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준은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10여 편의 작품 중 분명 자신과 맞지 않은 옷을 입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잘하는 것만 하려다 보니 소위 ‘안전빵’으로만 선택하더라. 리스크를 줄이려고만 하고. 그게 치명적인 독인 것 같다”며 “더 시도해보고, 부족한 것을 더 보려고 하다”고 말했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고, 배우고,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준은 훌쩍 성장했다. 어떤 면에선 연기를 시작한 지 2년 여 된 배우가 가질 수 없는 여유까지 묻어났다. 그리고 ‘명왕성’은 배우로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온 성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가는 그의 모습이 인터뷰 내내 그려졌다.
Q. 포털사이트에서 기사 검색 많이 하지 않나. ‘성준’이란 이름으로 검색도 많이 해 봤을 텐데.
성준 : 하하하.
Q. 웃는 것을 보니 질문하는 의도를 아는 것 같다. 많이 분발해야겠더라.
성준 : 너무 잘 나가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하하. 또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에는 성준 코치님도 계시고. 같은 이름의 잘 나가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포털사이트에서 성준을 검색하면, ‘아빠! 어디가?’에서 활약 중인 성동일의 아들 성준이 메인 화면을 장식한다.)
Q. 웃음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해 보자. ‘명왕성’은 표면적으로 입시를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성준의 입시는 어땠는지 듣고 싶다.
성준 :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했다. 그래도 곧잘 했던 것 같다. 미술을 준비했는데 성적은 나름 잘 나온 반면 실기를 못해서. 어찌됐던 한국에서 입시라는 건 전쟁이고, 나 역시 똑같이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영화에서 자극적으로 담아낸 게 없잖아 있지만.
Q. 영어를 잘하더라.
성준 : 그냥 알아듣는 정도다. 단어 선택이나 이런 게 그다지 탁월하지 않다. 그리고 유학을 다녀왔을 당시 공부를 잘했던 학생도 아니었다. 또 극 중 유진 테일러는 재미교포고, 나는 영국 쪽이다. 하하.
Q. 극 중 유진 테일러는 잘 나가는 집안으로 묘사된다. 이런 질문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 영국 유학을 할 정도면 성준 집안도 소위 ‘잘 나가는’, 그런 거 아니냐.
성준 : 그냥 아버지가 잘 하셨죠. 그렇다고 엄청난 집안은 아니고, 유복하게 자란 정도. 그런 면에선 극 중 역할과 비슷하다. 대신 압박이나 억압 받고 살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거 하라면서 항상 지지해 주셨던 것 같다.
성준 : 사실은 쉽게 됐다. 남들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치열하게 오디션 전쟁을 보진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모델 활동을 했던 게 컸다.
Q. 뒤늦게 공부를 했다는 게 그래서인가.
성준 : 그건 별개다. 모델 할 때 시간적으로 공부에 장애를 받진 않았다. 다만 학교를 못 나가서. 하하
Q. 그렇다면 모델 일은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성준 : 단순히 옷, 패션을 좋아했다. 또 어떤 디자이너의 쇼를 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엔 엄청난 자극이었다.
Q. 모델로 한창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연기자를 준비하는, 또는 꿈꾸는 사람 역시 굉장히 많다. 또 연기를 시작했다고 해도 이름 알리는 게 엄청난 일이다. 그런 것에 비해 성준은 조금은 쉽게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이것도 ‘배우 입시’라 할 수 있다.
성준 : 당시 모델로 한창 활동 할 때 파리 콜렉션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안 받았다. 고민을 엄청 많이 했다. 모델로도 정점을 찍고 싶기도 했다. 모델이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서 한번쯤 정상에 서보고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는 다른 분야고,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본이 정말 재밌었다. 지금 봐도 재밌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못하겠지만 어찌됐던 파리 콜렉션은 매년 있는 거다. 그런 기회비용을 따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드라마를 하게 됐다.
Q. 최근 개봉된 ‘무서운 이야기’에서 이수혁과 호흡을 맞추지 않았나. 수혁 씨도 모델 출신이고, 은근 목소리 톤도 비슷하다. 또 서로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됐던 외부에선 두 사람에 대해 비교를 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경쟁의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준 : 수혁 형하곤 굉장히 많이 친하다. 사실 이런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친하고, 가족 같은 사이다. 극 중 유진은 목적의식이 분명하다. 하지만 수혁 형이나 영광 형을 만나면 뭘 하기보다 그냥 어울리는 거다. 잘해봐, 잘하자 뭐 그런 분위기다.
Q. 아까 얼핏 말했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어렸을 때 영국에 다녀왔을 정도고. 그런데 연예인을 한다. 집에서 반대가 많았을 것 같은데.
성준 :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는 편이다. 그래도 (연예인에 대한) 선입견도 있으시고, 좋아하진 않는다. 힘든 직업이란 것을 알고 지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드는 건 아니니까. 요즘은 믿어주는 것 같다.
성준 : 이번엔 한 가지만 중점을 뒀다. 프리 단계에서 불안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불안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갔는데 그게 잘 먹혔던 것 같다. 불안함이 많아서 폭력으로까지 포현되는. 이를 위해 잔인한 영상이나 심오하고 자극적인 노래를 항상 끼고 살았다. 그런 것들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좋게 봐주면 정말 감사하다.
Q. 상당한 욕심을 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성준 :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너무 어려웠다.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았고. 처음에는 ‘뭐하는 아이지’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와 맞지도 않고,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유진 테일러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있어야 다른 것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더라.
Q. 처음 봤을 때 어렵고, 이해도 안 갔는데 그럼 왜 선택한 건가.
성준 : 사실 감독님의 커리어가 맘에 들었다. 뭔가 대단한 분이란 생각도 들었고, 교편을 잡다 영화감독을 한다는 것도 멋있게 보이더라. 감독님을 좋아했다. 그리고 전작 ‘레인보우’를 봤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었다.
Q. 영화 속 유진은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불사한다. 그렇다면 성준은 앞서 말한 숱한 입시 과정에서 ‘이것까지는 해 봤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게 있나.
성준 : 방법이 있기 보다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매달리는 편이다. ‘명왕성’ 속 유진은 천재라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난 그렇지 않다. 하하.
Q. 맞다. 영화 속 유진은 뭐든 다 잘 할 것 같다. 완벽한 남자 아니냐. 그렇다면 유진을 연기한 성준은 어떤가.
성준 : 다 부족하죠. 하하. 연기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두가 갖고 있는 고민, 나 역시도 갖고 있는 것 같다.
Q. 그 부족함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하나.
성준 : 부족한 것을 더 보려고 한다. 잘하는 것만 하려다 보니 ‘리스크’를 줄이려고만 하더라. 소위 ‘안전빵’만 선택하고. 그게 오히려 치명적인 독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시도해 보려고 한다.
Q. 성준은 이번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나. 그리고 어린 학생들은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나.
성준 : 영화를 볼 때 답답하고 먹먹하더라. 하지만 영화 속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 현실은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답답함을 느꼈으면 그걸 자기만의 방법들로 풀어나갈 수 있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Q. 학교 그리고 입시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보인다. 배우들도 그런 것을 느꼈나.
성준 : 그런 시점으로 보면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전체를 보기 보다는 유진의 눈으로 봐야했고, 유진으로서 살아야 했다. 전체를 보는 것도 맞긴 한데 그건 감독님이 하시는 일이라 생각했다.
Q.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됐지만 애초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성준 : 잔인한 장면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나왔지 싶더라. 그만큼 영화의 분위기가 음산하게 다가왔다고 본다. 처음에는 그만큼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자극을 줬다는 생각에 좋아했다. 사람들의 잔인한 마음이 잘 표현된 거니까. 그런데 흥행 면에서는 그게 안 좋은 거더라. 어찌됐던 나중에 15세가 나와 다행이다. 학생들이 보고 느낄 게 많다. ‘현실이 이러니까 수긍해’라고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까지 하면 안되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성준 : 되도록 여유를 가지려고 하고, 급하게 가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급하게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마음만은 크게 보고, 멀리 보려고 한다. 또 돌아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고 싶은 거라면 해보자라는 주의다. 상황적으로 잘 안 될 때가 많죠. 하하. 마음만은 그렇게 하겠다는 거다.
Q. 이는 곧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성준의 목표가 듣고 싶다.
성준 :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목표는 잘해서, 계속 하는 것 같다. 잘해서 잘하는 걸로 끝났으면 좋겠다. 매번 좋을 순 없겠지만 마음가짐이나 태도만큼은 좋았으면 좋겠다.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내 자신이 변해간다는 게 느껴진다. 상황에 치이고,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군대, 결혼 등 현실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럴 때마다 많이 다스리려고 한다.
Q.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다. 그래서 여성 팬이 많은가 보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꽤 많다고 들었다.
성준 : 하하. 최근 뉴욕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더라. 드라마를 봤다면서 말이다. 미국 사람이 그러니까 충격이더라. 침 뱉고 다니다가 정신 차려야지란 생각도 들고. 술 마시고 다니는데 누구 아니냐고 하면 아니라고 하고 도망가고. 하하하.
Q. 일본 팬미팅에선 노래도 불렀는데 가수로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
성준 : 노래하는 것도 재밌긴 한데 가수는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고, 폭넓게 듣는 편이긴 한데 ‘난 즐기자’ 이런 마음이다. 또 모른다. 확 꽂혀서 ‘이건 해야 돼’라고 마음먹고 할 수도 있다.
Q. 악성 댓글이나 루머 등에 잘 대처할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다.
성준 : 그럴 땐 술을 마시죠. 하하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성준 :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시도를 많이 하려고 한다. 내공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숙한 얼굴에 비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노숙한 얼굴? 망언 아닌가) 삭긴 삭았죠. 하하.
글,편집.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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