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바람이 분다’를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튜디오 지브리. 할리우드 디즈니에 맞먹는 위상과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는 쉽게 표현해 ‘하나’라고 보면 된다. ’원령공주’, ‘이웃집 토토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등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에서 탄생됐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디즈니 못지않게 국내 대중들에게도 참 익숙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제목은 ‘바람이 분다’다. 국내 개봉은 9월로 예정돼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터치와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너도나도 3D를 외치고 있는 요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에 흔들리지 않고, 2D를 고수하고 있다. 2D만의 맛과 감성 등에 대한 자신감처럼 비춰진다. 영화 속 사운드도 아날로그적이다. 심지어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는 기계음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만들어냈다. 노장이자 거장의 뚝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접해본 대중이라면 반갑겠지만 그 반대라면 낯설게 느껴질지도.

‘바람이 분다’는 일본의 비행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중 처음으로 실화 인물을 가져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부터 2차 세계대전이다. 그리고 호리코시 지로는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의 해군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인물이다. 제로센은 ’자살 특공대’를 일컫는 가미카제에 이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호리코시 지로를 그린다는 것이 한국 대중에게 그다지 반가울리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26일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 아뜰리에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남을 가졌다. “1903년에 태어난 호리코시 지로란 실제 비행기 설계사와 1904년에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리 다쓰오, 두 인물을 섞어 놓았다”며 신작소개로 한국 취재진을 맞이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리 예상했다는 듯, 아니 작심했다는 듯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신작은 물론 민감한 정치적 부분까지도. 한국 취재진과 그가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

Q. 영화의 시작이 관동대지진(1923년)이다. 그런데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있지 않았나. 마치 그에 대한 위로 또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보이더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지진 나오는 장면) 콘티를 그리고 나서 3.11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지진이 왔을 때 이 장소에 있었다. 점점 재해가 커진다고 느끼게 됐을 때 이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할까 고민도 했다. 더 이상 작품을 못 만들겠다고 하는 스태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패닉’을 그리고자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게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관동 대지진은 일본의 운명을 정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그 전까지 일본은 안정적인 사회였다면 그 지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타 버린 상황이 됐다.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 생각한다. 당시 내 아버지는 9살이었는데 이 작품 속에는 내 아버지의 삶도 같이 포함돼 있을 것 같다.

Q. 영화 속에서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는 애니메이션이 아름다운 꿈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전히 창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영화 속에선 그 시간을 10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가 있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애니메이터가 된지 50년 됐는데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꿈이다. 그런데 지금은 꿈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또 나의 창조적 시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이 세계의 비밀이 뭔지 알 것 같은 순간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Q. 세계의 비밀을 안 순간 창조의 시간이 끝났다고 얘기했는데 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음. 어려운 질문이다. 창조적 시간이 10년이라고 했는데 생각이나 사고를 ‘가진다’란 건 근육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카락의 경우 머리카락이 그냥 머리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긴장하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고 하듯 미묘하게 변한다. 그 미묘하다란 것을 발견했을 때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 지금도 (이 자리에 계신 기자분들도) 손짓이나 움직임 등으로 여러 가지 의사를 표현하고 있을 거다.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현실을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만드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그걸 만든 사람이 어떤 렌즈를 선택해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선명한 렌즈로 보게 되면 인간의 능력 이상으로 본 것을 표현하게 된다. 동시에 육안으로 본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경으로,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한 다음에 그림을 그려야 좀 더 크게 그릴 수 있는 것 같다.

Q. 극 중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는 ‘전쟁은 파멸의 길’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본군의 비행기를 만든다. 지로란 인물의 그런 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을 가지고 만들었고, 실제 인물이 만든 비행기가 태평양 전쟁에 쓰였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죄가 줄어드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지만 결국엔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게 아니라 TV만 보고 있게 됐다. 하하.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싶다.

Q. 비행기를 만드는 것 외에 호시코리 지로와 나호코의 사랑 이야기도 큰 축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사랑법과는 조금 다르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인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나호코가 살았던 당시 그리고 지금도 그런 (헌신적이고 순순한 사랑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분한테 자기 어머니와 나호코의 삶이 똑같다 라고 얘기한 것을 듣기도 했다.

Q. 지진소리나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 등을 기계음으로 만들지 않고 사람이 직접 낸 것 같더라. 독특하게 들렸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 지브리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영상만 아니라 효과에서도 점점 정밀해지고 있다. 그림이나 소리들이 굉장히 좋아진 반면에 잃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밀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또 정밀해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일까 싶다. 그래서 소리를 사람이 직접 소리로 내보자고 제안한 감독의 제안에 대찬성했다. 극단적으로 전부 인간이 소리를 내보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Q.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들과 작업을 해 왔다. 이번엔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런 이유가 있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안노 히데야키 감독은 30년 지인이다. 주인공 성우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PD가 제안을 했다. 어떻게 보면 효과음을 만든 상황이랑 같다. 전문가들이 하다 보니 신선감이 떨어졌다고 할까. 그래서 전문 성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Q.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3D가 대세다. 그러나 지브리 스튜디오는 2D를 고수하는 것 같다. 혹시라도 3D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은 없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전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국내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 건 신작 ‘바람이 분다’ 때문이 아니라 발언 때문이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매달 발행하는 ‘열풍’을 통해 현 일본 정부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뜨거워졌다. 아베 정권이 추진 중인 헌법 개정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사죄,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일본에서도, 국내에서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같은 발언을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선보인 신작 ‘바람이 분다’가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9월 개봉을 앞두고, 서둘러 한국 취재진을 자신의 작업실로 부른 이유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Q. 영화 속 상황이 현재 일본 경제 또는 정세,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정세와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1983년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만들었을 때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 피크였다. 그때 도대체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이미 만들었지만 ‘원령공주’란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또 ‘바람이 분다’를 만들면서 3.11대지진이 왔다. 재해를 따라가는 것 같다.

Q.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은 처음이다. 그런데 논란의 여자기 있는 전쟁과 연관된 인물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호리 다쓰오는 전쟁의 내용을 전혀 소설에 담지 않고, 호리코시 지로도 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만큼 대항을 하면서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업고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은 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림자를 업고 갈 순 있지만 그 순간순간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답변을 마친 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질문을 더 해 달라는 말을 했다. 민감한 문제에 있어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Q. 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비행기가 ‘제로센’이다. 가미카제에 이용된 비행기로 알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인도 희생당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동시에 최근 일본 내 개헌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혀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에 대해선 변함없다. 또 제로센에 대해 실제 가미카제에 이용된 특공대에서 제로센은 당시 구식이어서 별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호시코리 지로는 전쟁 후에도 같은 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큰 발언을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시대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로가 다르다, 맞았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Q. 한국에선 어찌됐던 이것 때문에 다소 불편한 시각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이 작품에서 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다. 그런데 작품 속에 나오는 일장기는 다 떨어지게 된다. 이걸 보고 여러 가지 말들과 생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Q. 최근 아베 정권에 거침 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게 한국에선 상당히 이슈였다. 그렇다면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영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동아시아 지역은 사이가 좋아야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싸우면 안 된다. 격동하는 시기인데 별거 아닌 것(아베 정권이 하는 행동과 정책)을 가지고 문제를 삼으면 안 되겠죠. 아베노믹스 등 여러 이야기가 대두되고 있는데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지브리에서 발간하는 ‘열풍’이란 잡지에 글을 올려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인터넷 공격을 많이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인터넷을 전혀 안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다. 하하.

Q. 역사인식 발언과 위안부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생각을 듣고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1989년도에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되고, 같은 시기에 소련도 붕괴됐다. 그 시기에 일본인은 역사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현재 망언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위안부 문제 역시 예전에 반성을 했어야 한다. 다시 위안부 문제가 오르내리고 하는 건 굴욕적이다. 과거 일본 군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본다. 이렇게 역사 이야기를 해 왔어야 하는데 그간 일본은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벌 수 있는지 등 경제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결국 다 잃어버린 것 같다.

도쿄=글.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대원미디어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