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엑스, 준수, S.L.K, 텔레플라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남자만 만나면 확 달라지는 불여우, 여우같은 기지배, 또 또 또 시작된 사랑 이번엔 몇 달짜리니?에프엑스 ‘Pink Tape’
에프엑스 ‘여우 같은 내 친구(No More)’ 中
에프엑스(f(x))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장난스럽게 말하면 ‘아스트랄, 병맛’의 걸그룹, 거창하게 말하면 대안의 걸그룹.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10대들의 언어를 가사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꽤 음악적으로 풀어냈다. 가사가 ‘아스트랄’했다면 사운드는 훌륭했고, 어떤 면에서 소녀시대보다 진취적이었다. 에프엑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노래한 브라운아이드걸스, ‘Gee’ 시절의 소녀시대 이후 평론가들이 무척 아끼는 몇 안 되는 걸그룹이 된 것은 바로 음악적인 완성도 때문이다. 정규 2집 ‘Pink Tape’은 핑크색 VHS비디오 모양의 음반 디자인부터 에프엑스답다. 음반 디자인처럼 음악에서도 복고적인 색이 강하다. ‘첫 사랑니’, ‘Kick’이 기존의 전자음악 노선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그널’, ‘Airplane’과 같은 곡들에서는 전형적인 디스코, 신스팝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함을 풍성함으로 보든 애매함으로 보든 팬들의 자유다. SM엔터테인먼트로서는 여타 걸그룹들이 차고 올라오는 가운데 이번 에프엑스의 새 앨범을 통해 선두를 공고히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파격보다는 듣기 편안한 곡들이 늘면서 소녀시대와 구분이 애매모호해진 것은 조금 아쉬운 일. 가령 ‘Pretty Girl’ ‘미행’과 같은 곡은 매우 잘 만들어진 노래이지만, 소녀시대 노래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 맹점이다.
준수(XIA) ‘Incredible’
아이돌그룹 출신 중 솔로 활동에서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는 남자뮤지션은 누굴까? 준수? 지드래곤? 라이브 실력 면에서는 준수를 따라갈 자가 없다. 동방신기가 둘로 갈라질 때 다섯 명 중 그 행보가 가장 주목받았던 이가 바로 준수다. 인기를 떠나서 노래, 퍼포먼스 면에서 가장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뮤지컬로 다져진 체력 때문인지 무대 운용 능력은 가히 군계일학이라 할만하다. 정규 2집 ‘Incredible’이 기존의 JYJ, 솔로 1집과 구별되는 점은 미국에서 최근 유행하는 PBR&B를 비롯해 힙합, 고전적인 소울 등을 국내 정서와 잘 배합해냈다는 점이다.(이 대목에서 유영진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덥스텝을 차용한 ‘이 노래 웃기지’의 재미난 전개는 팬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법하다. 한 가지 더 주목해볼 점은 준수에게서 슬슬 남자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앨범의 포문을’ No Reason’ 가사에서는 섹슈얼한 분위기의 가사도 감지되는데 공연에서 소파에 누운 준수를 여성 댄서들이 쓰다듬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TV 출연이 어렵다고 하니 궁금한 팬들은 공연장을 찾길.
S.L.K ‘The Original Mindset’
신현권, 이근형, 김민기 세 명의 연주자가 밴드를 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감이 컸다.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한국 80년대 한국 헤비메탈 3대 기타리스트(김태원이 아니다)로 꼽히는 이근형. 시나위, H2O 등 무수한 거물 밴드를 거친 드러머 김민기. 그리고 70년대 미8군에서 히 파이브로 시작해 약 40여 년간 세션 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베이시스트 신현권의 만남이라니! 앨범이 나오기 전 셋이서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을 합주하는 것을 보고 기대감은 더욱 증폭됐다. 녹슬지 않은 로킹함에 노련함까지 더해진 연주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여섯 곡이 담긴 앨범에는 세 명이 해석한 록, 펑크(funk), 포크, 발라드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담겼다. 이들의 연주는 그 내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사족일 정도로 훌륭하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화려함보다는 앙상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 김종서가 참여한 ‘Who Am I’는 마치 레드 제플린과 같은 품격을 선사한다.
텔레플라이 ‘Avalokite?vara’
텔레플라이의 새 EP ‘Avalokite?vara’. 이들은 사이키델릭 록을 추구하는 3인조 록밴드다. 이 사이키델릭이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음악 스타일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 텔레플라이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가 보여준 고전적인 사이키델릭 록의 요소에 기반을 두고 나름의 색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은 연주자들이 혼연일체를 이뤄야하기 때문에 상당한 연주력을 필요로 한다. 텔레플라이는 출중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라이브에서 환각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라이브도 잘 하지만 앨범의 녹음상태도 뛰어난 편. 텔레플라이는 원 테이크 녹음을 전제로 하고 합주 형식으로 이번 앨범을 레코딩을 했다. 덕분에 ‘Avalokite?vara’에는 라이브의 질감이 제대로 살아있다. ‘요술피리’ 등 전곡에서 연주가 주는 스릴감이 잘 표현되고 있다. 서울전자음악단의 뒤를 잇는 한국의 21세기형 사이키델릭 록.
윈터플레이 ‘Two Fabulous Fools’
팝 재즈 밴드 윈터플레이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팝과 재즈의 엑기스를 섞어내 군더더기 없이 담아낸 음악. 2008년에 1집 ‘Choco Snow Ball’을 내놨을 때에만 해도 단출한 구성으로 팝과 재즈를 버무린 스타일의 음악이 흔하지는 않았다. 최우준(기타), 소은규(베이스)가 밑그림을 그리고 혜원(보컬)과 이주한(트럼펫)이 목소리와 연주를 더한 윈터플레이의 음악은 당시로서는 꽤 신선한 음악이었다. 첫 맛은 달콤하지만, 연주자들의 내공 때문인지 꽤 진한 감성도 배어나왔다. 요 몇 년 간 인디 신을 중심으로 윈터플레이와 같은 스타일의 밴드들이 꽤 많아졌다. 물론 윈터플레이 만큼의 내공을 지닌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이주한, 혜원의 2인조로 재정비된 윈터플레이는 3집에서 여러 세션 연주자들과 함께 기존보다 다양해진 스타일의 곡을 들려주고 있다. 타이틀곡 ‘Yoboseyo Baby’ ‘Shake It Up And Down’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에서 여름에 어울리는 라틴, 칼립소, 트위스트 리듬들이 돋보인다. 춤을 추면서 즐길 수 있는 곡들이 많아진 것. 이제는 ‘재즈’라는 단어를 떼고 그냥 어쿠스틱 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서울 리딤 슈퍼클럽 ‘Seoul Riddim Superclub’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레게를 하는 밴드가 많지 않았다. 물론 여름마다 레게를 차용한 가수들은 꽤 있어왔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오로지 레게, 스카로 노선으로 정하고 음악을 하는 팀들이 꽤 늘었다. 올해 개최되는 주요 록페스티벌인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에 레게 무대가 따로 마련될 정도다. 서울 리돔 슈퍼클럽은 킹스턴 루디스카, 태히언, 루드페이퍼, 자메이 등 레게 뮤지션들과 무중력소년, 장기하와 얼굴들의 건반을 맡은 이종민 등 무려 13명이 뭉친 레게 집단이다. 레게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뭉친 팀답게 레게의 다양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Walk Around’에서는 쿤타, 태히언, 이석율, 자메이 네 명의 레게 보컬리스트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다.
O.S.T. ‘28’
특이하게도 영화가 아닌 책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예전에야 음악잡지에 테이프, CD를 부록으로 줬지만(지금도 있긴 있다), 소설에 사운드트랙이 딸려 나오다니!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인기순위 1, 2위를 다투는 정유정의 소설 ‘28’(두 책의 경쟁이 한일전으로 회자되는 게 웃기다)의 사운드트랙이다. 소설의 분위기와 극적인 장면을 암시하는 음악을 독자들에게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흥미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앨범에는 이지에프엠, 리터, 트루베르, 헤르츠티어 등의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음악들이니, 책을 읽어보고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시아라 ‘Ciara’
시아라(Ciara)와 리아나 둘 중에 누가 더 야할까? 팝계에는 참 많은 라이벌이 존재한다. 최근 섹시 아이콘의 맞수를 꼽자면 시아라와 리아나를 말할 수 있겠다. 한때 어셔의 ‘Yeah!’와 함께 크렁크 앤 비 장르의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던 시아라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새 앨범 ‘Ciara’에서 여전히 섹시하고 강렬한 음악을 들려준다. 니키 미나즈가 피처링한 ‘I’m Out’, 소울 발라드 ‘Body Party’ 등 트렌디한 스타일부터 익숙한 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흑인음악이 담겼다. ‘Body Party’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시아라가 현재 남자친구이자 뮤지션인 퓨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퓨쳐는 감각적인 트랙 ‘Where You Go’에 피처링하기도 했다. 곡들이 가진 각기 다른 스타일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다름 아닌 시아라의 뇌쇄적인 목소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시아라와 리아나 둘 중 누가 더 야한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취향에 맡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시아라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로빈 시크 ‘Blurred Lines’
최근 미국 팝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로빈 시크(Robin Thicke)를 보면 작년의 고티에가 떠오른다. 로빈 시크의 노래 ‘Blurred Lines’는 현재까지 빌보드싱글차트에서 8주간 정상에 오르며 올해 나온 곡 중 최장기간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퍼랠 윌리엄스가 피처링한 이 곡은 살짝 과거 디스코 풍이지만 동시에 트렌디함도 느껴지는, 근래 들어본 곡 중 단연 멋진 곡이다. 음악적인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여러모로 고티에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를 떠올리게 되더라. 로빈 시크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흑인음악인 소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령 ‘Ooo La La’와 같은 곡은 전형적인 디스코 곡이다. 하지만 그에게 과거의 색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으며 매우 감각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로빈 시크는 국내에는 낯설지만 오랜 경력을 가진 뮤지션이다. 어셔, 메리 제이 블라이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랜디 등과 함께 작업해왔으며 이번 앨범이 6집이다. 이제는 21세기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중 대표주자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듯.
제스퍼 멍크 ‘For In My Way It Lies’
제스퍼 멍크(Jesper Munk)는 독일 출신의 블루스 록 싱어송라이터다. 국내에는 낯선 뮤지션인데 뮤직카로마를 통해 국내에 앨범이 발매됐다. 앨범재킷의 얼굴은 조각 같은 꽃미남인데 앨범을 틀면 꽤 거친 목소리에 애조 띤 블루스 기타 연주가 나온다. 하긴 한국에도 요새 블루스맨들이 꽤 등장하고 있는데 독일이라고 블루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없을 리 없다. ‘John’s A Man’과 같은 12소절 정통 블루스 외에 여러 블루지한 곡들이 앨범을 채우고 있다. 그 외에도 ‘Our Little Boathouse’, ‘The Everlasting Good’과 같이 여성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감성적인 곡들도 몇 곡 수록돼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자연스레 존 메이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지점이 존재한다. 사운드의 질감이 뛰어나 반복해서 듣게 되는 앨범. 광고에 삽입된다면 시오엔, 라쎄 린드처럼 국내에서 깜짝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에버모어뮤직, 일렉트릭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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