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에서 이어짐) 1965년 탁월한 미모를 자랑했던 5인조 걸 밴드 레이디 버드가 뒤를 이었다. 1964년 KBS 톱싱어 대회 연말결선에서 대상을 받았던 여고생 장미화는 신중현이 리드한 록밴드 애드훠의 객원보컬로 미8군 무대에 섰다. 스무 살의 날씬하고 예쁜 여자보컬리스트의 등장에 미8군 사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파람을 불어댔다고 한다. 그때 동영프로덕션에서 걸 밴드를 결성해 외국공연을 떠나자는 제의를 받았다. 리드싱어와 드럼을 맡은 장미화를 주축으로 한 레이디버드는 동남아, 미국, 캐나다로 순회공연을 떠나 4년 후에 귀국했다. 한 명이 탈퇴해 4인조가 된 레이디버드는 1969년 5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제1회 전국보컬그룹 경연대회에 참가해 섹시하고 육감적인 용모와 세련된 무대매너로 관객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내며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바니스 비틀즈 월간 가요생활 1966년 11월호 소개기사(위), 리버 엔젤스(아래)

1966년에 결성된 국내 최초의 4인조 여성 비틀즈 이미테이션 밴드 바니스 비틀즈도 있었다. 드럼 노현희, 리드기타 주명원, 베이스기타 임계영, 세컨드 기타 안성희로 구성되어 흥겨운 무대를 연출했다. 그동안 전설적인 록밴드 키보이스가 최초이자 유일한 1960년대 비틀즈 이미테이션 밴드로 알려졌었는데 뒤를 이어 이미테이션 걸 밴드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기록과 밴드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1960년대의 걸 밴드들은 국내 무대뿐 아니라 파월장병 위문공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 진출해 국위를 선양했던 한국 걸 밴드 한리버스엔젤도 있었다. 현지에선 한국왕사소녀음악대(韓國王使少女音樂隊)라 불린 이들은 리드보컬, 드럼, 기타 3명으로 총 5인조로 구성되었다. 멤버에 대한 정보조차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걸 그룹이다. 코리안 걸 밴드 한 리버 앤젤스는 싱가포르 TNA레코드에서 ‘To Sir with love’, ‘Wipe Out’, ‘san francisco’, ‘LaBamba’ 같은 록큰롤 초기 히트 팝송들을 수록한 싱글 음반을 4장 발표했을 정도로 현지에서 인기를 구가했었다. 팀명에 ‘한강’을 넣어 한국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점은 가슴 뭉클하다.

해피돌즈 연습장면(1972년)

전설적 걸 그룹 해피돌즈가 1971년 태동했다. 5~7인조로 활동했던 이 팀의 리드보컬 김명옥은 천재 소녀 보컬리스트 출신 나미다. 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미8군 무대를 통해 가수활동을 시작해 1980년대 최고 여성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나미는 80년대 최고의 댄스가수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던 1971년, 5인조 걸 밴드 해피돌즈의 멤버가 되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7인조 시절, 전원 10대들로 구성되었던 멤버들은 리더인 기타 겸 색소폰 김승희, 기타와 플롯 겸 보컬에 김명옥, 베이스 이종숙, 퍼스트 기타 겸 트럼본 김승미, 오르간 김영숙, 트럼펫 이종숙, 리듬기타 신수연, 드럼 김은숙이다. 당시 이들은 ‘7인의 어린마녀들’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밤무대를 평정했었다.

5인조 걸 밴드 화녀들 70년대(위), 박신덕과 다섯재롱이 1978년(아래)

미군들로부터 ’코리안 잭슨 파이브‘로 불린 해피돌즈는 2년 동안 베트남에서 활동했다. 1973년 귀국한 해피돌즈는 실버타운, 라스베가스 클럽에서 HE6, 키 보이스 같은 기라성 같은 남성 록 그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이후 달콤하고 감미로운 버블껌 사운드나 춤추기 좋은 고고음악을 주로 노래한 이들은 5년 간 미국 전역을 돌며 활동했다. 1977년, 뛰어난 연주솜씨와 춤 그리고 이국적인 용모로 사랑받았던 이들은 캐나다 토론토의 솔라스 레코드사에서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1972년 밤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4인조 힛걸스와 5인조 화녀들, 1978년 독집을 발표한 5인조 박신덕과 다섯 재롱이도 있었다.

이브 2기 멤버(1989년)

한동안 명맥이 끊긴 걸 밴드 역사는 1988년 리드보컬 백운지, 기타 김경희, 키보드 박혜선, 드럼 배애경, 베이스 기타 김소라로 구성된 5인조 걸 밴드 이브가 등장하며 명맥이 이어졌다. 걸 밴드 이브는 하드한 사운드를 제대로 구사했던 걸 밴드였다. 멤버 대부분은 고등학생이거나 대학 신입생의 어린 멤버들이었다. 고역의 샤우팅 창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한 소찬휘는 리드기타리스트로 만만치 않은 기타실력을 선보였다. 이브는 곧바로 베이스기타가 김소라에서 허수정으로 교체되어 2기를 결성해 1989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소찬휘는 1992년 SBS 신세대 가요제에 출전해 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996년 솔로 1집 발표 전까지는 김경희란 본명으로 활동했다.

와일드로즈 멤버(1993년)

1989년 결성해 1993년 공식 데뷔한 5인조 걸 밴드 와일드 로즈의 존재는 한국 걸 밴드역사에 있어 매우 신선하다. 여성밴드가 히트곡 ‘그대처럼’에서 보듯 멋지게 연주하고 강하게 노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렸다. 부산출신 걸 밴드라는 점도 그렇고 홀연히 등장했다가 사라진 것도 신비롭다. 멤버는 보컬 최정숙과 베이스 이인희, 키보드 양희경, 드럼 이지은, 기타 김선미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2집 발표 이후 지상파TV에 출연하며 폭넓은 대중과 소통하려 힘썼다. 그러나 강하고 멋진 음악을 들으며 품었던 섹시하고 근사한 팬들의 환상은 브라운관에서 등장한 이들의 모습에 깨졌다. 멤버들은 예쁘지도 않았고 강한 사투리, 과묵한 이미지였기 때문. 이들은 걸 밴드의 성공요인은 탁월한 음악성에다 비주얼까지 겸비해야 된다는 숙제를 남겼다.

미스미스터 공연포스터 (2007년)

1996년 등장한 듀엣 걸 밴드 미스미스터는 보컬 박경서, 기타 김민정으로 구성되었다. 넥스트의 베이스트 김영석이 프로듀싱한 1집을 발표한 이들은 남성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중성적 외모였던 리드보컬 박경서가 단연 화제를 모았다. 타이틀 ‘널 위한 거야’가 맥주광고 삽입곡으로 사용될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1997년 2집 후 활동을 중단했다. 공백기인 1999년 박경서는 솔로 앨범을 발표해 독립했고 2000년 혼성그룹 ‘베이비 블루’ 출신의 베이시스트 이혜민을 영입해 트리오로 재결성해 3집을 발표했다. 멤버들이 작사, 작곡을 담당하며 실험성과 완성도 높은 음악성을 구사했지만 이들 역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한스밴드 공연(1998년)

1998년 등장한 14~16세의 중학교 1, 2, 3학년 소녀였던 김한나, 김한별, 김한샘 친자매로 구성된 3인조 걸 밴드 한스밴드는 걸 밴드 역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인기 밴드였다. 충청북도 영동에서 성장한 이들은 중학교 교복을 팀 의상으로 착용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깜찍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히트곡 ‘선생님 사랑해요’는 1960년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의 90년대 버전이라 할 만 했다. 섬마을 선생님은 말도 못하고 수많은 밤을 헤이며 섬마을 처녀의 마음을 도려낸 1960년대식 선생님 사랑을 노래했다면 한스밴드는 선생님에게 여자로 보이고 싶다는 소녀의 적극적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 선생님에 대한 소녀들의 사랑도 정서도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IMF로 직장을 잃은 아버지를 ‘오락실’에서 만나는 내용의 ‘오락실’ 또한 뭉클한 감동을 안기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활동 당시 한스밴드는 음반사와 전속금 500만원에 전속기간 5년의 계약을 맺은 뒤 음반판매수익이나 방송출연 수익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관할 동사무소에서 생계보조비를 받으며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3집까지 발표하고 활동을 중단했던 자매들은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서 음악을 공부한 후 2007년 컴백해 4집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세기가 끝나가던 1999년 톡톡 튀는 매력으로 승부한 이여진, 박꽃별등으로 구성된 3인조 걸 밴드 아이다도 있었지만 한스밴드의 인기에 밀려 2집 발표한 후 해체했다.

아이다 1999년(위), 16 지젤 1집 2000년 대영 (아래)

세기가 바뀐 2000년 5인조 지젤(gissele)이 포문을 열었고 이어 2001년 2인조 모던 록 걸 밴드 버튼(Button)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 3인조 크로스오버 전자 걸 밴드 일렉쿠키(ELECCOOKIE)도 나타났다. 바이올린 이성은(진미), 키보드 이혜정(기명), 첼로 박현영(보연)으로 구성된 이들은 2004년 화려한 액션, 파워풀한 연주로 클래식과 팝, 라운지, 민요까지 다양하게 수록한 1집 ‘TEMPTATION’으로 그해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9년 서지영(드럼), 최영신(베이스), 박송이(기타), 장한이(보컬)로 구성된 여성 4인조 걸 밴드 니아가 등장했다. 니아의 기획사와 보컬 장한이의 기획사는 서로 다른데 두 제작사가 이익보다는 음악성을 위해 의기투합한 사례다. 2010년 3인조 러버더키와 2011년 해인, 미선, 아연으로 구성된 3인조 스윙즈가 등장해 걸 밴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PART3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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