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호의 불쏘시개》
연예계 전반의 이슈에 대해 파헤쳐 봅니다. 논란과 이슈의 원인은 무엇인지, 엔터 업계의 목소리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종교계가 르세라핌의 신곡 'Easy'(이지)에 대해 반발했다. 신곡 뮤직비디오 콘셉트가 '신성 모독'이란 이유에서다. 교회 내부에서 과한 노출과 음란한 표현을 한 것이 지적의 대상이 됐다. 일각에서는 음악적 표현과 해석일 뿐 과한 추측과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22일 다수의 기독교 연합회 관계자들은 텐아시아에 "르세라핌의 신곡 '이지'는 신성 모독"이라며 입을 모았다. 이어 "교회는 하나님의 공간인 만큼 신성한 곳"이라며 "실제 교회가 아니더라도 누가 봐도 교회를 연상시키는 장소에서 부적절한 의상으로 춤을 춘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은 르세라핌의 신곡 '이지'의 뮤직비디오 콘셉트에서 비롯됐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성당 또는 교회 내부로 보이는 장소를 배경 삼았다. 병렬적으로 놓인 의자와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성직자를 연상시키는 보조출연자 등이 이 같은 배경의 종교적 색채를 강화했다.
성스러운 장소로 비쳐지는 장소와 르세라핌 멤버들의 노출 의상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십자가로 대표되는 기독교 상징물은 두 개의 눈으로 된 네온사인으로 대체됐다. 기호학적으로 눈은 고난, 역경, 순수 등을 두루 나타낼 때 쓰인다. 내 스스로 앞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다친대도 길을 걸어'로 시작되는 르세라핌 'EASY' 가사와 맞닿는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곡의 표현이 '눈'이라는 시각적 상징을 통해 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독교의 상징물인 십자가는 반대 의미다. 내 뜻이 아닌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성스러운 장소인 성당을 가로지르는 당당한 발걸음. 온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채 신성의 상징적 색깔인 빨간 막대를 들고 있는 성직자와 극명히 대비되는 노출 의상. 십자가와 대비되는 '눈'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거기서 '나의 길을 가겠다'며 외치는 가사. 르세라핌의 당당한 컨셉트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콘셉트는 르세라핌 활동 전반에 걸쳐 반복돼왔다. 전작 '피어리스' '안티프래자일' 등을 통해서도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르세라핌의 당당함을 보여주기 위해 기독교적 상징을 대척점에 놓았다는 것을 여러 장치를 통해 알 수 있다. 마치 종교적 질서에 반항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이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상기하듯, '우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규칙에 순응하지 않아'라는 그들만의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시도는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실제 종교적 규칙과는 별개로 르세라핌은 신곡 콘셉트의 극적인 대비를 위해 뮤직비디오 배경을 교회로 선택했고, 기독교 입장에서는 왜 종교적 상징성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르세라핌은 '세라핌'이라는 그룹명 자체가 구약성경의 최고위급 천사를 가리키는 히브리어기도 하다. 그동안 종교적 상징을 이용해왔다는 방증이다.
이 처럼 교회의 이미지만을 차용해 극적인 대비 효과를 노린 사례는 이미 해외에서도 있었다. 미국 팝가수 사브리나 카펜터는 자신의 곡 'Feather' 뮤직비디오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성당에서 야한 의상을 입고 춤을 췄기 때문이다. 이를 허락했던 신부는 직위를 잃기도 했다.
반면 교회 건물을 이용한 상업시설은 이미 많이 나오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 같은 장소 활용이 이미지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미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퍼져있단 것이다. 한때 성(聖) 바오로 교회였던 영국 브리스틀의 한 건물에는 예비 어릿광대들을 교육하는 서커스 학교가 들어섰다. 유구한 역사의 예배당이었지만 이제는 나이트클럽으로 변한 암스테르담의 파라디소에서는 팝가수 마돈나가 공연하기도 했다. 로마 시내에서는 중세 성당 건물이 인기 있는 '사크로 에 프로파노'('신성하고 불경스러운') 식당으로 바뀌었다. 장소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이용했을 뿐이지 그 자체로 신성 모독의 의도는 없다는 반론이다.
다만 한국은 아직까지 교회 건물 등의 상업시설화가 익숙치 않다. 일부 교회 건물이 카페로 활용된 적은 있어도 클럽 등으로 바뀐 사례는 없다. 보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기독교로서는 이 같은 뮤직비디오를 불편하게 볼 여지가 있다.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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