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고’에 출연한 배우 성동일
“형, 야구 좋아해?” 김용화 감독이 배우 성동일을 캐스팅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스키점프에 관심있냐는 말로 ‘국가대표’에 합류시켰던 것처럼. 성동일은 야구장에도 한 번 가본 적 없었지만 흔쾌히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였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가 중국의 17세짜리 소녀뿐이라는 것도, 야구하는 고릴라라는 황당한 설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성동일은 “날 믿고 가자”는 김 감독의 한마디에 ‘미스터 고’의 성충수가 됐다.Q. (사진 촬영하느라)고생 많았다. 그래도 인터뷰가 낫지 않나.
성동일 :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포즈 취하는 것도 어색하고.
Q. 요즘 인터뷰로 한창 바쁘겠다.
성동일 : 4일 째 릴레이 인터뷰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링링도 없고, 서교도 없고. 외롭다.
Q.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했던 적이 있나.
성동일 : 원래 인터뷰 안하기로 유명하다. 사진도 안 찍고 포스터 촬영도 안 하고. 그런데 이번엔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관객들이 정보를 좀 얻어야 하는데, 내가 아니면 영화를 소개할 사람이 없으니까. 사실 짜증도 좀 난다. 배운 게 있어야 말도 오래 할 수 있는데….
Q. 영화를 본 가족들 반응은?
성동일 : 첫 시사회 다음날 스케줄 끝나고 집에 가는데 집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애들이 다 재미있게 잘 봤다고. 특히 (‘아빠!어디가?’에 함께 출연 중인)민국이는 펄펄 뛰면서 봤다더라.
Q. 출연한 영화를 가족들이 매번 보나?
성동일 : ‘국가대표’는 준이도 봤다. 꼭 내 영화가 아니라도 애들한테 많이 보여주려고 한다. 집사람이 매달 한 두 번씩 문화센터에 데려가 보여주기도 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내가 극장에 직접 데려가기도 하고.
Q. 시사회 후 인상적인 장면을 물으니 대답을 못 했다.
성동일 : 기술적인 부분들이 신경 쓰여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 성충수를 연기할 때 내 목소리 톤을 좀 높였는데 그게 극장에서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들리더라. 레이팅은 눈도 안 보일 정도로 시커멓고. 그날 새벽 한 시 반까지 비상회의를 했다. 초상집 분위기였지. 대한민국 극장의 매뉴얼 표준이 없다 보니 덱스터 스튜디오의 퀄리티를 못 따라간 거다. 그래서 VIP시사회 때는 극장의 영사기 램프를 새 것으로 다 갈고, 색 보정, 음악 믹싱도 다시 했다. 그제야 화면 밸런스가 맞더라. VIP 시사회 때, 희원이가 그랬다. “형, 이거 완전히 다른 영환데요?”
Q.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나. 그럼 다시 보니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던가.
성동일 : 난 기술적인 부분보다 드라마가 좋았다. 특히 링링의 연기. 타석을 바꿔 설 때 서교를 슬쩍 보는데 그 눈빛이, 와…. 나도 연기자지만 그 정도의 디테일을 표현할 자신은 없다. 이 영화의 압권은 짐승이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생각한다.
Q. 영화에서 부각되는 건 ‘사냥꾼 에이전트’ 성충수고, ‘인간 성충수’의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성동일 : 그런 내용까지 넣으면 연속극이 된다. 그보다는 링링과 웨이웨이에 초점을 맞췄다. 중요한 건 고릴라와 서교가 한국에 온 이유니까. 그들의 이야기에 성충수의 가족사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Q. 그래도 연기하기 전에 성충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생각하고 들어갔을 텐데, 성동일이 생각하는 성충수는 어떤 인물인가.
성동일 : 촬영 전에 감독과 설정한 건 그냥 성동일 자체였다. 가진 것 없이 혼자 힘으로 독을 품은 캐릭터. 얻고자 하는 게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는 캐릭터.
Q. 그렇게 출세해서 성충수는 돈도 많이 벌고 큰 집에 살게 됐다. 보통 그런 집에 사는 인물들은 양주나 와인을 마시는데, 성충수가 링링과 함께 마시는 술은 막걸리다. 성동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 아닌가.
성동일 : 듣고 보니 김용화 감독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성충수도 사람이다. 막걸리 장면이 중요했던 이유가 뭐냐면,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하고 독사 같은 사람도 결국 외로운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얘기 들어줄 사람을 찾다가 결국 고릴라한테 인생 얘기를 털어놓는다. 누구나 그가 하는 푸념, 하소연들을 내면에 갖고 있다.
Q.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통화하며 집 안을 돌아다니는 롱테이크 신을 꼽았다.
성동일 : 성충수가 얼마나 사업 수완이 뛰어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통화하면서 택배도 받고, 링링도 쳐다보고. 그만큼 힘들었다. 막걸리 신은 링링과의 타이밍만 맞추면 되는 거였는데, 전화 신은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동선도 정확히 지켜야 했다. 3D 영화는 카메라와 인물 사이가 조금만 벌어져도 포커스가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Q. 3D나 CG에 집중해서인지는 몰라도, 예전 ‘국가대표’ 등에서 보여줬던 김용화 감독 특유의 ‘눈물 유발 신’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성동일 : 김용화 감독은 역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관객들이 원하는 만큼 울려줬다는 거다. 성충수가 십억 짜리 수표를 웨이웨이에게 써줄 때, 내가 펑펑 울면서 연기하니까 김용화 감독이 말했다. “왜 울어? 내 영화 망하게 하려고 그래?” 성충수가 어떤 사람인데 애 앞에서 눈물을 흘리겠냐는 거지. 관객을 흥분시키는 건 링링이 다 했으니 감정을 누르고 성충수로만 가달라는 거다. 그만큼 김 감독 머릿속에 콘티가 완성돼 있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김 감독의 선택이 맞았다고 본다.
Q. 쇼케이스에서도 그렇고,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렇고 서교 칭찬을 많이 하더라. 연기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였다던데, 어떤 부분이 눈에 띄던가.
성동일 : 보통 어른들도 타국에 1년 가까이 있으면 힘들다. 아마 나를 중국에 데려다 놓으면 답답해 죽을 거다. 그런데 서교는 짜증내거나 음식 타박한 적이 없다. 촬영장에서도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상황을 즐겼다. 당연히 힘들 텐데 내색을 안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연기다. 마지막에 내가 웨이웨이의 서커스단을 찾아가는 장면이 실은 첫 촬영이었다. 그런데 그 때의 감정이 앞부분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더라. 전체 대본을 꿰고 첫 촬영을 했다는 건데, 그걸 극장에서 보고 ‘얘 정말 독사네’ 싶었다.
Q. 김용화 감독과는 세 번째 만남이다. 김용화 감독은 성동일의 사람 됨됨이를 강조하던데.
성동일 : 됨됨이를 자꾸 얘기하는 건, 내가 말을 잘 듣고, 개런티가 싸기 때문이다. 연기도 어느 정도 되고.(웃음) 서로 신뢰를 갖고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생각이 비슷하다. 성충수도 그렇고 ‘국가대표’의 방 코치도 그렇고, 감독 자신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를 멋 부리지 않고 실제처럼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는 성동일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반대도 있었단다. 성동일이 이 대작의 주연을 맡아 잘 할 수 있겠냐고. 그래도 나를 믿어줬다.
영화 ‘미스터 고’에 출연한 배우 성동일
Q. 그동안 ‘국가대표’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처럼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반응이 좋지 못했던 작품도 꽤 된다. 성동일 : 사실 아예 쫄딱 망한 건 거의 없는데….(웃음) 흥행이나 시청률은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연연하면 해적 얘기가 산적 얘기가 되어버릴 수 있다. 농담삼아 시청률이나 관객은 작품과 아무 상관없다는 말까지 한다. 물론 포인트는 잡아야겠지만.
Q. 작년 ‘응칠’ 열풍이 대단했다. 이일화와의 부부 연기도 화제가 됐었는데, 시즌 2격인 ‘응답하라 1994’에도 같이 캐스팅됐다.
성동일 : ‘응칠’ 출연자 중에 우리 부부만 유일하게 똑같이 출연한다. 사실 ‘응칠’ 전체 리딩할 때까지만 해도 성동일 캐릭터는 경상도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재미가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전라도 사투리로 하겠다고 말했다. 전라도 사람이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에서 코치 한다는 것도 재밌지 않나.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의 문화 차이도 얘기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번 ‘응답하라 1994’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쓸 것 같은데, 사실 난 상관없다. 그 쪽 분위기를 봐서 정해지지 않겠나. 충청도 사투리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미스터 고’ 시사회에도 제작진이 와서 보고 갔다. 내용 얘기는 안 하고 ‘잘 봤다’라고만 하더라.
Q. 요즘 주연과 조연을 넘나든다. 뭐가 더 편한가.
성동일 : 아무래도 촬영분이 적은 게 편하긴 하다. 분량이 많으면 부담스럽고, 작품을 많이 못한다. ‘미스터 고’ 제안을 받았을 때, 아직 나는 그 많은 제작비를 책임질 수 있는 연기력이 안되고 호흡도 짧기 때문에 림 샤오강(김희원)을 시켜달라고 한 적도 있다. 지금도 나는 주연 욕심 없다. 주변에서 분량이 많은 작품을 골라서 출연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즐거우면 되는 거 아닌가. 작품이 좋으면 세 신이 나오든 한 신이 나오든 상관없다.
Q. ‘미스터 고’가 개봉하고, ‘응답하라 1994’도 9월부터 방송될 예정이다. 한창 바쁠 때인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성동일 : 시나리오도 꽤 많이 들어왔는데, 역할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그 영화에 피해를 안 줘야 한다. 그러려면 스케줄이 맞아야 하고, 또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역할이어야겠지. 돈은 그냥 내가 받을 만큼만 받으면 된다. ‘미스터 고’도 러닝 개런티를 걸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럴 정도의 위치도 아니고. 개인적 생각인데, 사실 우리나라 최고의 탑배우가 성충수 역할을 맡았다면 고릴라 어깨 쪽에 털이 많이 뽑혔지 않을까. 링링한테 넉넉하게 투자할 수 있어서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난 뭐 기획사도 없고, 애초부터 돈을 따진 적이 없다. 특히 이번 작품은 김용화 감독이랑 함께 하니까, 그것 자체가 좋았다. 이렇게 인터뷰 하고 사진 찍고 하는 것도 다 김용화 감독 때문이다. 나마저 안 하면 김 감독 혼자 외롭지 않나. 김용화 감독 때문에라도, ‘미스터 고’는 정말 잘 되어야 한다.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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