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인천 송도에서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는 다양한 장르의 정상급 록 뮤지션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웨이드, 폴 아웃 보이, 마마스 건, 스키드 로우, 스틸하트, 테스타먼트, 스토리 오브 더 이어, 칙칙칙(!!!), 글라스베가스, 맨 위드 어 미션, 피스, 들국화, YB 등이 ‘펜타포트’에 모여 저마다 뜨거운 무대를 선보였다. 그 중 음악평론가, 기자, 업계 관계자 등 전문가 7명이 꼽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꼽아봤다.

송명하(‘Paranoid’ 편집장)
BEST: 페스티벌 첫날 라인업 전체.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축제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란 말 그대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할테고. 그런 의미에서 난 첫째 날 S.L.K., 나티, 스틸 하트, 테스타먼트, 스키드 로우, 들국화로 이어진 라인업을 꼽고 싶다. 너무 올드스쿨 계열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올해 열리는 많은 페스티벌 가운데서 이렇게 응집력 있는 라인업을 타임라인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건 ‘펜타포트’의 첫째 날 라인업이 유일하다. 그날 우린 S.L.K.의 무대에서 카리스마의 ‘Runaway’를, 또 스틸하트 땐 ‘She’s Gone’을, 스키드 로우와 함께 ‘18 & Life’를 그리고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마치 20년 전의 앨범을 들춰보는 것처럼.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간 ‘펜타포트’ 진행의 노하우가 만들어낸 쾌거 가운데 하나다.
WORST: Suede. 브렛 앤더슨의 목소리가 어떻다거나 다른 데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스웨이드를 보러 온 많은 관객들은 그들의 음악과 함께 브렛의 얼굴과 농염한(?) 제스처를 함께 즐기려 했을 터인데, 밴드 측의 부탁으로 무대 양 옆의 LED 화면은 침묵을 지켰다. 아마 그들의 팬들에겐 반만 즐거운 축제가 되었을 듯.

김성환(음악컬럼니스트)
BEST: Fall Out Boy. 펜타포트의 첫 날,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인 들국화와 스웨이드에 비해서 폴 아웃 보이는 국내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낮은 것처럼 느껴졌었지만, 실제 이들은 사흘간의 헤드라이너 공연 가운데 가장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인 무대를 펼쳤다. 음반에서도 점점 아레나형 록 밴드(음악 장르를 말하기 보다 대형 공연장에 최적화된 사운드를 보여주는 밴드)로서의 기질을 드러내더니,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때와는 한 차원 다른 압도적인 무대를 펼쳤다.
WORST: Skid Row. 물론 추억의 레퍼토리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즐거움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메탈 밴드들 중에 보컬이 바뀌면 원년의 매력을 발휘하는 팀이 거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목 상태가 안 좋았다 해도 그 노래들은 세바스찬 바흐에게 적합한 곡들이었다. 사운드도 조금 울렸었고, 제리 솔링거로 만나는 그들의 첫 내한 무대는 조금은 애처롭고 슬펐다.

스웨이드

김학선(대중음악평론가)
BEST: Story of the Year. 그들은 인천에서 자신들의 이름값을 증명해보였다. 우리가 유튜브에서나 봐야 했던 미친 에너지와 무대 액션을 직접 눈으로 확인케 해주었다. 그 격정적인 무대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서정성을 함께 보여준 것도 높이 살만했다. 어두워진 좀 더 늦은 시간에 무대가 올랐으면 더 환상적인 무대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WORST: Testament. 최악이라기보다는 아쉬웠던 무대. 난 이들의 거의 모든 앨범을 갖고 있는 팬이지만, 공연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뭔가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확’하고 오는 것이 없었다. 사운드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들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팬으로서, 이 기운 빠진 듯한 무대가 단순한 컨디션 난조이길 바란다.

박현준(경인방송FM ‘박현준의 라디오 GA! GA!’ PD 겸 DJ)
BEST: Fall Out Boy. 폴 아웃 보이가 ‘Beat It’을 연주하던 순간! 마이클 잭슨의 살아생전 비폭력적인 록 음악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Beat It’을 연주하는 순간 록페스티벌이란 거대한 명제 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가 가장 이상적인 공간에서 세계적인 명곡을 연주해줌으로서, 페스티벌에 참여한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드는 최고의 효과를 가져 온 순간이었다. 3일간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여정을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선곡, 폴 아웃 보이의 선곡 센스 작렬!
WORST: 랄라스윗. 둘째 날 문 라이트 스테이지에서 있었던 랄라스윗의 무대는 같은 시간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서 열리던 YB의 공연과 시간이 겹쳤다. 때문에 거대한 YB의 사운드에 랄라스윗의 무대가 침몰해버렸다. 무대를 보던 관객은 물론 뮤지션에게조차 영향을 줄 정도로 사운드의 침범이 심했는데, 좀 더 세심한 타임테이블의 구성과 사전에 사운드 침범을 우려하는 선배의 배려가 있었다면 랄라스윗의 소박한 무대마저 펜타포트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지 않았을까?

한명륜(‘STUDIO24′ 피처에디터)
BEST: Story of the Year. 후기를 쓰는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해서 당연히 ‘빗소리에 잠을 깼지요(woke up to the sound of pouring rain)’라 노래 부르던 스키드 로우를 꼽고 싶었으나, 눈물을 머금고 냉정해지자면 스토리 오브 더 이어를 꼽으려 한다. 2일차, 그것도 낮 시간 타이밍에 관객을 한 번에 운집시키는 능력. 사실 이 밴드도 활동기간에 비해 한국 내 인지도가 높은 팀은 아니다. 하지만, 밴드가 미치는데 관객들이 제정신일 수 없음을 증명한 ‘핫 타임’이기도. 사실 사운드가 그리 선명한 편은 못 됐지만, 곡 자체의 꿈틀대는 리프, 그리고 질주와 브레이크를 거듭하는 리듬감은 소리의 퀄리티를 간단하게 뛰어넘어버렸다.
WORST: 오지은. 오지은을 꼽은 건, 보컬 퍼포먼스에 보인 컨디션 등이 문제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공연 내내 사운드 문제가 있었던 드림 스테이지는 오지은의 타임에 유독 애를 먹였다. 특히 ‘물고기’에서는 갑자기 PA 스피커에서 ‘지직’하는 불쾌한 잡음까지 났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 안에서 신윤철의 기타 사운드와 오지은의 목소리가 갖는 공명이 과한 게 아니었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매력적인 보컬과 연주였다. 하지만 고음이면서도 낮은 배음이 강한 오지은의 목소리가 신윤철의 기타와 동시에 울릴 때 PA의 문제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곡의 구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거장 세션들이 모인만큼 어떤 ‘묘책’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다.

스키드 로우

이세환(소니뮤직 차장)
BEST: Mamas Gun. 재작년 마마스 건의 내한공연에 대한 찬사들이 이어졌기에 큰 기대를 했었다. 실제로 본 마마스 건은 역시 대단한 라이브를 들려줬다. 그루브한 리듬과 완벽에 가까운 가창력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했다. 춤출 수 있게 만드는 음악! ‘펜타포트’ 최고의 공연이었다.
WORST: Glasvegas. 앨범으로 접하고 매우 기대했던 팀 중에 하나다. 연주력과 신비한 조명처리는 좋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밴드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한 음향도 아쉬웠다.

권석정(텐아시아 기자)
BEST: 옐로우 몬스터즈와 강산에. 옐로우 몬스터즈와 강산에의 공연은 음악의 울림이 관객을 들썩이게 하는 록페스티벌이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옐로우 몬스터즈의 이용원이 크게 수신호를 하자 수 만 명의 관객들이 홍해 갈라지듯이 양쪽으로 나뉘었다가 노래 시작과 함께 단체로 몸 부딪치기를 한 것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강산에의 무대는 ‘펜타포트’에서 가장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이기태의 드럼이 만들어내는 그루브 위에 얹어진 강산에의 목소리는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춤추게 했다.
WORST: 수리수리 마하수리. 정확히 말해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공연이 불만이 아니라,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한 옆 스테이지의 소리간섭이 문제였다. 레게 스테이지의 수리수리 마하수리와 펜타포트 스테이지의 블러드 레드 슈즈는 오후 3시 반부터 4시 10분까지 정확히 같은 시간에 40분간 공연을 했고, 블러드 레드 슈즈의 엄청난 음량에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소박한 무대가 묻혀버렸다. 급기야 보컬인 오마르가 관객들을 앞으로 오게 했지만,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펜타포트’의 음악을 보다 풍성하게 해준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이국적인 음악을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예스컴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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