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 마더스’ 스틸
‘하우스 오브 카드’의 냉혹한 정치 세계에서 안방마님 노릇을 톡톡히 하고, ‘불륜’ 권장하는 ‘투 마더스’에서는 꽃미남 소년의 마음을 훔친다. 그녀의 아찔한 욕망은 끝이 없다.영화 ‘음모자’ 스틸
만약 2000년대 만들어진 최고의 스포츠 영화를 꼽는다면, 0.5초도 망설이지 않고 ‘머니볼’이라고 외치겠다. 실화에 기반을 두었지만 휴머니즘의 진부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야구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이다. 젊은 단장 역의 브래드 피트도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줬다. 다만, 한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브래드의 전 아내로 나온 여배우가 너무 조금 출연한다. 그녀는 금발의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맨발로 딸을 찾기 위해 전화를 한다. 고작 2분만 등장하면서도 브래드와 묘한 감정적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머니볼’을 보다가 끝내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뭐야, 로빈이 왜 더 안 나와!” 내가 간절히 원한 그 여배우는 로빈 라이트였다. 1966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태어난 로빈은 열네 살 때부터 전문 모델로 경력을 쌓았다. 1987년 판타지물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아름다운 소녀 버터컵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플레이보이’, ‘토이즈’, ‘포레스트 검프’ 등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지만, ‘헬스 키친’(1990)에서 만난 숀 펜과 동거를 하다가 1996년에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2010년까지 로빈 라이트 펜으로 살았다. 숀과 헤어진 후, ‘음모자’의 영화 크레딧부터 로빈 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갔다. 물론 두 아이의 엄마이자 대배우의 아내로 살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연기생활을 계속 했다. 하지만 ‘펜’ 시절은 오직 조연에만 익숙한 배우로 머물렀다.영화 ‘하우스 오브 카드’ 스틸
역시 로빈의 진가는 주연을 맡을 때 더욱 돋보였다. ‘음모자’에서 링컨의 암살을 공모한 아들을 둔 어머니 메리로 등장해,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신념을 보여줬다. 스크린을 자신의 숨소리로 전염시키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같이 등장한 에반 레이첼이 그저 풋내기로 보일 뿐이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미카엘(다니엘 크레이그)을 짝사랑하는 편집장 에리카로 나오지만, 불멸의 주인공 리스베트(루니 마라)가 있으니 미카엘은 그녀의 차지가 되지 못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걸 보고, 크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정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로빈에게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의 아내 클레어 캐릭터를 맡긴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케빈과 로빈의 부부 커플은 진정 최고의 조합이다. 이것만으로도 핀처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클레어는 1회부터 좌절한 남편에게 다시 기합을 넣어준다. 그녀는 결코 여리고 닭살 돋는 위로를 하지 않는다. “내 남편은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단호하게 밀어붙이면서, 남편에게 실패에 대해 화를 내라고 충고한다. 몇 개의 대사와 강인한 태도로, 남편을 위로하는 특별한 기술을 지녔다는 것을 과시한다. 시크한 숏 컷에 실크 가운을 거친 그녀는 “난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며, 우아하면서도 강한 자신감을 마음껏 풍기고 있다. 얼마나 정치적 야망이 큰 지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마치 남편의 작전 참모 같다. 로빈은 이렇게 수읽기에 능한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한마디로 그녀는 퍼스트레이디의 카리스마를 지녔다.영화 ‘더 콩그레스’ 스틸
최근 로빈의 영화도 흥미로웠다. 하나는 부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더 콩그레스’로, 할리우드 스타 로빈 라이트가 자신의 이미지를 영원히 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영화사에 판다는 스토리다. 그러니 그녀는 로빈 라이트로 등장한다. 다만 로빈은 재능을 낭비한 배우라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전제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숀 펜 때문에 재능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꽤 멋진 설정으로 보였다. 영화 속에서 로빈은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포스터를 보면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중반 이후, 미래로 이동하면서 극영화는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전환된다. 광대뼈나 사각의 얼굴을 강조한 로빈의 만화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미래의 비참함(가상현실)을 깨닫고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표정이 무척 압권이다. 우린 항상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는 곧 극장에서 개봉할 ‘투 마더스’이다. 그녀(로즈)와 나오미 왓츠(릴)는 여기서 서로의 아들을 탐한 엄마로 등장한다. 이 파격적인 영화의 백미는 이안(자비에르 사무엘)이 로즈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자비에르와 키스하는 로빈의 감성은 무척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그녀는 ‘절제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몇 번의 망설이는 키스로 표현하면서 어린 남자 배우를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역시 그녀는 내면을 강렬하게 담아낼 줄 아는 배우다. 우울과 비애에 찬 그녀의 눈빛을 보면 빠져들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녀는 회춘을 선사한 어린 연인에게 “아무리 너라도 늙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속삭인다. 맞다. 어느새 그녀는 40대 중반이 되었다. 외향적 아름다움은 다소 빛을 잃었지만, 주름 사이로 향기로운 원숙미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