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짱의 연애’(왼쪽), ‘아무래도 싫은 사람’ 표지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책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에는 ‘오히토리사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오히토리사마는 원래 서비스업종에 사용되는 접대용어로,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등에서 1인 손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혼자를 의미하는 단어 ‘히토리’에 존칭의 접두어 ‘오’와 경칭의 의미를 갖는 ‘사마’까지 붙였다. 일본에는 홀로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을 이용하는 여성이 많다. 슈퍼나 상점에서도 1인분으로 준비된 반찬거리를 취급할 정도로 싱글 인구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고학력과 경제력 능력을 갖춘 ‘골드 미스’에 해당한다. 치즈코는 여자는 결혼과 관계없이 결국 혼자 남겨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싱글이니, 이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싱글족은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40대 싱글남으로 사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혼자 식당에 갈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혼자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항상 눈치가 보여 맛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얼마 전, E패션지 후배에게 연락해서 점심시간에 혼자 가서 앉아도 좋은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마가 끝난 8월에는 ‘1인 손님’을 환영하는 음식점을 찾아다닐 생각이다.

앞에서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슬쩍 이야기한 것은, 사실 마스다 미리의 여자공감만화 시리즈를 논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치즈코의 책은 그녀의 유명세(?)에 비해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차라리 과자를 먹으면서 ‘수짱’ 시리즈에 푹 빠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적어도 30, 40대 여성들에게는 그럴 확률이 높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고 물었던 서른다섯 살의 수짱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이번에 새로 나온 만화책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다. 평범녀 수짱은 “변하고 싶다”고 갈망하는 캐릭터다. 30대 중반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문젯거리들을 떠안고 있다. 카페 매니저를 하면서 직장에서 동료와 갈등을 느끼고, 아예 새로운 일을 찾기도 하며, 그러다가 우연히 연하의 남자를 만나 다시 연애 세포를 살려낸다. “뭐야? 이 정도는 약해”라고 외칠 알파걸도 있겠지만, 유난히 상처 잘 받는 사람이라면 직장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겪었을 일들이 모조리 담겨 있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요커의 사회생활과 성을 화려하게 담아냈다면, 수짱(모리모토 요시코) 시리즈는 유사한 문제를 조금은 수수하고 소박하게 고민한다. 이 만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는 놀랍게도 직장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는 “아, 피곤해~”이다. 이런 솔직함이 좋다. 수짱에게 중독되면, 그녀처럼 피로감을 해결하기 위한 목욕은 필수다.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 전시장 모습

‘다케시의 낙서 입문’을 보면, 엉뚱하게도 기타노 다케시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다케시는 사이타마 현 아사카 시의 예술촌(마루누마 예술의 숲)에 있는 다카시의 아틀리에에 방문한다. 잘 보면 다카시는 이 대담 때문에 면도를 하다가 얼굴에 피를 낸 후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사진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 전시장에 가도, 이 책 속의 사진처럼 DOB 풍선이 둥둥 떠있다. 전통 일본화를 전공한 무라카미 다카시(1962년생)는 서구 아방가르드 미술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초평면을 의미하는 ‘수퍼플랫’을 구축하면서 2000년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 오타쿠적 하위문화(망가)에 에도시대의 회화와 일본식 판화(우키요에)의 전통을 접목했고, 전후 일본사회와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을 평면 안에 담아냈다. 그의 분신 캐릭터 DOB(dobozite)의 이름은 1970년대 만화의 명대사에서 유래했고, 풍자와 언어의 유희를 대변한다. 또한 다카시의 유명한 귀염둥이 캐릭터 카이카이와 키키는 각각 괴상함과 기이함을 뜻한다.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기행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들이다. 최신작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에선 자신이 도브, 카이카이, 키키 등과 함께 그림 속에 출연한다. 다카시는 푸근한 옆집 아저씨처럼 느긋하게 자기만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 플라토에서 12월 8일까지 계속 된다.

연극 ‘우먼 인 블랙’

일본 만화나 미술 작품에 이렇다 할 애착이 없다면 등골이 오싹해질 연극을 하나 골라보자. 영국 작가 수전 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우먼 인 블랙’이다. 솔직히 제임스 왓킨스 감독의 영화 ‘우먼 인 블랙’은 지루했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아서 킵스로 출연했지만, 어느새 청년이 된 해리 포터에게 특별한 매력은 없었다. 반면 연극은 단 두 명의 배우로 끔찍하게 무서운 이야기를 완성한다. 확실한 건, 영화보다 연극이 더 무섭다는 점이다. 혹시 의심이 간다면, 영화와 연극을 보고 비교해도 좋다. 영화가 검은 옷 입은 여인을 유령(특수효과)으로 재현한다면, 연극 무대는 끝까지 한 번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저 그녀를 연상할 수 있는 그림의 단서를 보여줄 뿐이다. 눈앞에서 직접 발생하는 비극도 잔혹하지만, 상상하는 공포가 더욱 무섭기 마련이다. 특히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괴성이 섬뜩하게 심장을 파고드니,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고 오는 것이 좋다. 방심은 금물이다.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좋지만, 두 명의 배우가 모든 것을 소화하기 위해 극 중 극 형식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최소한의 무대 장치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경제성을 보여준다. 아서 킵스 역은 김의성, 홍성덕이 연기하고, 배우 역은 김경민, 김보강이 맡는다. 팁 하나! 소셜커머스를 잘 찾아보면 여름 할인도 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9월 22일까지, 비명 소리가 진동한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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