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3명이 최고의 공연으로 꼽은 나인인치네일스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안산 대부도 바다향기테마파크에서 열린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하 안산밸리)은 현재 록계를 대표하는 노련한 거장들부터 ‘핫’한 신진 세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큐어, 나인 인치 네일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스크릴렉스, 스티브 바이, 스테레오포닉스, 포올스, 펀, 허츠, 뱀파이어 위크엔드, 프리실라 안 등이 ‘안산밸리’에 모여 저마다 출중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 중 음악평론가, 기자, 업계 관계자 등 전문가 10명이 꼽은 ‘안산밸리’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꼽아봤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BEST: Nine Inch Nails. ‘안산밸리’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공연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90년대 뮤지션이자, 지난 두 차례의 내한에서 부끄러울 정도의 대접을 받은 트레트 레즈너의 명예회복의 시간이 돼줬다. 상상력과 실행력, 그리고 예산 이 셋 중 하나만 없어도 구현이 불가능한 무대는 ‘역대 급’으로 기억될 빛과 소리의 황홀한 카오스였다.
WORST: 유승우. “도대체 그가 왜 저 무대에 서 있는 거지?”라는 생각만 내내 들었다. 관용과 인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질 뻔.

한경석 (B.GOODE 편집장)
BEST: The Cure. 큐어의 팬이 아니었다면 앙코르 이전 두 시간이 넘게 이어간 큐어의 공연만으로도 낯설고 고통스러웠을 게다. 큐어의 팬이었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네 시간, 다섯 시간의 공연이 아니었냐며 불만족스러웠을 게다. ‘안산밸리’ 큐어의 공연은 누구에게나 불만인, 최고의 공연이었다.
WORST: My Bloody Valentine. 사운드는 좋았지만, 보컬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의도였다면 최악의 공연이라 할 수 없지만,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불친절한 공연으로 꼽을 수 있다. 팬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앞세운 것이니까.

10명 중 3명이 최고의 공연으로 꼽은 큐어

김성환(음악칼럼니스트)
BEST: The Cure. 3시간 동안 무시무시한 스테미너를 발산한 보컬리스트 로버트 스미스를 비롯한 큐어의 멤버들에 넋을 잃고 빠져듦. 다른 밴드 같았으면 최고 히트곡 ‘Friday I’m In Love’를 분명히 앵콜 곡이나 본편 마지막에 배치했겠지만, 그런 건 아랑곳없이 점점 초기 히트곡으로 달려간 그들의 패기. 큐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이들에겐 그 3시간이 괴로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공연의 러닝타임 때문이지, 그들의 음악 때문은 결코 아니다.
WORST: My Bloody Valentine. 물론 아티스트는 자신의 주관을 음악으로 펼칠 수 있고, 사운드의 실험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안산밸리’에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무대는 너무 불친절해 보였다. 첫 내한공연보다 사운드 면에서는 더 잘 잡혔다고 하던데, 분명히 마이크에 대고 뭐라 하고 있는데, 하나도 안 들렸다. 음반에서만큼만 해주었으면 그래도 나았을 텐데.

한명륜(STUDIO24 피처에디터)
BEST: Stereophonics. ‘안산밸리’를 ‘안산 브리티시 록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 페스티벌 무대마다 특성이 있게 마련이다. 평가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비교적 더 와 닿았던 무대를 꼽는 기준이라면 아무래도 그 특성과 조화를 잘 이뤘던 뮤지션과 밴드를 꼽아야 할 터다. 지산 시절부터, 공연을 진행해 온 엔지니어 팀은 브리티시 록의 사운드 속성, 특히 고역대를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도 디테일하게 구현하는 데 노하우가 있음을 입증했다. 스테레오포닉스의 사운드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던 베이스를 제외하면 최상이었다. 물론 첫째 날 밤의 큐어에서의 사운드 운용력도 좋았지만,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둘째 날에 구현해 낸 사운드가 더 발전적이었다.
WORST: Steve Vai. 스티브 바이의 사운드 이해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스티브 바이의 속주 솔로잉에서 그 많은 노트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의성어로 이야기하자면 ‘우루루루’하고 나와야 할 음이 ‘우우우우’로 들렸다고 할까. 조금 전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는 솔로 연주 시에 종종 중음역대 증폭을 통해 밀도가 높고 전자적인 성향이 강한 음을 만들어낸다. 필연적으로 사운드 엔지니어링에서 윤곽을 다듬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의 음악과 사운드 운용의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밖에 다른 할 말을 찾기 어렵다. 물론 개런티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40분 정도의 무대에 자신의 사운드 팀을 불러오진 못했을 터. 전체적 라인업에서 다소 이질적인 뮤지션이었던 것도 사운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스티브 바이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이나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로 가는 쪽이 나았을 터다.

스티브 바이

성시권(대중음악평론가)
BEST: The Cure. 관록이 무엇인지 보여준 명불허전의 공연.
WORST: Coheed & Cambria. 핵심파악이 안 되는 정체성이 모호한 공연

정원석(대중음악평론가)
BEST: Nine Inch Nails. 나인 인치 네일스는 우리나라 공연 역사에 길이 남을 무대를 선보였다. 엄청난 물량, 완벽한 사운드,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이 어우러져 완벽 그 자체의 공연을 만들어냈다.
WORST: 한희정. 무더운 날씨와 페스티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어서 아티스트와 관객이 모두 맥이 빠졌던 무대였다. 집중하기 어려운 낮 시간 대여서 피로감이 더했다.

이세환(소니뮤직 차장)
BEST: Skrillex. 우주에서 온 덥스텝 외계인 스크릴렉스는 진흙 밭에서 지친 다리를 90분간 춤추게 했다. ‘안산밸리’를 거대한 클럽으로 만들어버리고, 록 마니아들을 댄서들로 만들어버린 주술사 스크릴렉스!
WORST: My Bloody Valentine. 처음 보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라 너무 기대한 탓일까. 앨범에 미치지 못하는 사운드가 아쉬웠다. 아무리 장르가 슈게이징이라고 하지만 보컬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리고 각 악기들의 소리도 너무 거슬리게 부조화를 만들어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같은 팀은 잡음 하나하나라도 세심하게 잡아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공연이 최악이라기보다 음향이 최악이었다.

스크릴렉스

김두완(음악칼럼니스트)
BEST: Nine Inch Nails. 시작부터 끝까지, 나인 인치 네일스는 파격을 일삼고 환희를 일구어냈다. 트렌트 레즈너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공연에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WORST: Steve Vai. 비르투오소 스티브 바이와 그의 밴드는 관객의 기대에 맞게 신기에 가까운 명연을 펼쳤다. 그러나 어중간한 공연 시간대와 다소 짧은 공연 시간은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아쉬운 설정이었다.

권석정(텐아시아 기자)
BEST: The XX.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꼭 신나고 헤비한 팀이 장식하라는 법은 없다. 은근한 리듬으로도 관객을 넉다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더 엑스엑스의 무대였다. 필시 국내 팬들에게는 낯선 팀이었지만 이들은 공연장의 분위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느릿하면서도 댄서블한 사운드는 관객들을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춤추게 만들었다. 특히 밴드의 중심인 제이미 스미스는 샘플러, 일렉트릭 스틸 드럼, 신디사이저, 턴테이블 등 여러 악기로 갖가지 소리를 만들어내며 귀를 즐겁게 했다.
WORST: My Bloody Valentine.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록페스티벌인지라 스크릴렉스의 열기를 한 방에 날려줄만한 음악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게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아쉬움 뿐.

임슬기(PAPER 에디터)
BEST: HURTS. 시작부터 강렬함보단 기묘함에 끌렸다. 라이브로 본 허츠의 무대는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보컬 티오 허츠크래프트의 꿀렁꿀렁 하는, 하반신이 프리한 춤사위가 매력적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하얀 장미꽃을 관객들에게 던질 때는 교주 같은 느낌이 감돌기도 했다. 황홀경에 빠진 처자들의 ‘떼창’이 이어졌던 새벽의 무아지경 무대.
WORST: 페퍼톤스. 본인들의 말처럼, ‘쫄아 있는’ 느낌이었다. 돌고래 샤우팅과 묵직한 사운드가 즐비한 큰 형님 밴드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치 않았을 터. 물론, 페퍼톤스가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뮤지션이 아닐지라도, 이날은 관객이 민망할 정도로 베이스 이장원의 목소리에 스크래치가 쫙쫙 갈라졌다. ‘목’보신이라도 시켜드려야 하나….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