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교보문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근원지는 교보문고 내 레코드숍 핫트랙스 앞에 설치된 음반사 굿인터내셔널의 팝업스토어(임시매장). 하이엔드 오디오를 타고 들려오는 낯선 집시기타 연주가 행인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판매자에게 음악에 대해 묻자 친절한 설명과 함께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집시 스윙의 명인들인 로젠버그 트리오와 기타리스트 비렐리 라그렌이 함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를 추모하는 ‘Djangologists’라는 앨범입니다. 집시기타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죠.” 도란도란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행인들도 분주하게 음반을 구경한다. 놀랍게도, 그 중 꽤 많은 이들이 구경에 그치지 않고 돈을 내고 음반을 구입한다.“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직접 음악을 들으시다가 마음에 들면 음반을 사세요. 한 번에 열 장 넘게 구입해 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처음 보는 뮤지션의 음악인데도 오디오로 직접 듣는 소리가 좋아서 자연스레 구매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직접 음반을 손에 들고 누가 작곡을 하고 세션을 했는지 히스토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성수원 굿인터내셔널 부장의 말이다.
재즈, 클래식, 월드뮤직을 전문으로 제작 유통하는 음반기획사 굿인터내셔널은 올해 초부터 교보문고 강남점, 광화문점, 잠실점 내에 팝업스토어를 차리고 현장 판매에 나섰다. 손님들의 반응이 뜨겁다. 세 개 팝업스토어에서 한 달 평균 약 6,000장 이상의 앨범이 현장에서 직거래로 팔린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요를 다루지 않는 단일 음반사로는 굉장한 숫자다. 6개월 사이에 매출이 다섯 배 이상으로 뛰었고, 두 명이던 정직원은 일곱 명으로 늘었다.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앨범 ‘J. S. Bach Goldberg Variations’은 6개월 만에 현장에서만 무려 1만장을 넘게 팔았다. 이 역시 기록적인 숫자로 업계에서 놀랄만한 일이다. 이외에도 두스코 고이코비치, 르네 가르시아 퐁스, 압둘라 이브라힘 등 일반인들은 이름도 발음하기도 힘든 아티스트의 음악들이 팔려나가고 있다.
ADVERTISEMENT
1995년에 문을 연 굿인터내셔널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뉴트롤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유명한 파블로 카잘스, 집시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 등 재즈, 클래식, 월드뮤직에 걸쳐 거장들의 음악을 소개해왔으며 국내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독일 5인조 그룹 살타첼로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굿인터내셔널을 설립한 이근화 대표는 음반업계에 몸담은 지 3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다. 음반업계가 호황이던 때부터 MP3의 등장으로 불황을 맞은 ‘잃어버린 10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상황을 겪으며 살길을 모색했다. 올해부터는 이윤이 나지 않는 온라인 음원 유통을 전격 중단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음반을 들고 찾아가는 마케팅을 시도하게 됐다.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정작 좋은 음악을 찾아들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10년 전만 해도 전국적으로 5,000개의 음반점이 있었고 각 매장의 주인들이 음악을 추천해주는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죠. 온라인 매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음악마니아가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서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서 음악을 소개해주는 마케팅을 시도하게 됐습니다.”
ADVERTISEMENT
굿인터내셔널 측은 올해 안에 전국의 대형마트, 백화점 등지에 10개 이상의 팝업스토어를 열 계획이다. 이 대표에게 기사가 나가면 경쟁 사업체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농을 걸었더니 너털웃음이 돌아왔다. “경쟁자가 생겨서 함께 발전해나가면 좋겠어요. 음반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다른 음반사들도 밖으로 나오셔서 구매자들과 만났으면 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은 음악을 그리워하고 계시니까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굿인터내셔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