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공연 장면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공연 장면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공연 장면

공포시대 VS. 낭만적인 귀족생활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는 같은 시대임에도 너무나도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한다. 하나는 1793년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하는 공포의 혁명정권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왕정의 영국 귀족사회인 것. 이러한 배경에는 극의 전개가 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프랑스와 이를 우려의 눈길로 보는 영국 무대가 계속해서 번갈아 등장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파리와 런던의 무대 분위기가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것. 파리의 모습은 한결같이 어둡고 침침하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진동하는 반면, 런던은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럽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대에 나오는 프랑스의 이미지가 로베스피에르의 주도 하에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반(反)혁명 세력이라는 미명하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 반면, 주인공 퍼시가 사는 런던의 모습은 화려하고 여유있는 귀족의 생활만을 비쳐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퍼시가 프랑스로 건너가 억울하게 잡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을 보면, 마치 이상세계(영국)에 있는 주인공이 암흑세계(프랑스)로 가서 신음에 떨고 있는 민중들을 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뮤지컬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유난히 적용되는 것 같다. 즉 파리와 런던의 모습을 대비되게 묘사하듯이, 주인공 퍼시(박건형)와 쇼블랑(양준모)의 캐릭터도 너무나 대조적이다. 즉 퍼시는 악을 응징하는 정의롭고 낭만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수하인 쇼블랑은 한때 연인인 마그리트(김선영)의 목숨마저 빼앗으려 할 정도로 냉혹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설정했으니 말이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영화 ‘스칼렛 핌퍼넬’ 포스터.
영화 ‘스칼렛 핌퍼넬’ 포스터.
영화 ‘스칼렛 핌퍼넬’ 포스터.

바로네스 엠마 오르치의 소설 ‘별봄맞이꽃’(1903)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17, 1934, 1941, 1982년 등 여러 차례 영화는 물론이고 TV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로는 해롤드 영이 연출하고, 레슬리 하워드가 타이틀 롤을 맡은 작품(1934년 개봉)이다. 레슬리 하워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로부터 애정공세를 받는 애슐리 역으로 나오는데,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해 하워드의 모습이 잘 연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스칼렛 핌퍼넬’은 다르다. 지성적인 그의 이미지가 퍼시 역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마그리트 역의 멀 오버론과의 연기호흡도 아주 좋다.

이렇듯 영화에서 흥행이 검증된 ‘스칼렛 핌퍼넬’이 뮤지컬로 변신해 이번에 한국에서 초연을 갖게 됐다. 영화와 다른 이 공연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영화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당시 유행했던 로코코 양식을 무대 세트를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서슬 퍼런 단두대에서 사람들의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에선 사실적인 느낌을 넘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퍼시 VS. 쾌걸 조로

암울한 시대배경을 하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스칼렛 핌퍼넬’. 그 이유는 주인공 퍼시를 비롯한 비밀 결사대원들이 유머러스하고 프랑스로 건너가선 감옥에 갇힌 무고한 사람들을 아무런 희생없이 완벽하게 구출해내기 때문이다. 마치 유럽판 홍길동 일행이라고나 할까.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퍼시의 캐릭터가 미국의 소설가 존스턴 매컬리가 창출해 낸 쾌걸 조로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 조로 역시 겉으로는 퍼시처럼 유약해 보이지만 변장을 하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을 혼내주고 있다. 주의할 점은 퍼시의 캐릭터가 조로를 따라한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퍼시 즉 스칼렛 핌퍼넬의 이미지야말로 쾌걸 조로의 원조격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시대를 다룬 ‘두도시 이야기’가 현재 공연 중이다. 주목할 점은 똑같이 공포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극 전개와 혁명의 의미 부여가 아주 대조적이다. ‘스칼렛 핌퍼넬’이 공포시대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두도시 이야기’는 어째서 이러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전자가 마치 ‘고전적 할리우드’처럼 깔끔한 해피엔딩을 택하는 반면 후자는 ‘과연 저렇게 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럼 두 작품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그 답은 관객의 기호에 달려 있는데 굳이 팁 하나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원하는 이에겐 후자를, 부담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이에겐 ‘스칼렛 핌퍼넬’을 추천하고 싶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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