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고’에 출연한 배우 서교
일단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17세라는 어린 나이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한국 배우 성동일과 호흡을 맞추는 것만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어 대사까지 익혀야 했다. 언어의 장벽 뒤엔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몸의 열 배도 넘는 고릴라 링링과 연기를 해야 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상의 고릴라라니. 앳된 얼굴의 서교에게 ‘미스터 고’는 다소 벅찬 미션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8개월간 같이 촬영했던 김용화 감독과 성동일은 서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연기뿐 아니라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서교는 어린 나이에, 그것도 타국에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즐겁게 촬영을 마쳤다. 자그마한 체구의 서교의 마음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궁금했다.Q.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다고 했다. 소감은.
서교 : 관객분들이 재밌는 부분에서 같이 웃어주시고 감동적일 때 같이 울어주셔서 좋았다.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한 작품인데, 호응이 좋아서 더 신났다.
Q. 처음 ‘미스터 고’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서교 :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독특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강아지가 사람과 함께 나오는 영화는 봤는데 고릴라가 나오고, 심지어 야구까지 하는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게다가 그 고릴라가 주인과 함께 감동을 만드는 영화였기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Q. 방금 말했듯 동물과의 교감이 중요했을 텐데,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있나.
서교 : 예전에 강아지 세 마리를 키웠던 적 있다.
Q. 그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서교 : 그렇지는 않다. 링링은 사실 강아지와 많이 다르다. 강아지는 주인이 보살펴 줘야 하는데, 링링은 오히려 주인을 보호해 준다.
Q. 심지어 링링과 레이팅은 같은 고릴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서교 : 링링의 경우엔 웨이웨이가 믿음을 갖고 있었다. 말도 잘 듣고, 사람과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레이팅은 처음부터 성격이 나쁜 고릴라라고 여겨 난폭하게 대했다. 사실 레이팅의 성격이 원래 나쁜 게 아니라, 살고 있던 지역의 환경과 서커스단이 많이 달라 적응을 못한 것뿐이다. 그런데 내가 계속 관심을 안 가져주니 레이팅의 성격이 점점 안 좋게 변했다.
Q. 웨이웨이를 연기할 때 특별히 신경썼던 부분이 있나.
서교 : 웨이웨이는 자기 또래의 일반 여자아이들과 많이 다르다. 부모도 없고, 할아버지의 큰 빚을 안고 있고, 서커스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링링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도 빨리 빚을 갚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린다. 링링이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도 돈을 벌기 위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조금 독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Q. 성동일은 한국 배우고 링링은 고릴라, 그것도 가상의 고릴라다. 정서적 교감이 힘들지 않았나.
서교 : 성동일 씨 곁에 통역이 항상 붙어 있어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영어로도 종종 얘기했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농담도 많이 해주셔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링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했다. 항상 ‘우리는 가족’이라는 느낌을 갖고 연기에 임했다.
Q. 영화를 보니 한국어 연기도 능숙하게 해내더라. 얼마나 연습한 건가.
서교 : 촬영 3개월 전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자음과 모음 등 기초부터 시작해서 단어를 배우고 그 뒤로는 문장을 연습했다.
Q. 기억에 남는 한국어 대사는.
서교 : (링링이 아플 때 성동일과의 대화 장면) “아저씨가 다 맞춘 거예요. 나요, 링링이 나한테 말할 때요, 아저씨처럼 나한테 뭐라고 그러는지 하나도 몰라요”
Q. 그 장면은 한국말이 어눌해서 더 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한국 배우들도 중국어 연기를 했는데, 서교가 보기에 그들의 중국어 연기는 어땠나.
서교 : 자연스럽게 중국어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특히 림 샤오강 역을 맡은 분(김희원)은 대사도 길었는데, 정말 잘 하신 것 같다.
Q. 이 영화는 18일 중국에서도 개봉한다. 자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가.
서교 : 사실 야구라는 운동이 중국에서는 인기 종목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스포츠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의 교감을 그린 영화다. 웨이웨이는 물론 돈밖에 모르는 인간 사냥꾼으로 그려지는 성충수도 링링과 막걸리를 마시며 교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최근 중국에서 개봉하는 3D 영화들은 대개 우주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우리 영화는 그런 점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Q. 김용화 감독의 전작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도 중국에서 성공을 거뒀다. ‘미스터 고’에 캐스팅됐을 때 중국 내 반응은 어땠나.
서교 : ‘미녀는 괴로워’는 많은 중국팬들이 사랑해 준 영화고, 내 친구들도 많이 봤다. ‘미스터 고’는 영화가 개봉해 봐야 알 것 같다. 기대가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Q. 사실 중국은 미국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만큼 발전한 나라인데, 영화에서는 못 사는 나라로 그려진다. 그런 모습 보면서 속상하지는 않았나.
서교 : 영화에 낙후된 지역으로 나오는 곳도 사실은 한국에서 촬영한 것이다. 물론 중국에 아직 교통이 불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달했고, 좋은 곳도 많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중국을 방문하셔서 30-40년 전 모습과는 다르다는 걸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Q. 중국에서 주성치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김용화 감독과 비교한다면.
서교 : 주성치는 작은 배역부터 시작해 주연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지금은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용화 감독 역시 감독이지만 연기력이 뛰어나다. 촬영장에서 연기 지도를 할 때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는 스타일이다.
영화 ‘미스터 고’에 출연한 배우 서교
Q. 촬영장의 ‘밥차’ 음식을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먹었다고 성동일이 입이 마르게 칭찬하더라.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나. 서교 : 순두부찌개, 비빔밥, 불고기, 냉면 좋아합니다.(한국말로)
Q. 한국 촬영장은 중국과 어떻게 다른가.
서교 : 꼭 한국과 중국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촬영장은 다 조금씩 다르다. 이번 영화는 야구장에서 촬영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혹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야구란 경기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나.
서교 : 사실 아직도 야구 룰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회가 된다면 배워 보고 싶다. 야구장에서 재밌었던 건 카트를 탄 채로 레이팅에게 쫓기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그 때 정말 신나게 카트를 탔다.
Q. 시구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교 : 촬영 때문에 가보기는 했지만 실제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을 간 건 또 처음이었다. 그렇게 많은 팬들이 선수를 위해 응원하는 장면을 보니 나도 많이 흥분되더라.
Q. 서교 앞에 흔히 붙는 수식어가 ‘아시아의 다코타 패닝’이다. 그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서교 : 누군가를 닮았다는 얘길 하는 건 그만큼 나를 좋아한다는 거니까 감사하다. 하지만 난 그보다 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자기만의 색깔이 어떤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서교 : 나는 여러 가지 역할에 다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작품을 통해 중국의 문화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또 평소 노래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노래도 하고 싶다.
Q. 미국에 가서 공부할거라고 들었는데, 어떤 공부를 하러 가는 건가.
서교 : 8월 말에 시카고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미국 현지 학생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텐데, 들어가 봐야 어떤 걸 배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Q. 유학을 계획한 계기는?
서교 : 중학교 때부터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내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다. 다른 문화를 많이 접해보고 싶다.
Q. 미국에 가면 연기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서교 : 대부분의 시간은 학업에 치중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연기에 몰입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중국에 올 것이기 때문에, 타이밍이 맞다면 작품활동도 할 생각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지식을 많이 쌓다 보면 성숙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게 또 앞으로의 연기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사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신세대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분간 작품을 못하면 잊혀질 수도 있겠지만, 그 후에 더 훌륭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다. 그래야 더 좋은 작품도 들어올 것 같다. 공백에 대한 걱정은 없다. 미래에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까.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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