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의 전작 ‘국가대표’보다 더욱 국가대표스러운 영화다. 중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을 상대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엄밀히 말하면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 영화인 셈이다. 원작은 허영만의 ‘제7구단’이지만, 고릴라가 야구 경기를 한다는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많은 부분에서 수정이 가해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서커스단을 이끌게 된 15세 소녀 웨이웨이(서교)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46세의 고릴라 링링. 그리고 고릴라를 이용해 큰 몫 챙기려는 야구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시우 : CG 효과에 있어서만큼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 관람지수 7 / CG지수 9 / 교감지수5
“갈 길이 멀다!” 한국 최초 3D블록버스터 ‘7광구’가 개봉했을 때 언론들이 앞 다투어 한 말이다. 그 예견은 틀렸다. 언론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건 ‘미스터 고’다. ‘7광구’와 ‘미스터 고’의 개봉 시차는 2년. 하지만 3D기술은 ‘강산이 한번 변한 것’처럼 달라졌다. 400여명의 스태프들이 이물감 없는 3D효과를 만들기 위해 4년을 매달렸다더니, 사실임을 확인했다. 화면을 향해 날아드는 시속 200㎞의 강속구에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는 관객을 목격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간감, 입체감, 화면 밝기.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3D효과를 배가시키는 건 VFX(시각효과)기술의 완성도다. ‘미스터 고’에 쏟아진 관심의 8할이 디지털로 구현될 고릴라 링링이었음을 생각했을 때, 그 성과는 더욱 의미 있다. 사실감 넘치는 털의 질감과 미세한 표정 변화를 구현해 낸 VFX 기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사실 진짜 같은 디지털 캐릭터는 ‘혹성탈출’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목도했으니 그 자체가 새롭진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기술을 구현해 냈다는 반가움에 애국심을 슬그머니 꺼내 들 관객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 고’의 기술적 성취 못지않게 김용화 감독이 신경 쓴 건 고릴라 링링과 소녀 웨이웨이의 우정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미스터 고’의 아킬레스건은 이 부분이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소녀 웨이웨이 – 그런 소녀를 흡사 어미의 마음으로 품는 고릴라 링링- 돈에 혈안이 된 에이전트 성충수. 아쉽게도 캐릭터 사이에서 파생된 화학작용이 정점을 찍지 못한 채 휘발된다. 풀어놓은 갈등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재빠르게 봉합됐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캐릭터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면 지금보다 좀 더 개연성을 살려야 했다.
링링과 웨이웨이의 우정에 집중하면서 영화는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노선을 걷는다. 즉 ‘오합지졸들이 모여서 성장하고 반목했다가 화해한 후 극적인 승부를 펼치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카타르시스가 미약하다. ‘집(home)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는’ 야구철학을 대타로 기용하긴 했지만, 그러한 철학을 음미하기에도 주제의식에 다가가는 집요함이 부족하다. 드라마적인 갈등에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스포츠영화 특유의 쾌감을 조금 더 부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미스터 고’의 아군이 되느냐 적군이 되느냐는 ‘만듦새 좋은 기술력’과 ‘이야기의 단점’ 중 어느 것을 더 크게 취해서 음미하느냐에 따라 갈릴 공산이 크다. 공은 이미 던져졌다. 영화가 휘두르는 건 홈런일까, 안타일까, 아웃일까.
기명균 : 고릴라와 인간도, 영화와 관객도 교감 실패 ∥ 관람지수 6 / CG지수 9 / 교감지수 5
대한민국 꿈의 영화. ‘미스터 고’에 따라붙는 문구다. 야구 소재의 걸작 ‘꿈의 구장’에서 따온 말일지도 모르겠다. 1989년의 레이가 꿨던 꿈이 야구장 건립이었다면, ‘미스터 고’가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 리얼, 입체, 최초 등의 수식어는 이 영화에 집약된 각종 디지털 기술을 가리킨다. 그 기술이 모여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 링링은 ‘미스터 고’ 제작진이 실현시키고자 했던 꿈이다. 링링은 꿈의 고릴라다. 공을 받아칠 때의 타격감은 실제 야구 중계를 능가했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앞발의 묘사는 섬세했다. 성충수 역할을 맡은 성동일은 인터뷰에서 “촬영하다 보니 링링이 실제 고릴라고, 오히려 배우들이 CG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링링에 대한 만족을 드러내는 그의 말에는 오히려 ‘미스터 고’의 문제가 숨어 있다. 링링이 완벽하게 구현된 데 비해, 또 다른 핵심 캐릭터 웨이웨이와 성충수는 어색한 CG처럼 이야기에서 겉돈다.
야구장에 입성한 링링은 거침없다. 쳤다하면 홈런이다. 빚을 갚아야 하는 웨이웨이와 ‘대박’ 꿈에 부푼 성충수는 환호한다. 하지만 정작 관객은 그만큼 신이 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초반부, 영화는 15분 정도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링링과 웨이웨이가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차곡차곡 쌓여야 할 감정들이 내레이션으로 대체되면서 이야기에 몰입할 기회를 잃게 된다. 돈밖에 모르던 인간 사냥꾼 성충수는 어느 순간부터 동물과 교감하는 휴머니스트가 됐는지도 불분명하다. 링링은 털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표현됐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감정은 대강 뭉뚱그려졌다.
‘미스터 고’의 주 무대인 잠실야구장의 위용은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그라운드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정작 야구의 본질은 심하게 훼손된 느낌이다. 에이전트가 경기 중에 덕아웃을 드나들고, 심지어 1루 코치 박스에서 채찍을 휘두른다. 여기까지야 이야기 전개를 위한 설정이라고 애교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투수가 던지는 공의 스피드, 구질, 컨트롤과 상관없이 담장을 넘겨버리는 링링이 등장하면서, 야구의 다른 규칙들은 무의미해져버린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열 번 타석에 들어서면 예닐곱 번은 아웃된다. 그런데 치기만 하면 홈런이라니. 만약 그런 타자가 존재한다면 그 순간 한국 프로야구의 흥행 행진은 끝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야구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야구팬이라기보다 동물원 관람객에 가깝다.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 고’를 통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을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성충수가 링링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에서처럼. 그러나 그라운드에 선 링링은 외로워 보인다. 웨이웨이는 채찍을 휘두르며 치고 달리라는 말만 할 뿐, 링링이 건네는 바나나도 받지 않는다. 채찍을 든 웨이웨이와 절뚝거리는 링링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 이 관계를 교감이라 할 수 있을까. 링링과 웨이웨이의 교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영화와 관객의 교감 또한 쉽지 않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기명균 kiki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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