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도시’의 이재윤

어디에서 도드라질지 모르는 예측불가함이 예술가들의 주요한 덕목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재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배우다. 듬직한 풍채와 각이 분명한 마스크는 액션영화 속 근사한 히어로와 같은 느낌을 전하는데, 그것은 자유분방함 보다는 신뢰감에 더 근접해있으니 말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비주얼은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2010년, 2011년의 그를 일일드라마(MBC ‘폭풍의 연인’)나 주말드라마(SBS ‘내 사랑 내 곁에’) 속 주인공 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언제나 올바른 가치관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청년의 표상 같은 역할 말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 순간은 지극히 안정적인 캐릭터 선정을 벗어나 SBS ‘야왕’에서 극악무도한 일까지도 일삼는 삼류인생 주양헌을 연기한 때였다.

실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관찰해보면, 이재윤에게서 의외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흑역사까지는 아닌 고동색 역사라고 자평하는 래퍼(그룹 부활의 객원래퍼로 활동한 바 있다)로 살았던 히스토리도 있으며, 저조한 시청률 속에 비록 폐지되고 말았지만 MBC ‘일밤’의 ‘승부의 신’으로 예능 도전에 과감히 몸을 던진 이력도 있다.

최근에는 JTBC ‘무정도시’의 멋지고 단단한 남자 지형민으로 또 다시 무한한 신뢰감을 연기했지만, 현재 촬영 중인 영화 ‘관능의 법칙’으로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 중이라는 이재윤을 만나 아직 완전히 깨어지지 않은 이 히어로 같은 남자의 의외의 순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Q. ‘무정도시’의 지형민은 남자들이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다. 사실 누아르라는 장르 자체가 남자배우로서는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을 테고.
이재윤 :
그렇지. ‘야왕’ 끝난 직후,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만의 경찰을 그려나가고 싶었고, 실제로 경찰을 만나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해 직접 물어보기도 하면서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Q. 하지만 ‘신세계’라는 영화도 있었고, 아직 30대 초반이기에 부담이 가는 역할이기도 했을 것이다. 누아르는 풍부한 깊이감을 뿜어내야하는 장르 아닌가.
이재윤 :
당연히, 최민식 선배님이나 이정재 선배님과 같은 내공이 느껴지는 연기는 내가 아직 따라갈 수 없는 범주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분들에 비해 나는 아직 얄팍한 배우이니까. 하지만 최대한 상황에 깊숙이 몰입해 진실 되게 다가가려고 했다.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야 하는 현장 속에서 때로는 집중력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늘 몰입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무간도’의 진관위도 있었고, 꼭 연륜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배우 이재윤

Q. ‘무정도시’는 이재윤도 있었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정경호도 있었고 여주인공도 아직 20대 남규리였다. 현장에서는 분명히 젊은 누아르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에서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분위기도 감지됐을 것 같다.
이재윤 :
그렇다. 우리끼리 젊은 우리가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우들끼리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기도 했고.

Q. 지형민 캐릭터는 ‘무정도시’의 모든 인물이 부패하거나 일종의 비리와 닮은 비밀들을 숨기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유일하게 신념을 지켜나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재윤 :
형민 역을 연기하기 전에 참고한 캐릭터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이병헌 선배님의 캐릭터였다. 동종 장르는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간다는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통해 보여줬던 이병헌 선배님의 변화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Q. 지형민 캐릭터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당신이 신뢰감이 느껴지는 마스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이재윤 :
신뢰감이 느껴지는 건 실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고, 신뢰가는 마스크 이상으로 신뢰 가는 배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Q. 그렇지만, 역시 대중이 재미있어 하는 지점은 의외성의 발견이다. 예를 들어, ‘승부의 신’에 갑자기 출연한 것은 정말 의외였다. 예능 진출을 하다니, 전혀 예상 못한 행보였다.
이재윤 :
‘승부의 신‘은 갑자기 찾아온 기회였다. 대결구도로 양 팀이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는 형식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고, 항상 전에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하고,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물론 그런 시도들이 늘 성공적이지 만은 않지만, 그것마저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Q. 하긴 그러고보니, 래퍼였던 화려한(?) 이력도 있었지.
이재윤 :
아 그것만은 제발(웃음)

Q. 혹시 흑역사?
이재윤 :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써도 괜찮다. (옆에 있던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흑역사까진 아니고 고동색 정도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재윤

Q.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당신의 의외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재윤 :
글쎄요.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숨어있는 나의 모습들은 있다. 가령 친구 앞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편하고 가벼운 모습, 혹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어두운 면들도 있다. 배역을 통해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Q. 참 , 영화 ‘관능의 법칙’을 촬영 중이다. 지금까지와의 행보와는 굉장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낼 것만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이재윤 :
다르죠. 매 작품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하는 사람은 인간 이재윤이니까, 나의 모습으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나의 시선으로 보며 행동하니 비슷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의 모습은 예전 가족극에서나 최근의 ‘무정도시’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Q. 혹시 19금 신도 있나.
이재윤 :
강렬한 장면들이 많다는 정도? 흐흐흐.

Q. 관능의 이재윤을 발견하게 되겠군. 기대가 크다. 그러고 보니 변화의 기점으로 기록하기도 좋을 30대의 문턱에 있다. 처음 살아본 서른살의 인생은 20대의 그것과 많이 다르던가.
이재윤 :
별로. 내가 서른이구나 이 정도다. 실은 20대 후반을 너무 숨가쁘게 달려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서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아마도 조금씩 숫자를 더해갈수록 달라지지 않을까.

이재윤

Q.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의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작품 선택 기준, 그리고 스스로가 느끼는 궁극적인 목표점은?
이재윤 :
작품으로 선택하는데 있어 큰 기준은 없다. 예전에는 작품의 선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선택해주는 작품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요즘은 늘 ‘재미있을까?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배우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작품속의 나를, 그리고 그 과정을 상상 해본다. 결과는 항상 상상한 것과는 다르지만, 내가 선택하고, 나를 선택한 작품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임하려 한다. 나의 목표는 꾸준히 즐기며 작업하는 것이다. 선택받는다는 것은 배우에게 너무나 감사한 것이기에 운명처럼 다가와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좋은 작품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보다는, 그 과정이 행복했으면 한다.

글, 편집.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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