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심사평이 기분이 나쁜가요? 왜 뮤지션들 기를 죽이냐고요? 전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는 건데요. 좌절하지 마세요. 어차피 평생 음악을 할 작정을 한 사람들이 여기 온 거 아닌가요? 음악인생에 이 정도 좌절쯤이야.”(박은석)

지난 2일 ‘헬로 루키’ 공개 오디션이 열린 서교동 라이브클럽 롤링홀 현장.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심사평이 이어지자 객석에 긴장감이 감돈다.

향니가 자신의 노래 ‘첫사랑이 되어줘’, ‘TLA’를 노래한다. 기기묘묘한 노래가 지나가자 재즈 비평가 김현준 씨는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던졌다. “2년 전 향니를 재즈 콩쿨에서 봤어요. 그때는 번지수를 잘못 찾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찾아오셨네요. 향니 나이의 뮤지션에게 2년이란 세월은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긴 시간이죠. 그 사이의 변화가 궁금했어요. 향니가 만든 곡은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음악인데요. 그런데 6개월 후에도 가슴에 남을 지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향니의 음악은 듣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측면이 있어요. 불안하게 하려면 완전히 불안에 빠지게, 미치게 만들면 어떨까요? ‘나를 따르라’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나아가는 거죠.”

신인 4인조 밴드 ‘청년들’의 패기 넘치는 무대가 이어졌다. 언뜻 봐서는 기타를 맨 모습에서 풋풋함이 느껴진다. 의욕만 앞서 보이기도 하지만 에너지는 상당하다. 심지어 기타를 마이크 스탠드에 비벼댄다. 이 바닥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 씨는 의외로 칭찬을 했다. “직접 제작한 앨범을 즐겁게 들었고 오늘 공연도 열심히 잘 해줬습니다. 최근 청춘이라는 것이 하나의 코드인데, 청춘을 팔아서 아저씨들이 돈을 버는 세상이죠. 그런 면에서 ‘청년들’의 음악이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과 더 많은 장소에서 소통했으면 합니다. 충분히 그럴 것 같네요.”

오랫동안 ‘헬로루키’를 심사해온 박은석 씨와 김현준 씨의 심사평에는 미사여구도 독설도 없다. 하지만 뇌리에 남는다. 지원자의 음악 자체를 평가하기 이전에 국내 대중음악계에 대한 통찰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사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만화책 〈슬램덩크〉 속 채치수와 권준호의 강백호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떠오르기도 한다. 심사평은 때로 비수가 돼 날아온다. 전문성을 담았기에 날카롭고, 애정이 느껴져 살갑기도 하다. 경연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공연보다 심사평이 더 흥미롭다. 다음 지원자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시안체어샷, 로큰롤라디오, 스쿼시바인즈, 사우스카니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국내 굴지의 음악프로그램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루키’는 2007년에 처음 시작돼 올해로 7년째를 맞는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한음파, 아폴로 18, 게이트 플라워즈, 데이브레이크, 야야, 로맨틱펀치 등 100여 팀의 실력파 신인을 수면 위로 끌어내며 한국 대중음악계 저변을 넓혀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흥미 위주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일반화 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헬로루키’는 음악을 근거에 두고 신인을 선정해 뮤지션들의 지지를 받음은 물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올해부터는 매달 열리는 ‘이달의 헬로루키’ 공개오디션을 50분 방송으로 편성해 후보 팀들의 경연을 공중파로 내보내고 있다. 경연 뮤지션들을 대중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 이로써 ‘헬로루키’ 생생한 오디션 현장은 물론 날카로운 심사평도 안방에서 볼 수 있다. 민정홍 〈스페이스 공감〉 PD는 “심사위원들의 멘트가 전문적이라 일반 시청자들에게 어렵게 다가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석 씨는 “지원자들이 심사평 중 공감이 가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음악 재료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몇 년 동안 심사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예선에서 떨어진 팀들이 실력을 가다듬고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며 “국카스텐처럼 한 번에 붙어서 일사천리로 잘 되는 팀이 있는가 하면 몇 년에 걸쳐 지원해서 붙는 팀도 있다. 잠비나이 같은 경우는 2년 만에 ‘헬로루키’에 뽑혔는데 지금은 한국의 크로스오버를 말할 때 중요하게 거론돼야 할 팀으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부터 매달 열린 ‘2013 헬로루키’는 8월 5일 마지막 공개오디션을 앞두고 있다. 올해 경연에서는 현재까지 아시안 체어샷, 로큰롤 라디오, 24아워즈, 사우스 카니발 라운드헤즈, 청년들, 스쿼시 바인즈, ECE 가이 ‘이달의 헬로루키’로 선정됐다. 5개월간의 공개오디션 및 본선을 통해 최종 선정된 6팀은 11월에 열리는 연말결선에 돌입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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