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없다. 다리도 없다. 전동 휠체어에 의존해 세상을 살아간다. 팔과 다리가 없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세상과 맞이한 오토다케 히로타다다. 소설 ‘오체불만족’을 통해 그의 삶을 접해본 대중도 꽤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팔과 다리가 없는 삶을. 하지만 그는 장애를 단순한 ‘신체적 특징’으로 규정짓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당당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 사람보다 더 뛰어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Q. 한국 제목이 ‘괜찮아 3반’이다. 영문 제목은 ‘Nobody’s perfect’더라. 제목이 맘에 드는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TBS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창작동화 작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2007년엔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한다. 팔다리가 없는 그가 담임선생님이라, 그 반응은 보지 않아도 그려지지 않는가.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소설이 ‘괜찮아, 3반’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영화 ‘괜찮아 3반’은 또 하나의 특이점을 안고 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직접 출연해 자신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실제 인물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감독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영화는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니라 ‘영화’니까 말이다. 어찌됐건 감독은 ‘다름’에 대해 누구 보다 더 가까이에서 체험했을 것이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괜찮아 3반’ 연출을 맡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핑크영화로 데뷔한, 국내의 시각으로 봤을 때 분명 독특한 이력의 히로키 류이치 감독을 직접 만나 ‘다름’을 이야기했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일본 제목도 ‘괜찮아 3반’이다. 영어 제목도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맘에 들었다. 그리고 영어로 ‘괜찮아 3반’을 번역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OK 3반’이라고 해야하나. 하하.
Q.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 이야기에 앞서 감독님 데뷔에 호기심이 갔다. ‘괜찮아 3반’을 봤을 때, 다소 상상할 수 없는 핑크영화 ‘성학대! 그 여자를 폭로한다’가 감독 데뷔작이더라. 핑크영화로 입문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28세에 감독 데뷔를 했다. 20대에 데뷔를 할 수 있는 시장이랄까, 그건 핑크영화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되도록 20대 감독이 되고 싶었고, 20대에 20대가 안고 있는 문제나 20대의 생각을 담고 싶었다. 핑크영화 장르는 영화 안에서 베드신이 4번만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 외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상관없다. 어떤 면에선 굉장히 자유로운 장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반영해서 찍을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타키타 요지로 등 같은 연배 감독 중 핑크영화로 데뷔한 감독들이 많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밝은 미래’(2003)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도쿄 소나타’(2004)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은 ‘굿바이’로 제8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바람의 검, 신선조’로 2004년 일본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 감독이다.
Q. 핑크영화, 국내에선 상업 에로영화(과거 에로비디오 시장과는 다른 부가판권을 노린 19금 영화) 쯤으로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그렇게 데뷔한 감독들이 상업영화 테두리 안에서 성장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반면 일본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왜 그런지 설명해 줄 수 있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기본적으로 핑크영화가 상업영화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상업영화 안에 포함돼 있다. 극장 상영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핑크영화는 4~5일 안에 완성해야 한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영화를 찍는다는 게 힘들고, 기술도 필요하다. 그런 점들을 상업영화에서 살릴 수도 있다. 또 핑크영화는 주로 20대 젊은 감독들의 데뷔 창구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상업영화로 넘어오기 쉬운 것 같다.
Q. 감독과 달리 여배우들은 다른 것 같다. 핑크영화로 데뷔하면 상업영화로 넘어오기 힘들다고 들었다. 또 상업영화로 넘어온 경우 노출 등을 굉장히 꺼려하는 경향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히로키 류이치 감독 : 핑크영화에 출연한 여배우가 다른 상업영화에 나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좀 힘든 부분이 있다. 반면 핑크영화는 아니더라도 신인일 때 노출을 했어도 인기를 얻는 배우들이 있긴 하다. 그래서 모두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는데 일본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거다. 가령 본인은 여러 가지 역을 하고 싶은데 소속사에서 제한할 수도 있고. 한국도 그렇죠?
Q. 듣고 보니 그렇다. CF 등 여러 이유로 제한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핑크영화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정말 찍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핑크영화는 젊은 사람의 자리다. 젊은 감독들에게 좋은 기회인데 내가 찍으면 좀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하. 다른 형태로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Q. ‘괜찮아 3반’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건데 너무 핑크영화만 물어봤다.(웃음) 이제 영화에 대해 물어보겠다. ‘괜찮아 3반’은 실제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소설을 쓰고, 실제 인물 본인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기획을 가지고 왔다. 그걸 하게 된 거다. 하하. 원작을 쓴 사람이 영화에 직접 출연한다는 게 도전적이었다. 굉장히 자극이 됐다. 그래서 연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Q.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를 그린 영화 ‘터치 오브 라이프’도 실제 인물이 주연으로 출연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연출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뒀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실제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성격도, 드라마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아이들까지 나온다. 여러 가지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잘 융합할 수 있을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아이들 같은 경우 처음 연기한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이 연기를 잘 한다기 보다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게 찍었고, 선생님(오토다케 히로타다)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하나의 드라마로 받아들여 질 수 있게 하려고 했다.
Q. 분명 영화적 장치를 위해 허구가 가미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 인물이 주연을 하다 보니 약간의 의견 충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령 너무 미화시킨다거나 그럴 때 말이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게 방금 말한 것처럼 자기 이야기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현장에선 한 명의 배우로서 임하더라. 다른 배우들과 다를 게 없었다. 감독이 연출하는 대로 다 따라줬다.
Q. 그래도 ‘꼭 이것만은 표현해 달라’ 등 특별히 부탁 또는 당부한 게 있었을 것 같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원작을 바탕으로 각본을 쓴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분명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특별한 말이 없었다.
Q. 그렇다면 감독께서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영화 안에서 나오는데 코쿠분 타이치 대사 중 ‘사람들은 달라도 된다’란 게 있다. 이게 가장 중심적인 주제다.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특별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특별하기도 하지만 어찌됐던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특별함이 사고방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Q. (기자의 핸드폰에 적힌 문구를 감독에게 보여주며) 감독께서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 부분을 핸드폰에 적어놓기도 했다. ‘다르다와 틀리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걸 아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주지 않나. 그걸 보면서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 성인들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끼라고 의도한 건가.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영화를 보고 부끄럽다고 느낀 기자가 대단한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운 것을 잘 모를 것 같다. 숙취가 있는지 알면서 또 술을 마시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닐까. 하하. 뭐 그런 게 사람 아니냐.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류다. 방금 ‘다르다, 틀리다’를 말해줬는데 생활하면서 꼭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육도 필요하고, 영화도, 소설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느껴주고, 그런 시각을 가지고 영화를 봐주신 게 감독인 내가 더 감사하다.
Q. 영화를 보면서 문득 장애를 가진 선생님과 3반 학생들, 둘 중 주인공이 누굴까 싶더라. 감독님은 누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누구의 입을 통해 감독님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하하. 코쿠분 타이치가 영화의 화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역할을 통해 비친 아이들과 선생님을 그리려고 했다. 참고로 아이들의 경우엔 일반 드라마에 나오는 아이들 같지 않게 자유롭고, 소란스러운 모습까지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카메라 4대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어른 배우들은 할 때마다 똑같은 연기를 하는데 아이들을 할 때마다 다르다. 그 부분이 재밌기도 했다.
Q. 일본이나 한국의 교육열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3반 학생들은 학업, 공부 보단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이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비판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지금 일본의 현실을 얘기하려는 의도는 분명 있었다. 과거 일본은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한 학급에서 같이 수업했는데 어느 순간 분리됐다. 사실 전인교육, 인간력이라 표현을 하는데 분리하면서 안 좋아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한국도 그런가.
Q. 어릴 때부터 영어 배우고, 학원 다니고. 영화 속 3반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무거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즐겁게 학교 생활하는 것도 좋구나, 이런 것도 교육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Q.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감독님이 다수의 국내 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국내의 수많은 영화제가 감독님을 자주 초청하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정말 왜 그럴까요. 음.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서가 아닐까요. 하하하.
Q. ‘괜찮아 3반’ 같은 작품은 절대 이상한 영화가 아니다. (웃음) 한국에 자주 찾는데 그러다 보면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혹시 그런 생각은 안해보셨나. 그리고 혹시나 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좋아하는 여배우는 ‘린다린다린다’ 배두나 씨다. 그리고 한국에서 (작품도) 하고 싶고, 흥미를 갖고 있다. 음악과 관련된 청춘영화도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Q. 배두나 씨는 한국에서도 물론 좋은 배우지만 해외 감독님들 눈에 특히나 더 인상이 강한가 보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아! 그런가. 그렇다면 배두나 씨 말고 한국에 좋은 배우가 누가 있나요? 인디 영화에 많이 나오긴 하지만 김꽃비 씨는 어떤가요.
Q. 부산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전주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는 다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괜찮아 3반’도 서울청소년영화제에 초청받지 않았나. 감독님의 눈으로 바라본 각각의 영화제 특색을 말해달라.
히로키 류이치 감독 : 전주는 예술영화적인 느낌이 나고, 부천은 판타스틱 영화제니까 판타스틱하고, 부산은 규모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하. 굉장히 성격이 다르고, 흥미롭다. 나만의 느낌일 수 있지만 관객들이 굉장히 따뜻하게 (내 영화를) 봐주더라.
Q. 영화제 때문에 한국을 자주 찾아서 한국이 익숙하겠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 한국하고 일본, 기본적으로 비슷한 느낌도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동시에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다. 다만 SM(사도히즘, 마조히즘) 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한국에 오면 못 찍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하하.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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