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왕가위 ‘중경삼림’ 中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는 엽문(양조위)의 이야기다. 아니다. 엽문과 그 시대를 살다 간 무인들의 이야기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대종사’는 궁이(장쯔이)의 이야기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 유명한 피천득 시인의 글이다. 어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반짝이다-부식되고-소멸하는 흔한 사랑이 아닌, 평생 같은 온도로 머무는 사랑. ‘일대종사’를 보며 생각했다. 궁이(짱쯔이)의 사랑이 그러하지 않을까하고.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의 대사가 궁이에게로 왔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륙을 호령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물고 늘어지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인 것도 없으니, 추측은 여기까지 하자. 다행이라면 궁이의 아버지, 그러니까 무인들이 우러러보는 무인인 궁(宮)가의 궁대인(왕경상)은 남아선호사상과 결탁한 인물이 아니었다. 딸에게 무예를 가르쳤고, 궁가 64수를 전수했고, 세상을 보여줬고,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 주려 했다.(심지어, 딸을 기생집에까지 데려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궁대인은 딸이 무림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만큼은 유예시켜왔다. 궁대인의 의하면 무술은 ‘자신을 보고, 천지를 보고, 마지막으로 중생을 보는 것’이다. 그 단계를 밟는 과정에서 딸이 떠안게 될 외로움을 궁대인은 짐작했으리라. 모두의 연인으로 가진 것을 내어주며 사느니, 한 남자의 여자로 평범하게 살기를 아비는 원했다. 효녀 궁이는 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딱 두 번. 딱 두 번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한 번은 패자의 예를 갖춰 엽문을 대접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오히려 (엽문에게) 대결을 신청했을 때. 또 한 번은 ‘복수하지 말라’는 유언을 어겼을 때. 후자를 통해 궁이는 죽음의 그림자를 만난다. 그리고 전자를 통해 평생의 사랑을 만난다.
존경하는 아버지가 엽문에게 패하자, 자존심이 상한 궁이는 엽문에게 대결을 청한다. 영춘권의 대가 엽문과 궁가 64수의 유일한 후계자 궁이는 그렇게 만난다. 불산의 금루에서. 고요한 적막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 안에서. 이내 벌어지는 결투.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들이 펼치는 무술은 춤 같다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춤이다. 원 스텝, 투 스텝…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고, 밀고, 당기고, 스치듯 희롱한다. 이 와중에 엽문에게서 배어나오는 절제와 배려를 궁이가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육체를 통해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 춤이라면 지금의 이 무예는, 아니 이 유희는 그와 그녀를 잇는 감정선이다. 섹스보다 강렬한, 충만한, 황홀한. 이 기억은 궁이의 온 몸에 들러붙어 전 생애를 포섭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
아마 궁이는 짐작했을 것이다. 이런 순간, 다시는 없을 거라는 걸. 이런 충만함, 다시 만나기 힘들 거라는 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의미를 얻는 것이다. 사랑해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을 다르게 부르는 ‘짝사랑’, ‘외사랑’ 이라는 단어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수상한 세월 속에서 궁이가 선택한 건 바로 혼자 하는 사랑, 버텨내는 사랑이었다. 첫사랑에 빠진 여자가 저지를법한 이기심과 소유욕을 궁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다만 인내하고 홀로 바라보고 그가 어딘가에 있음에 안도하며 또 그렇게 살아갈 용기를 얻을 뿐이다.
이런 궁이가 불행했노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삶에 후회가 없다는 건 다들 하는 말이에요. 후회가 없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요?”(궁이) 이건 견딘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이에 대한 엽문의 대답이 또 마음을 울린다. “당신과 나 사이엔 내려놓을 은혜도, 원한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짧은 인연일 겁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눈길은 어찌 이리도 깊을 수 있을까. 뜨거운 단어들을 또 어찌 이리도 담담한 어조로 내뱉을 수 있을까, 놀라하며, 그들의 마지막 만남을 바라봤다. 차라리 누가 두 사람에게 싸움이라도 붙여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것이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터치라면 말이다.
왕가위는 ‘일대종사’에서 무예를 통해 삶의 뒤안길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 여인의 지난한 인생을 필름에 새긴다. 이건 지나간 날들에 대한 감독 왕가위의 애틋한 소회이지만, 장쯔이라는 배우를 향한 남자 왕가위의 사랑고백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대종사’는 궁이의 이야기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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