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스틸



나영석이 할배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들은 (예능의 영역 에서는) 다만 한 명의 할배에 지나지 않았다. 할배들은 파리로 가서 꽃이 되었다. 스위스에서도, 대만에서도 꽃이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화알짝 핀 꽃할배로 만개하게 되었다. 해바라기 직진순재, 맨드라미 신구야형, 붉은장미 낭만근형, 나리나리 막둥일섭. 그래, 인생은 70부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그나마 김병욱 PD의 손에 야동순재가 된 이순재 할배를 제외하고는 3명의 꽃할배들은 드라마 속 근엄하거나 혹은 인지한 아버지, 할아버지였다. 우리는 네 분의 할배를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는 몰라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변명해보자면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니까.

그러나 다행히 더 늦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한 영역으로 할배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나영석 PD 덕분이다. KBS를 퇴사하고, CJ E&M으로 적을 옮긴 나영석 PD는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평균연령 76세의 하늘같은 중견배우들에게 유럽 배낭여행이라는 미션을 내린다. 상황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미션이기에 과거 ’1박2일’에서의 복불복처럼 별다른 미션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불거진다. 그 안에서 할배들의 캐릭터가 도드라진다.

파리를 즐기는 할배들

가장 형인 이순재 할배는 끊임없이 직진한다. 우리시대 할아버지의 표상이다. 언뜻 외골수로도 보이긴 하나, 감동의 순간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78세의 나이에도 정정한 걸음걸이도 그렇고 사소한 서양의 문물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꼼꼼하게 보는 모습 그 자체가 그러하다. 계셔주시는 것만으로 든든한 존재인 것이다.

둘째 신구 할배는 어떠한가. 직진순재와 막둥일섭 사이 중재의 역할을 한다. 실은 어딘가 에서는 호령을 쳐도 어색하지 않을 존재인데, 할배들의 세계에서 신구 할배는 바라만 봐도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번지는 애틋한 존재가 돼버린다. 게스트 하우스 카페테리아에서 불편하게 아침식사를 하던 순간, 당장 뛰어가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 짜장라면을 끓이는 법을 정확히 알면서도 자신 없어 하는 모습에 그 어깨를 주물러드리며 “맞아요! 할아버지”라고 하고 싶다.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일찍 끝난 여행을 아쉬워 할 때 내 맘 한 켠도 아려온다.

셋째 박근형 할배는 여전히 당당한 풍모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아내를 향한 지극한 마음에 73세라는 할배의 나이는 금세 잊게 된다. ‘꼭 저런 남자를 만나야지’라는 결심을 굳혔다는 여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장난기 가득해 할배들을 얄궂게 놀리곤 하지만, 그래서 여행은 더욱 즐겁고 화기애애하다.

넷째 백일섭 할배는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지만, 프랑스식 족발이라는 말에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모습이 우리를 뿌듯하게 만든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걷는 여행이 유독 힘들어 보이고 사소한 일에도 토라지는 할배이지만, 형들 사이에서면 막내가 되어 심통도 부리고 애교도 보여주는 할배에게 마음이 간다.

이전에는 몰랐다. 할배들이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할배들의 가슴에도 꽃이 피어나고 지는 것인지는 정말이지 알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진짜 우리의 할배, 할매들과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열렬히 갈구하는 짐꾼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럼에도 할배들의 가슴 속 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니 말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CJ E&M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