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 메인 포스터

대한민국 최고 스파이 김철수(설경구). 하지만 마누라 영희(문소리) 앞에선 쩔쩔 매는 평범한 남편일 뿐이다. 스파이란 사실을 감춘 채 출장을 다녀야 하는 철수는 2세를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영희를 남겨두고 또 다시 태국 출장을 떠난다. 그런데 태국에서 작전 수행 중 철수는 의문의 꽃미남 라이언(다니엘 헤니)와 함께 있는 영희를 목격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라이언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에 철수는 마누라와 작전 임무, 두 가지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15세 관람가, 5일 개봉.

황성운 - 코믹과 첩보의 결합, 허술함과 웃음의 줄타기. ∥ 관람지수 6 / 코믹지수 7 / 첩보지수 5
기명균 - 영웅 한 명의 지루한 원맨쇼 대신 캐릭터의 합으로 만드는 웃음. ∥ 관람지수 7 / 코믹지수 8 / 첩보지수 6

영화 ‘스파이’ 스틸

황성운 : ‘스파이’는 코믹첩보액션이다. 코믹도, 첩보도, 액션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모든 게 빛나진 않는다. 가장 빛을 발하는 건 배우들의 만들어내는 찰진 웃음이다. 첩보는 다소 허술하고, 액션은 평범하다. ‘코믹’이란 메인 요리 안에 ‘첩보액션’이란 양념이 첨가된 모양이다. 그 맛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 같다. 메인 요리만 생각한다면, 온 가족이 함께 맛있게 즐기기에 ‘딱’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도 곳곳에서 발각되지만 귀엽게 봐줄만 하다. 영화 ‘해운대’, ‘하모니’, ‘퀵’ 등을 제작한 JK필름 작품이란 점을 상기하면, 이 영화의 느낌과 분위기가 그려진다.

‘스파이’의 웃음 타율은 상당히 높다. ‘야쿠르트 요원’ 라미란은 나올 때마다 ‘빵빵’ 터진다. 다니엘 헤니를 향한 라미란의 행동과 대사 그리고 표정은 ‘진심’처럼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다. 그래서 더 웃기다. 애드리브도 상당하다. 간혹 등장하는 라미란과 달리 시종일관 나오는 문소리도 높은 웃음 타율을 자랑한다. 문소리가 이렇게 웃긴 배우란 사실, 대중은 알았을까. 작정하고 웃긴 문소리의 활약은 칭찬해 줄만하다. 또 설경구, 다니엘 헤니 등 극 중 다른 인물들이 때론 문소리와 라미란의 웃음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분명 타율은 높지만 극 중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보다는 개인기에 의존한다. 뜬금없는 상황에서의 웃음들이 대부분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어떤지는 별 상관없다.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품은 것 같다. 첩보와 웃음, 따로 논다고 보면 된다. 캐릭터의 설득력도 떨어진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 그리고 그 상황에서조차 ‘웃기려고’ 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허술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웃음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술한 지점을 ‘애교’로 봐주고, 넘어갈 만하다. ‘올드’한 유머 코드도 잘 먹혀들어간다.

‘스파이’의 뼈대인 첩보 역시 ‘낙제’ 수준이다. CIA, 북한, 일본, 중국 등 다국적 스파이를 펼쳐놓은 초반부는 그럴싸하다. 빠른 전개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초반에 펼쳐놓은 첩보전 요소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점점 코믹으로 무게 중심이 쏠린다. 치밀함과 탄탄함은 멀어져만 가고, 코믹을 위한 무리한 상황 설정들이 이어진다. 다니엘 헤니 역시 첩보전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문소리와 라미란이 만드는 웃음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완성도 측면에서 보자면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더라도 곳곳에 터지는 웃음은 대중들의 구미에 제대로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제대로’ 웃기니까. 이거 하나만큼은 보장된 영화다.

영화 ‘스파이’ 스틸

기명균 : ‘코믹첩보액션’이라는 홍보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스파이’는 코믹과 액션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영화다. ‘추석 특수’를 고려해서인지 첩보액션보다는 코믹에 방점이 찍힌다. 철수의 직장 상사 진실장(고창석)은 끊임없이 ‘국가의 운명’이라는 명분을 얘기하지만 그마저도 우스꽝스럽다. 산만하게 등장하는 CIA와 북한, 일본, 중국의 스파이들은 글로벌한 분위기를 내는 데에만 활용될 뿐 그들 없이도 스토리 전개에 큰 문제는 없다. 핵심은 철수가 몸담고 있는 ‘반(半)공무원’ 조직과 그의 마누라 영희다. 철수가 중심이 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그 작전 수행 과정에 영희와 라이언이 얽히면서 코믹 요소가 더해진다.

억척스러운 영희를 연기한 문소리는 작정한 듯 코믹 연기를 쏟아낸다. 경상도 사투리로 남편을 닦달하는 장면, 꽃미남 라이언이 접근하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 위험천만한 작전에 휘말리면서도 겁내기는커녕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는 장면 등 문소리는 등장할 때마다 ‘큰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문소리의 코믹 연기는 ‘스파이’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코믹 영화라지만 작전에 휘말려 철수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 영희의 태도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을 수 있나. 영화 중반까지 영희를 보며 터뜨렸던 폭소가 후반부로 가면서 ‘실소’로 바뀔 위험이 있다. 문소리의 뛰어난 연기가 위험 요소를 잘 극복했다. 다행이다.

출연 배우들의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설경구의 고군분투 대신 다양한 캐릭터가 저마다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철수 곁에서 작전 수행을 돕는 진실장의 비중은 철수와 영희 못지않다. 사실 진실장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이렇게 무책임한 인간이 있나 싶지만 고창석의 물오른 코믹연기 덕분에 밉지가 않다. ‘잘생긴 악당’ 라이언을 연기한 다니엘 헤니는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압도적인 비주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역할에 몰입이 잘 될 수밖에 없었다”는 문소리의 말에 공감하는 여성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주연 배우들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얼굴이 ‘야쿠르트 요원’ 라미란이다. 짧게, 자주 등장해 웃음을 유발하는데 억지스럽지 않다. 극본에 있었던 건지 애드리브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대사들을 놓치지 마시길.

사실 ‘스파이’의 영화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노련한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구멍을 훌륭히 메운다. 보통 스토리에 구멍이 많으면 코믹한 장면의 재미도 반감되기 마련이지만 ‘스파이’는 예외다. 조금 신기한 영화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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