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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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가 극장가를 강타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놀라울 정도다.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기대를 모았고, 캐스팅은 물론 제작 중간 중간 영화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온라인을 달궜다. 개봉과 동시에 관객이 몰렸고, 연일 새로운 기록을 써 나가고 있다. 기대작다운 성적이다. 그런데 호불호가 팽팽하다. 영화의 내용을 두고 언론, 평단 그리고 대중까지도 열띤 토론 중이다. ‘영화를 직접 보고 말하겠다’며 대중이 몰린 것도 흥행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열차에 탑승한 송강호에게 ‘설국열차’와 남궁민수를 물었다. 요나의 엄마가 누군지까지도.

Q. 첫 등장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독방’에 갇혀 있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당연히 영어를 쓸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보기 좋게 당했다.
송강호 : 하하하. 이질적이긴 하다. 계속 서양 배우들이 나오고, 영어를 듣다가 생김새도 그렇고 말도 한국말로 하고. 그런 이질감이 포인트인 것 같다. 초반에 사람들이 ‘냄’이란 사람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주목하게 돼 있는데 그 상황에서 이질적으로 풀어낸 것이라 보면 된다. 그게 노리는 바기도 하다. 열차에서 17년 동안 같이 살아가고 있어도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서로의 목적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느낌이 첫 등장하는 한 컷으로 압축돼 표현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Q. 남궁민수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송강호 : 일련의 꼬리 칸 사람들이 앞으로 전진 하는데 하등 관심이 없다. 남궁민수의 철학은 (앞 칸) 점령을 한들, 결국엔 또 누군가 점령당하고 희생당해야 한다는 거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이게 아닐 뿐만 아니라 세상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Q. 그렇다면 남궁민수는 애초부터 혁명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송강호 :
남궁민수는 유추해 보건데 결코 진정한 자유는 규칙대로 살아간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앞 칸의 지배자로 안락한 삶을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남궁민수는 기차의 탄생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애초부터 진정한 자유는 기차 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Q. 방금 말처럼 보안설계자고, 기차의 탄생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남궁민수의 모습을 보면 앞 칸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꼬리 칸에 가본 것 같지도 않다.
송강호 : 심리적으로는 꼬리 칸 같다. 하하. 그런데 이상적으로는 윌포드(기차의 지배자) 보다 앞서가는 것 같다. 그리고 몸은 자유로웠던 것 같다. 앞 칸에서도 필요한 물질을 구할 수 있고, 보안설계자니까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있고. 안에서 거래를 하고, 그러다가 감옥에 갇히고. 그러지 않았을까.

영화 ‘설국열차’ 스틸
영화 ‘설국열차’ 스틸
영화 ‘설국열차’ 스틸

Q. 앞으로 전진만 하는 모습이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주연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송강호 :
사실 한강이 아닐 뿐이지 또 다른 괴물과의 싸움이다. 고아성과 부녀로 나오는 게 연장선상의 느낌도 있고. ‘괴물’은 괴생물체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란 사회를 이야기한다면, ‘설국열차’는 보이지 않는 괴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아귀다툼하고, 지배하고 당하는 모습을 그린다. 어떻게 보면 ‘괴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Q. 그런데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결말이 도피처럼 보이기도 하더라. 결국 현실에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니까 다른 세상을 찾아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송강호 : 밀폐된 공간이 주는 세계에 대한 탈출이 꼭 현실도피라기 보단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다. 남궁민수의 철학은 앞 칸으로 전진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는 것,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딸과 어린 아이에게 미래를 남겨주고 산회되는 거다. ‘괴물’과 반대다.

Q. 엉뚱한 질문일수도 있지만 극 중 고아성이 연기한 요나의 엄마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기차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오는데 엄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송강호 : 영화 속에서 남궁민수가 ‘7인의 도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때 제일 앞사람이 여자라고 말을 하는데 아마 그 여자가 (요나 엄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에 대해 유일하게 이야기를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로 봐서는. 하하. (봉준호 감독은 요나가 한국인과 에스키모의 혼혈이라고 했다.)

Q. ‘괴물’ 때 딸로 나왔던 고아성이 이젠 어엿한 숙녀가 됐다. 6년 전에 봤을 때 고아성과 지금의 고아성,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어떤 배우인가.
송강호 : 개인적으로 고아성 팬이다. ‘괴물’도 좋고, ‘설국열차’도 좋았지만 ‘여행자’란 영화에서 아주 놀라운 연기를 했다. 중1 때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연기하는 자세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성숙했다. 지금도 똑같다. 생각하는 거나 삶의 방식들, 연기자로서의 태도 등이 굉장히 성숙돼 있는 느낌이다. 또 놀라운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Q. 영화처럼 어떤 계기로든 빙하기가 온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송강호 : 빙하기가 오면 현실에 순응하고 그냥 죽어지. 하하 그렇다.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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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설국열차’에 대해 들은 건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이다. ‘괴물’ 때도 대충 이야기만 들었고, 나중에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경험했다. 또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어떤가. ‘공동경비구역JSA’를 함께 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박쥐’다. 더욱이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 연출, 박찬욱 감독 제작이다. 남다른 ‘우정’(?)이다. 여하튼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설국열차’까지 봉준호 감독과 손을 맞춰 온 송강호에게 물었다. 송강호만이 느낀 봉준호의 변화를.

Q.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말이다. 이야기로 듣다가 실제 시나리오가 나오고, 영화화되고. 지금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송강호 : 영화 ‘괴물’도 비슷했다. ‘괴물’도 대충 이야기만 들었을 때 황당한 프로젝트란 느낌이 들었다. CG 등 이런 작업이 활성화 되지도 않았을 때다. ‘괴물’ 때나 ‘설국열차’나 공통점은 설렌다고 해야 하나. 신기한 설렘이 있더라. 실제로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는 역시 ‘봉준호 답다’란 생각이 들었다. 투수로 치면 ‘괴물’은 변화구를 던지는 기교파라면, ‘설국열차’는 돌직구를 던지는 정통파다. 이런 변화가 있어서 좋기도 했다.

Q. 그런데 생각해보면 ‘박쥐’도 그랬다. ‘공동경비구역 JSA’ 할 때 ‘박쥐’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그렇다면 ‘설국열차’와 ‘박쥐’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어떤가.
송강호 : ‘박쥐’는 막연했다. 과연 이런 영화가 한국영화 풍토에서 제작될 수 있을까 싶었다. ‘설국열차’는 그런 지점은 아니었다. 관객들에게 오락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주목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이 잘 안 되다 보니 어떻게 만들어질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

Q.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설국열차’까지 봉준호 감독과 작업해 왔다. 세 번에 걸쳐 작업을 같이 하면서 남들이 못 느끼는, 송강호만이 알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의 변화 또는 모습은 무엇인가.
송강호 : ‘살인의 추억’ 때는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괴물’ 때는 그 역량 위에 아트적인 가치를 더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설국열차’는 그 방법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더라. 그렇게 점점 진화하는 것 같다.

Q. 말을 듣다 보니 (봉준호 감독) 더 이상 진화할 게 없는 것 아니냐.
송강호 : 하하. 또 다른 직구가 나올 수 있고, 또 다른 변화구가 나올 수 있겠죠.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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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는 한국영화다. 그런데 한편으론 한국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애초부터 ‘설국열차’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북미에서도 와이드 개봉을 준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극장에도 ‘설국열차’가 걸릴 예정이다. ‘강남스타일’로 어느 날 갑자기 월드스타가 된 싸이처럼, 송강호도 ‘설국열차’를 타고 전 세계를 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에서도 ‘설국열차’는 1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게 된다.

Q. 국내 자본이지만 촬영은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했다. 이렇게 촬영한 게 처음 같은데 느낌이 어땠나.
송강호 : 영화 ‘남극일기’ 때 경험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합리적이고, 배우나 스태프가 쉴 수 있는 시간을 거의 법적으로 보장을 해 준다. 좋긴 한데 심적인 압박을 받게 되더라. 그 시간만큼은 칼 같이 지켜줘야 하니까. 우스갯소리로 세트장 안에서 담배를 못 피우니까 나가야 하는데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갈 시간도 없을 정도다. 촬영 감독과 ‘할리우드 시스템이 좋긴 한데 단점도 있지요. 반반씩 섞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Q. 극 중 남궁민수는 한국어 대사를 한다. 영어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송강호 :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영어로 연기를 할 때가 있는 거다. 굳이 글로벌한 느낌을 주기 위해 영어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아성은 영어를 한다. 고아성은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남궁민수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또 열차는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 일어 등 다양한 언어가 나온다. 굳이 영어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Q. 외국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리고 송강호 역시 국내를 대표하는 배우다. 그런 미묘한 경쟁 의식이 있을 것도 같다.
송강호 : 경쟁 보다는 내가 맡은 남궁민수가 이 영화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모든 것들이 좋은데 남궁민수를 맡아서 튀거나 삐져나오면 안 되겠다는 마음. 그 점이 부담이고, 욕심이었다. 그리고 경탄은 한다. 틸다 스윈튼이 첫 촬영 하는 날, 전부다 (그녀의 연기를) 구경했다. 세계적인 여배우가 자기 눈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크리스 에반스 등도 구경을 하는 거다.

Q. 말 그래도 세계 각국에서 ‘설국열차’를 위해 모였다. 유명 배우부터 스타까지. 그들만의 연기 스타일이 다를 것 같다. 송강호의 눈으로 본, 그들의 연기 스타일을 비교 설명해 달라.
송강호 : 틀린 건 확실하다. 큰 축은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옥타비아 스펜서 등 할리우드 배우와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이완 브렘너, 제이미 벨 등 영국배우, 엄밀하게 말하면 스코틀랜드 배우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적인 정서는 스코틀랜드 배우들이 가지고 있다. 크게 보면 비슷한데 스코틀랜드 쪽 배우들이 좀 더 다르게 연기하려고 하는 스타일이고, 할리우드 배우들은 자로 잰 듯한 연기를 한다. 정확하고 명확하게.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완 브렘너가 아무도 모르게 고아성에게 한국어를 배워 원래 없던 대사를 (한국어로) 연습했다. 감독도 몰랐고, 그 장면에서 호흡을 맞출 틸다 스윈튼도 모르던 상황이었다. 그 촬영이 있는 날 아성이가 빨리 가봐야 한다고 하는 거다. 직접 가서 보는데 감독이 ‘액션’ 하니까 이완 브렘너가 한국말로 막 대사를 치는 거다. ‘너 까불면 어쩌고 저쩌고’. 두 번째 테이크 부터는 제대로 했는데 어찌됐던 그런 엉뚱함이 있더라. 틸다 스윈튼도 어떤 장면에서는 봉 감독한테 가서 ‘이 대사는 이런 대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등 제안도 하고.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 우리하고 조금 더 비슷하다는 의미다.

Q. ‘설국열차’는 메이저 배급사로 분류되는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미국 배급을 맡았다. 아직 개봉일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어찌됐던 와이드 개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
송강호 :
전혀 그런 거 없다. 사실은 ‘진출’이란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 가령 ‘류현진, 메이저리그 진출’이란 표현은 맞는데 배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문화는 독창성과 고유한 모습이 있다. 그래서 ‘진출’이 아니라 ‘전파’가 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 영화가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많이 알려진다는 게 진정한 ‘글로벌’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못해도 부담도 되고. 하하.

Q. 이제는 비단 한국 시장만 보지 않고 해외까지 노리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미스터 고’도 그렇고, ‘설국열차’도 마찬가지다. 배우로서도 좀 더 넓은 시장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송강호 : 그 자체로 뿌듯하다. K-FILM이란 단어가 생길 정도로 경쟁력이 생겼다는 것을 봐야 한다. 독특한 한국만의 문화가 있다. 필름 자체에 그 문화가 녹아드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최고의 감독들도 포진돼 있다. 배우로서 기회다 뭐다 이런 것 보다 이것 자체가 좋은 거다.

글, 사진,편집.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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