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록밴드 플라시보도 이제 어느덧 결성 20주년을 향해 달려간다. 90년대, 그러니까 브릿팝 전성기에 활동했던 많은 밴드들이 사라졌지만 플라시보는 여전히 건재하다. 특유의 섹시하고 매혹적인 사운드가 장수의 비결일까? 어떤 장르를 시도해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 점이 오래 가는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1996년에 데뷔앨범 ‘Placebo’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플라시보는 약 1,0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적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정규 7집 ‘Loud Like Love’를 발표할 예정이다. 플라시보는 8월 2일부터 4일까지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열리는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에서 메인 헤드라이너로 공연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새 앨범도 선보일 예정이다. 플라시보의 세 멤버 브라이언 몰코, 스테판 올스달, 스티브 포레스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Q. 지난 2006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로 처음 내한공연을 한 이후 네 번째로 한국에서 공연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 다시 오는 소감이 어떤가?
플라시보: 한국에서의 경험은 언제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점은 이번 한국 공연이 이번 새 앨범으로는 첫 번째 라이브 무대라는 사실이다. 아마 우리도 공연 전에 많이 긴장할 것 같다. 투어의 첫 공연은 언제나 긴장되니까.
Q. 오는 9월에 정규 7집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 앨범에는 어떤 음악이 담기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플라시보: 모든 이야기가 한 가지 테마로 연결돼 있는 10개의 짧은 이야기의 컬렉션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면 좋겠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해부했다. 우린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의 화답이 되기를 원한다. 지난 앨범에는 기타 사운드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 미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앨범은 빛과 그림자를 오가며 더 다양한 색깔과 촘촘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 좀 다른 부분이 또 있는데, 우리가 작업에서 많은 부분에서 태블릿(tablet) 장비를 이용한 것이다. 정말 많은 태블릿이 사용됐는데, 새삼 기술의 발전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이패드는 이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기구가 됐다. 일렉트릭 뮤직의 역사에 대한 세미나에 간 적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발명이 40년 전에 발명된 신디사이저였다. 그리고 지금은 녹음실에서 피아노, 기타 등 전통적인 악기와 아이패드를 연결해서 음악 작업을 한다.
Q. 1994년에 결성됐으니 데뷔한지 20년이 되어간다. 이렇게 오랫동안 밴드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나?
플라시보: 나도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베스트셀러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1994년,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음악을 열심히 한 가장 큰 동기는 소위 ‘직업’이란 걸 갖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고 집세를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우리가 음악을 계속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걸 인식하게 되기까지 그 후로도 몇 년은 걸린 것 같다. 처음 2~3년은 우리의 행운을 즐겼던 것 같고 그 후엔 모든 게 일상적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이전같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밴드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볼 때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Q. 그동안의 밴드 생활 동안 가장 영광의 순간, 최악의 순간을 꼽는다면?
플라시보: 너무나 멋진 기억들이 많다. 그 중 가장 대단한 것은 데이빗 보위, 제프 벡, 로버트 스미스 등 우리의 영웅들과 한 무대에서 연주한 것이다. 그리고 나쁜 기억이라 한다면, 같이 연주하던 동료들이 그만두게 돼 새로운 멤버를 찾아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같이 연주하며 거의 한 식구같이 지내던 멤버가 떠나가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밴드가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Q. 모든 앨범이 자기 자식 같겠지만 대표작을 꼽는다면 어떤 앨범일까? 뽑은 이유는?
플라시보: 만약 나에게 가장 소중한 앨범이 이번 앨범이 아니라면 과연 플라시보가 계속 음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현재 가장 소중한 앨범은 새 앨범인 ‘Loud Like Love’이다. 만약 내가 지난 앨범들이 훨씬 맘에 든다면 우리 존재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이 들 것이다.
Q. 플라시보는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던 록을 하던, 어떤 장르를 시도하더라도 자신들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들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결이라면?
플라시보: 그런 균형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매 앨범을 만들 때마다 우리는 플라시보의 사운드를 더욱 멋지게 발전시키면서 우리의 정체성도 함께 성숙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새로운 것을 찾고 그 시도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 플라시보만의 사운드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팬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에겐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우린 특정한 공식 안에서 작업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아직도 우리의 첫 앨범과 유사한 음악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뮤지션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만족하고 우리에게 흥미로운 음악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우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Q. 공연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플라시보: 가장 멋진 공연은 관객들이 우리에게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오고, 우리도 관객들을 향해 몇 발자국 나아가 그 중간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때 관객과 우리가 시너지를 일으켜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함께 느낄 수 있는 유포리아(희열, Euphoria)가 형성되는 것이다. 밴드로서 그 순간은 가장 본능에 충실 한 시간이다. 그 어떤 계획도 없이 그 순간에 충실하고 자유를 최대한 만끽한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우리는 관객들의 반응에 기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객과 소통해서 얻는 에너지가 순수한 감정들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순수한 감정은 머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잊고 본능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 순간에야 말로 계속되는 투어에서 지친 마음이 모두 치유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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