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스쿨의 멤버 이영에게 잉베이 말름스틴의 연주곡 ‘Far Beyond The Sun’을 배워보기로 했다. 이영의 등장은 지난 2010년 12월 31일에 방송된 MBC ‘가요대제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프터스쿨의 ‘Bang!’ 공연 중 난데없이 기타를 든 소녀가 나와 화려한 솔로연주를 펼쳐보였다. 이제껏 국내 가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꽤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후 이영이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의 곡을 연주한 영상이 돌았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은 속주기타의 거장으로 화려한 초절기교 연주의 대명사다. ‘걸그룹의 멤버가 잉베이 말름스틴의 곡을 연주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를 끌었고, 이영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이후 이영이 드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상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천재소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과연 그녀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텐아시아에서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기자를 투입해 이영에게 직접 기타를 배워봤다.
이영에게 잉베이 말름스틴 ‘Far Beyond The Sun’ 배우기
지난 10일 오후 1시경 이영이 숙소에 있던 악기를 가지고 텐아시아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악기와 앰프를 연결하더니 톤을 조절해 드라이브(소리가 일그러져 강한 톤을 냄)를 건다. 그리고 능숙한 손길로 튜닝을 한다.
기자: 이영 씨에게 기타를 배워보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Far Beyond The Sun’을 연주할 수 있나요?
이영: 이 곡이 굉장히 빠르잖아요. (곡의 도입부를 빠르게 연주해 보이더니) 이렇게 처음부터 무조건 빨리 치려고 하면 안 돼요. 손가락이 꼬여요. 저는 프레이즈(작은악절) 하나하나를 느리게 연습했어요. 처음에는 메트로놈을 60(1분에 박자를 60번 세는 속도, 숫자가 올라가면 곡이 빨라짐)으로 놓고 하셔야 되요. (메트로놈 60 속도로 곡을 연주한 후) 이렇게 하다가 능숙해지면 속도를 2씩 올려요. 62, 64, 66…. 이런 식으로요. 이게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해요. 또 처음 도입부의 ‘자자자잔!’ 하는 부분에서 비브라토(소리를 떨리게 하는 기교, 악력이 필요함)가 들어가거든요. 이런 것도 전부 느린 속도로 연습을 했어요.
기자: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영이 알려준 대로 연주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메트로놈 60으로 해도 어렵네요.
‘Far Beyond The Sun’은 난이도가 고급에 속하는 매우 어려운 곡이다. 웬만큼 기타를 연주하는 이들도 손을 내밀기 힘들다. 기자가 이 곡을 즉석에서 배운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 이영은 4,5년에 걸쳐 이 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하루에 14시간 이상 연습을 한 적도 있다. 다섯 살 때 처음 기타를 시작했다.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가 통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고, 아버지는 딸의 작은 몸집에 맞는 수제기타를 주문 제작해 선물했다. 아버지에게 기본적인 계이름과 코드를 배운 이영은 클래식기타 학원에 다녔다.
기자: 왜 이 곡을 연습했어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나요?
이영: 기타리스트가 꿈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곡이 너무 신기해서 연주해보고 싶었어요. 유튜브로 클래식기타 영상을 보는데 관련 동영상으로 잉베이 말름스틴이 관현악단과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영상이 있었어요. 열한살 때였는데 그 영상을 보고 넋을 잃었어요. 그때는 겁이 없어서 그냥 하면 될 줄 알고 연습했어요. 학원 선생님에게 ‘Far Beyond The Sun’을 연습하겠다고 하니 ‘네가 이 곡을 연습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리시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악보를 구해다가 몰래 연습했어요.
다섯 살 때부터 기타와 피아노를 배운 이영은 열 살 때부터 드럼, 첼로, 플루트를 시작했다. 아홉 살 때부터는 발레, 재즈댄스, 팝핀 학원까지 다녔다. 텔레비전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죄다 배우고 싶었단다. 이영의 아버지는 방과 후 딸을 차에 태우고 악기 학원부터 댄스 학원까지 열심히 돌았다. 애프터스쿨로 활동하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바빴다. 하지만 전부 너무나 재밌었다고. 주변에서는 그런 이영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열한살 때 피아노 대회에 나가 모차르트 곡을 연주해 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가요제, 악기 콩쿠르, 댄스대회 등에 나가 약 서른 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악기로 대학을 가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이영은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12학번. 입학시험은 베이스로 쳤다.
기자: 여러 악기를 다뤘는데 베이스로 대학교에 갔네요?
이영: 중학교 때부터 실용음악 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학원생들끼리 밴드를 만들어줬어요. 노래도 부르고, 드럼도 치고, 기타도 치고, 베이스도 치고, 합주 날에 안 나오는 애들 자리에 들어가서 연주하곤 했어요. 나중에는 선생님들과 같이 밴드를 했는데 제가 실력이 많이 부족했는데도 예뻐해 주셨어요. 베이스는 마커스 밀러를 보고 좋아하게 됐어요. ‘Run For Cover’, ‘Rio Funk’ 등을 열심히 연습했어요.
기자: TV 프로그램 ‘오천만의 대질문’에서 20분 넘게 베이스를 연주해서 진행자 신동엽 씨를 당황시키는 것을 봤어요.
이영: 방송이 처음이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준비하라고 해서 가장 자신 있는 곡을 연주했어요. 평소 연습하던 대로 했는데 길게 했다고 혼났어요. 그 곡이 마커스 밀러의 ‘Run For Cover’예요.
기자: 아하! 그렇군요. 저 ‘Rio Funk’ 앞부분 조금 연주할 줄 아는데 같이 연주해볼까요?
악기를 배우던 실용음악과 학생이 어떻게 댄스 걸그룹의 멤버가 됐을까? 이영의 아버지는 딸의 콩쿠르, 댄스 대회 모습을 영상으로 직접 촬영해 남겼다. 이영의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 영상을 기획사로 보냈고 플레디스 오디션 기회가 찾아왔다. 플레디스에 들어간 이후에도 악기를 계속 연습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연습생 평가회에서 춤도 추고 악기도 연주했다. 다른 연습생 친구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은 숙소에 나름의 작업실을 차려놓고 악기 연습과 미디로 곡을 쓰는 연습을 한다.
기자: 숙소에서 기타 치면 혹시 유이 언니가 시끄럽다고 눈치 주지 않나요?
이영: 볼륨을 작게 하고 연습하니까 괜찮아요. 앰프에 연결하지 않고 텔레비전 보면서 연습하기도 해요. 언니들이 ‘그게 그렇게 재밌니?’라고 물어보시곤 해요.
이영은 애프터스쿨의 일본 투어에서 솔로로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전설적인 스래쉬 메탈 밴드 메가데스 출신인 마티 프라이드맨과 만나 잡지 인터뷰를 하고 기타 연주도 함께 했다. “꿈만 같았어요. 제 기타 스승님이 메가데스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마티 프라이드맨이 다른 연주자와 기타 배틀을 하는 영상을 보여주신 적이 있는데 너무 멋졌어요. 그 분과 직접 만나다니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를 묻자 잉베이 말름스틴, 지미 헨드릭스, 프린스 등을 이야기했다. 마이클 잭슨의 세션 연주자로 유명한 여성 기타리스트 제니퍼 배튼도 존경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주로 공부하는 일본의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도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애프터스쿨 곡을 만들어 보는 중이다. “사실 이번 앨범에 제가 만든 곡이 한 곡 수록될 뻔 했는데 아쉽게 빠졌어요. 다음 앨범에는 꼭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이영은 어엿한 인기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이지만, 연주자로서는 아직 프로가 아닌 학생 수준에 가깝다. 이영 자신도 본인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잘 하고 싶어서 애프터스쿨 연습과 함께 악기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영: 제 연주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잉베이 말름스틴의 곡은 열심히 연습했지만 아직도 너무 모자란 수준이에요. 그 영상은 제가 봐도 부끄러워요. 창피해요!
기자: 그래도 제가 평소에 만나는 록 뮤지션들은 이영 씨를 매우 궁금해 한답니다. 마이클 잭슨이 어렸을 때 했던 잭슨 파이브를 보면 춤을 추면서 기타를 쳐요. 이영 씨는 그것도 가능하겠어요.
이영: 하하! 그 공연 영상 저도 봤어요.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 정말 좋아하거든요. 마이클 잭슨, 프린스 같은 분들처럼 작사 작곡 춤 연주 노래를 전부 다 잘했으면 좋겠어요.
기자: 악기로 합주하는 거랑 애프터스쿨로 연습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영: 매력이 아예 다르죠. 그런데 둘 다 좋아요. 밴드는 악기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고, 애프터스쿨은 무대를 완성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전 둘 다 잘하고 싶어요. 가끔 고향 춘천에 가면 친구들 연습실에 놀러가 합주를 하고 놀곤 해요. 언젠가는 밴드도 꼭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금으로서는 제가 애프터스쿨 노래를 만들어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기자: 기타와 폴 댄스 중에 뭐가 더 어렵나요?
이영: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둘 다 어려워요. 꼭 하나만 꼽아야 되나요? 음…(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기타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편집.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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