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NL 코리아’ 조연출 김상배, 김희진, 손용락, 정현빈, 윤인회, 박지혜(왼쪽부터)대한민국 단 하나, ‘뭘 좀 아는 어른들’의 생방송 코미디. 3주 만에 방송을 재개한 케이블채널 tvN ‘SNL 코리아’(이하 ‘SNL’)는 어딘가 달라도 한참 다른 프로그램이다. 콩트를 기반으로 시사 풍자, 19금 개그 코드를 한국적으로 풀어낸 코너들은 어느새 ‘SNL 코리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매주 토요일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매번 바뀌는 호스트들 간의 호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80여 분간의 방송을 위해 무대 뒤편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여섯 명의 조연출들. 그들의 일과와 생방송 당일의 분위기를 현장감 있게 담아봤다.
주간 작업일지: tvN ‘SNL’를 책임지는 여섯 명의 조연출들, 박지혜(4년 경력), 김희진(3년), 윤인회(2년), 김상배(2년), 정현빈(1년), 손용락(신입)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일주일간의 작업일지를 가상으로 꾸며봤다 <편집자주>
# 2013XXYY 월요일
“오전에 말한 아이템들 자료조사 철저히 하라고!” 월요일 오전 회의 후 선배들의 지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자료준비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인회와 현빈이는 정산을 맡는다. 정산하는 날에는 현빈이가 부쩍 날카롭다. 식당에 가서도 선배들에게 “그거 안 드시면 안 될까요?” 혹은 “택시타지 마세요”라고 돌직구 날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예산에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가끔은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배와 용락이는 소품, 의상 준비와 촬영 장소 섭외에 들어간다. 우리 ‘SNL’이 좀 특별한가. 사용하는 소품들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하루 종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다보면 어느새 새벽별 보기가 일쑤. “조연출은 만능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하루다.
#2013ZZEE 화요일
오늘은 대본이 나오는 날. 대본이 있으니 좀 더 구체적인 촬영 준비가 가능해진다. 토요일에 진행되는 생방송도 그렇지만, 야외 촬영도 준비해야 할 것이 태산이다. 장소 섭외가 중요한데 어디 촬영할만한 공간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인가. 가정집 촬영신을 위해 장소 섭외를 해오라고 상배를 보냈더니 일반 가정집 3~4군데를 돌다가 결국 섭외를 해냈다. 무턱대고 초인종 누르고 “tvN ‘SNL’에서 나왔습니다”하면서 명함을 돌리면 된다나? 예전에는 ‘SNL’를 아는 분들이 적어서 섭외가 쉽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더러 반기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상배도 점점 얼굴의 철판이 두꺼워지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퇴근’이 가능한 날이니까 일하는데 힘이 난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12시나 1시쯤엔 퇴근할 수 있겠지?
#2013WWQQ 수요일, 2013TTGG 목요일
수요일에는 본격적으로 야외 촬영이 진행된다. 야외 촬영에 변수가 많다보니 신경도 예민해지고 더 분주한 하루다. 영상 작업과 생방송 의상과 소품을 확인 업무를 맡아 회사에 남는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야외촬영에 투입된다. 온 종일 야외 촬영에 집중하다가 새벽녘에는 회사에 들어와서 촬영 영상을 편집한다. 직업병도 생기는 것 같다. 상배는 쉬는 날 여자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도 자꾸 두리번거리게 된다고 하더라. 눈에 띄는 곳을 발견하면 왠지 장소 섭외를 해야 할 것 같다나? 인회는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소품으로 쓰면 좋겠는데?’하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니, 정말 말 다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의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수면실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워낙 철야 작업을 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수면실 이용도 눈치 싸움이 되곤 한다. 그럴 때는 수면실 바닥에서 자거나 회의실이나 편집실에 의자나 매트를 깔아 놓고 잔다.
#2013RRGG 금요일
치열했던 4일이 지나고, 어느덧 생방송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생방송 전날에는 촬영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한다. 작은 실수도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품, 의상 할 것 없이 터럭만큼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야외 콩트에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조사하면서 야외 촬영을 마무리하고, 편집에 필요한 자료나 영상은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 수요일부터 수련회 온 것 마냥 6명이 함께 숙식하다보니 금요일쯤이면 여기저기서 “‘SNL’, 너희가 회사 전세 냈냐”는 얘기가 들려온다. 오후 12시만 되면 정적이 흐르는 회사에서 우리만 웃고 떠드니까 그런 가보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팀의 분위기가 그만큼 즐겁고 좋은 걸.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한층 더 끈끈해진 우리의 관계는 ‘SNL’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2013LLOO 토요일
생방송 날의 아침이 밝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져 온다. 지혜는 리허설부터 생방송까지 진행을 맡고, 인회와 희진은 오전부터 야외 촬영 영상과 생방송 영상 편집과 색 보정 작업으로 정신이 없다. 소품과 의상을 준비하는 상배와 용락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현빈이는 촬영장에 도착한 호스트들을 곁을 지키며 호스트와 제작진의 소통의 통로가 된다. 생방송 무대에서는 작은 실수하나가 아찔한 방송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 번 ‘호스트 봉태규’ 편 때는 다음 영상으로 전환하기까지 1분도 안 남긴 상태에서 테이프를 전달하기도 했다. 시간에 ?기며 한 쪽 어깨로는 핸드폰을 걸쳐놓고 실시간으로 지시를 받으며 편집할 때의 긴장감이란…, 휴. 그런 일이 있어서 인지 오늘 생방송 무대를 준비하는 우리 조연출 멤버들의 표정엔 묘한 긴장감이 서려있는 듯하다. 오전 11시부터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1~2시간 정도 진행된 후에는 점심을 식사를 하고 바로 2시부터 리허설에 들어간다. 이 과정 중에 대본이나 무대 구성, 동선 등이 수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늦을 경우에는 5시, 6시까지 리허설이 이어지기도 한다. 9시에 1차 공연을 맞춰 본 후에 11시부터 생방송 촬영에 들어가게 된다. 밴드 커먼 그라운드가 연주하는 ‘SNL’의 시그널이 흐르기 시작하면 우리의 심장박동도 음악을 따라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2013KKHH 일요일
일요일에는 대체로 쉬는 편이지만 월요일 촬영이 있는 경우에는 오늘 촬영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생방송 무대를 마친 다음날, 모두가 기진맥진한 표정이지만 눈빛에는 어제 무대에 대한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하다. 유독 ‘SNL’은 생방송 무대를 마친 배우들이 제작진을 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께 무대를 꾸몄기에 모종의 ‘동료애’를 느낀 달까. 지상파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조연출이 입봉 할 때까지 6~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케이블 쪽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기에 제작진의 연령층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다. 우리가 꿈꾸는 입봉 후의 삶도 각양각색이다. 상배는 “지상파 막장이 아닌 캐릭터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인회는 “재미있는 요소를 넣은 KBS2 ‘인간의 조건’과 같은 다큐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현빈이와 희진이는 인디 공연 문화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나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꿈꾼다. 막내 상록은 SBS ‘정글의 법칙’처럼 외국에서의 경험을 담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기도 하고, 지혜는 “입봉 후에도 ‘SNL’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SNL’의 경험은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남겼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고의 무대를 위해 불철주야 정진하는 우리들, 조연출 업무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SNL’의 조연출? 조연출 업무는 몸에 나쁘지만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마약이다”
글. 김광국 기자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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