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대중에게 각인된 가수나 배우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성공한 사례는 극소수다.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각인된 대중은 그들의 농염한 성인연기를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1966년 걸그룹 코리언 키튼즈의 멤버로 활동하다 귀국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윤복희는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반세기 전에 붙여진 ‘미니스커트’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여자의 변신은 무죄라 했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담 여성뮤지션의 변신은? ‘원조 홍대여신’ 한희정이 솔로 2집 ‘날마다 타인’을 통해 외모의 굴레에 갇혀있던 이미지를 깨는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다. 고운 음색에 배어있는 슬픈 정서라는 본래의 음악적 결은 동일하지만 웅장한 50인조 오케스트라와 밴드 사운드, 디스코 리듬에다 목소리로만 승부하는 아카펠라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운드로 스펙트럼의 확장을 시도했다. 직접 연출 기획한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어설픈 그녀의 발레동작은 엉뚱 유쾌한 한희정의 새로운 발견이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음악적 변신에 음악 팬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호불호가 양극으로 나뉘고 있다. 반면 언론과 평단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사실 슬픔이 배어있는 맑은 음색과 예쁜 외모로 사랑 받아온 한희정에게 변신은 익숙한 키워드다. 그녀는 데뷔 이래 지금까지 변신과 변화를 거듭해 온 뮤지션이다. 모든 변신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치열한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혼성밴드 더더의 여성보컬로 데뷔한 한희정은 혼성 밴드 푸른 새벽을 통해 인디뮤지션 활동을 병행하는 첫 변신을 시도했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평범한 단상들을 우울함으로 가득 찬 몽환적인 사운드와 너무 맑아 가슴 시렸던 음색에 담아 전달했던 노래의 여운은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2008년 첫 솔로 앨범 ‘너의 다큐멘트’를 통해 한희정은 섬세한 여성적인 감성을 담은 자작곡들과 동안 외모로 ‘원조 홍대 여신’으로 추앙받으며 홍대 인디 신의 아이콘으로 또다시 변신했었다. 무수한 여신들을 양산시킨 홍대여신이란 수식어는 인디 음악의 대중화에 촉매제로 작용한 긍정적 역할과 함께 외모지상주의에 기댄 마케팅 전략이라는 부작용도 불러왔다. 솔로 독립이후 음악보다는 외모에 포커싱된 이미지는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안겨주었지만 자신의 창작 음악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박탈당하는 억울함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푸른새벽 시절 그녀의 노래에 열광했던 팬들은 솔로 독립이후의 음악을 외면했고 지금도 그 시절 음악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숨기지 않는다.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 홍대 인근 상수동에서 블랙 의상을 입고 나타난 그녀를 만났다. 인터뷰는 맨발로 노래한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로 시작되었다. “의도했던 콘셉트는 아니고 1시간 공연을 하다 구두가 불편해 벗었어요. 관객들이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저러나 기대하는 분위기더군요. 사실 방송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흙’ 간주부분에서 발레 춤을 췄을 때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재미있었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 웃음을 안겨준 엉뚱한 발레 동작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체력 증진을 위해 1년 째 발레를 연습하고 있어요.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저는 우습고 즐거운데 주변에선 말리더군요.(웃음)”
인기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주류가수로 데뷔해 자신의 음악적 표현에 무게감을 두는 인디뮤지션으로의 변신이 그랬듯 ‘원조 홍대 여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반전매력을 안겨준 이번 변신은 음악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날마다 타인’이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그녀의 노래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타이틀은 3년 전에 구상했어요. 이전 앨범에서도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굉장히 폐쇄적이었던 사람이라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굉장히 방황했을 거예요. 노래하는 가수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목표는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입니다. 그래서 홍대여신이란 수식어가 붙은 보컬이기보단, 그냥 뮤지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도 가사에 노래를 붙이고,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사실 한희정에 부여된 ‘원조 홍대여신’이란 수식어는 대중적 인지도를 안겨준 보약인 동시에 음악적 평가를 박탈당하는 독이기도 했다. 한희정, 요조, 타루가 포함된 ‘4대 원조 홍대여신’이란 수식어는 파스텔 레이블에서 기획한 작품은 아니다. 인터뷰에 배석한 파스텔 홍보 스탭 강설희씨는 “홍대여신이란 말은 타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언론에서 우후죽순처럼 회자되었을 때 저희 회사 소속 가수 3명이 포함되어 있어 파스텔이 여신들이 사는 신전이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홍대 여신’이란 용어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능한 쓰는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었죠. 이번 앨범은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있어 처음으로 전면적으로 배치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홍대여신의 범주에 끼고 싶지는 않았지만 황송한 마음이죠.(웃음) ‘여신’이라는 불러주는데 좋아하지 않을 여성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런 타이틀을 내걸어야 관심을 받게 된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홍대여신이란 이미지는 이제 재미없어요.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한희정)
솔로 2집은 부담스런 홍대여신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뮤지션 한희정의 이유 있는 외침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얼굴과 닮은 가면들을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장식된 앨범 재킷 그림은 꽤나 시사적이다. “무나씨는 1집이 나왔을 때부터 친구로 알고 지내는 동양화가분이세요. 2집 앨범 풍의 그림을 시리즈로 그려왔는데 제가 딱 원하던 그림이라 커버 그림을 부탁했는데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EP 앨범들은 사진으로 대처했었지요. 2집 그림은 데모 음악을 직접 듣고 그려준 5점 그림 중에서 2점을 골랐어요. 속지에 있는 검은색 그림도 근사하지만 너무 강해 여백이 있는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타이틀 글씨체도 무나씨가 직접 쓴 글씨입니다.”
한희정은 개인정보 공개에 인색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그녀의 나이나 학력 등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학벌이 좋은 가수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학벌이 뮤지션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는 자체를 별로라 생각합니다. 나이나 학교 같은 음악과 무관한 불필요한 것들에 대중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한희정은 외가 쪽에 클래식 악기를 전공한 사촌들이 많은 집안의 1남 2녀 중 첫째로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대학생 친척 언니가 유학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비틀즈, 롤링스톤즈 같은 록 밴드 LP들을 주었지만 너무 어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로 듣기만 했다. 취학 전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그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유학을 염두에 두고 바이올린 개인레슨 받았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전공한 언니 집에 자주 놀러가 혼자 피아노 치고 놀았어요. 그런데 정식으로 배운 곡보다 즉흥적으로 치는 게 더 재미있어 클래식 피아노 연주가로는 재능은 없는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 음악을 잠시 놨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1999년 대학생이 되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선택한 음악은 밴드음악. 기타를 다룰 줄 몰랐기에 건반이 있는 밴드를 찾았지만 찾지 못해 노래라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수로 유명해질 생각도, 연예인이 되는 것도 관심조차 없었던 그녀는 언젠가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 자작곡이 몇 개 있는 밴드에 들어가 빨리 음악을 습득해야했기에 보컬이 공석인 밴드를 찾아봤다. 당시는 인터넷이 활성화 되려했을 때. ‘뮤지션스 웹보드’라는 사이트에서 멤버구인 글을 보고 오디션을 보러갔다. 오디션을 보러갔을 때 노래를 공개적으로 불러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오디션을 통과했던 것은 예쁜 미모 덕이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밴드이름이 더더인줄도 몰랐어요. 평소 노래는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땐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가창력보다는 노래의 느낌을 케치하는 잠재력을 보고 뽑아준 것 같아요.”(part2에서 계속)
한희정 프로필글. 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2001년 더더 3집 “The Man In The Street” 데뷔, 혼성 2인조 밴드 푸른새벽 결성 (한희정, 정상훈)
2003년 영화 싱글즈 OST 참여
2004년 더더 4집 “The The Band” 제 1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수상
2007년 푸른새벽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O.S.T 참여
2008년 SBS 드라마 ‘식객’ OST ‘비밀’ 참여, 파스텔뮤직 전속 후 솔로 독립
2009년 EBS 라디오 한희정의 아름다운 밤 우리들의 라디오 진행
2010년 영화 춤추는 동물원 출연 O.S.T 참여
2013년 솔로 2집 싸이뮤직 이주의 앨범 선정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파스텔뮤직, 광주MBC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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