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빠!어디가?’
날고 긴다는 유명 MC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던 ‘일밤’을 일으켜 세운 건 아이들. ‘아빠! 어디가?’(연출 김유곤 강궁)는 이후 ‘진짜 사나이’의 성공까지 견인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별히 개입하거나 상황을 만들지 않고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전했다는 게 성공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조연출들을 만나 본 결과, 그대로 전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자막 하나를 쓸 때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기 때문. 그들의 고충을 ‘아빠! 어디가?’ 출연자들의 목소리로 전한다.성동일(연기자, 준이 아빠)
성동일입니다. 저희 프로그램 조연출들이 총 여섯명인데요, 자기 몫을 나눠서 월요일부터 편집을 시작한대요. 편집, 회의, 편집, 다시 회의, 수정…. 일요일에 방송이 나가야 하니까 토요일 오전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렇게 한 주가 끝나면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시간이 생긴다는데, 보통 집에 가면 쓰러진대요. 그럴 수밖에 없죠.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니까. 그렇다면 쉴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뿐인 건데, 참. 예전에 ‘일밤’에서 일하는 분들은 하루도 못 쉬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그땐 정말 어떻게 버티셨을까요. 우리가 편집실에 찾아간 날도 막내 조연출은 밤을 새고 왔다는데…. 집은 정거장처럼 들르는 곳일 뿐이라네요. 잠은 대신 편집실 소파에서 자고요. 그래서인지 위장, 허리, 무릎, 목, 눈까지 안 아픈 곳이 없대요. 밤을 너무 많이 새다 보니까, 박카스도 달고 사신다는데 남 일같지 않네요. 저도 늦게까지 촬영하고 다음날 여행가면 틈이 날 때 마다 자거든요. 세상에 참 쉬운 일은 없어요 그죠? 편집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조연출분들은 현장에 자주 오시지도 못해요. 항상 우리 준이 예쁘게 나오도록 고생해 주시는데, 언제 한번 촬영장 오셔서 소주나 한 잔 해요.
김성주(방송인, 민국이 아빠)
민국이 아빠 김성주에요. 저희 방송을 만들어주시는 분들은 어떻게 일하실까 기대되는데요. 아무래도 애들이 예능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겠죠. 애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걸 알아듣는 것도 쉽지 않고, 돌발상황이 또 워낙 많다 보니 편집이 어렵다고 하네요. 다른 프로그램은 밥을 먹을 때 그 밥상만 보면 되는데, 애들은 밥 먹다가도 막 돌아다니니까요. 방송 초반에 우리 민국이가 계속 울 때도 편집하느라 수고 좀 하셨겠네요. 자막을 쓰실 땐 애들이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쓰신대요. 아직 다들 어리다 보니까,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좀 더 민감하겠죠. 후랑 지아가 서로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다른 예능에서처럼 러브라인으로 막 몰고 가면 혼난대요. 애들은 사실 그냥 서로 친해서 같이 노는 거지 어른들처럼 연애하는 건 아니니까요. 자막도 쉽게 고쳐 써야 해서, 처음엔 애를 먹었대요. ‘유레카’는 ‘심봤다’로, ‘장탄식’은 ‘긴 한숨’으로. 힘드시더라도, 그래야 또 민국이 또래의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종국(전 축구선수, 지아 아빠)
안녕하세요, 지아 아빠 송종국입니다. 그 장면 기억하세요? 지아가 밥을 안 먹으려고 할 때 제가 인상을 써서 지아가 울었던 날이요. 그때 ‘내가 내 딸을 울리다니…’라는 자막이 나갔는데, 어찌나 제 마음과 같던지. 그런데 여기 와서 들어보니 그 자막을 쓰신 분도 아이가 있으시대요. 너무 바빠서 집에 있는 아기를 잘 못 보시니까 그렇게라도 아기 생각을 하신다고 하네요. 아빠 마음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조연출분들은 연애할 시간도 없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가족들에게는 항상 죄인이 된 심정이래요. 얼굴 볼 시간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를 둔 부모님들 중에서는 우리 프로그램을 좀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대요. 자기 아들이랑 놀아줄 시간도 없는데, 하루종일 저희들 촬영한 걸 보면서 편집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아빠! 어디가?’도 미혼여성이나 노인분들은 많이 보시는데,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부담스러워하신대요. 저희처럼 같이 놀아주고 여행갈 상황이 안되는 분들 입장에서는 보고 싶지가 않겠죠. 저같아도 그러겠어요. 애들이 ‘아빠는 왜 윤민수 아저씨처럼 안 놀아줘? 송종국 아저씨처럼 왜 맨날 안 안아줘?’라고 물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그만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거겠죠. 시청자들도 그런데 프로그램에 일주일 내내 매달리는 조연출분들은 오죽할까요?
윤민수(가수, 후 아빠)
바이브 리더이자 후 아빠 윤민수입니다. 요즘 자막이 많이 쓰이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아빠!어디가?’도 딱 그래요. 3분 분량의 자막을 쓰는 데 최소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까요. 제가 출연했던 ‘나는 가수다’ 조연출 하실 땐 한시간 짜리 자막 쓰는 것도 세 시간밖에 안 걸렸다는데… 하지만 자막이 많은 만큼 조연출 한명 한명이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좋다고 해요. 예전엔 자기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조연출들에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예전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다시 볼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하시네요. 제가 예전에 냈던 앨범들 들어보면서 그 때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또 항상 재밌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 느낀대요. 다들 장난기도 많고, 놀면서 일하는 느낌을 받는다는데. 그렇게 보면 조연출 분들이랑, ‘아빠!어디가?’에 출연하는 우리 출연자들이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도 방송에 출연하는 거지만, 사실 애들이랑 추억 쌓는 거잖아요. 요즘 우리처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후가 나중에 컸을 때 저랑 같이 방송을 보면 참 재밌을 것 같아요. 항상 예쁜 추억을 만들어 주시는 조연출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종혁(연기자, 준수 아빠)
준수 아빠 이종혁입니다. 요즘 저희 보고 ‘일밤’을 살려냈다, MBC의 구세주다, 라고 하시는데 정작 그 말 들어야 할 분들은 조연출 아닐까요? ‘일밤’이 잘 안 될 때나 잘 될 때나 항상 일밤을 해오셨던 분들이니까요. 2011년부터 ‘일밤’ 조연출로 일해 온 한 PD님은, ‘일밤’ 시청률이 많이 안 나올 땐, “나중에 ‘일밤’ 잘되면 눈물이 날 거야”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만큼 힘드셨다는 거겠죠. 물론 시청률이 잘 나온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대요. 고생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시청자들이랑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확 느껴져서, 그게 좋대요. 제 생각에도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없으면, 자막 하나를 쓰고 화면 편집을 할 때 신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열심히 찍은 드라마 반응이 안 좋으면 아무래도 좀 신이 덜 나거든요. 하지만 요즘처럼 인기가 많아지면, 좀 더 귀여운 표정이 없을까, 좀 더 재밌는 자막을 넣을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된대요. 제가 ‘신사의 품격’ 찍을 때 느꼈던 감정이랑 비슷하겠죠? 아무튼 매일 고생하시는 우리 조연출 분들, 당신들이야말로 ‘일밤’ 부활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준수 예쁜 모습 많이 담아 주시고, 재밌는 자막 많이 써 주세요.
글,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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