,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확실하게 있을 거다. 응원해야지. 나 같은 경우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시나리오를 써 둔 게 있는데 그게 어떻게 될지 제작사와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의 어떤 게 좋아서, 이렇게 오랜 시간 전력투구 하고 있나?
조의석: 시청이라는 것과 관람은 엄연히 다르다. TV 시청은 집에서 누워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행위다. 그와 달리 영화를 본다는 건, 보다 적극적인 행위의 발현이다. 나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거기에 영화의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김병서: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리된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게 영화다. 흡사 유기체 같다. 생각의 원석이 유기체가 돼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조금씩 깨닫고 배우고 느끼고. 그런 부분들이 관객들에게 전해져서 다른 화두가 나오고. 이런 교감의 과정들이 굉장히 매력 있는 것 같다.
조의석: 마술이네, 그럼. 원석이 유기체가 되는 마술.
김병서: 그렇지. 마술이지.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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