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의 입담에 눈길이 가는 이유
배우 윤여정.


1947년생 배우 윤여정은 올해로 76세, 데뷔 58년 차를 맞이했다. 인생의 1/2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연기 활동을 해왔다. 첫 스크린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 '돈의 맛'(2012), 최성현 감독의 '그것만이 내 세상'(2018),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애플 TV '파친코'(2023) 등을 경유해오면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2021년에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낯선 미국 땅 아칸소로 이동해온 제이콥(스티븐 연)의 어머니 순자 역을 맡아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 중에서 윤여정은 손녀 앤(노엘 케이트 조)와 손자 데이빗(앨런 김)와 함께 미나리를 가꾸고 심으면서 이야기를, 문화를, 삶을 전수한다.

아시아 배우로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영화 '사요나라'(감독 말론 브란도)로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우메키 미요시(Miyoshi Umeki) 이후, 64년 만이었다. "여우조연상에 오른 다섯 후보들은 각자의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해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 같다(중략) 故 김기영 감독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는 나의 첫 영화를 연출했던 나의 첫 번째 감독님이다"라고 했던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기록적인 업적만큼이아 윤여정을 수식하는 키워드는 솔직한 입담. 그녀의 사랑스러움과 아우라는 거침없지만 무게감 있는 말들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 영화 '도그데이즈'(2024) 출연? 김덕민 감독과의 의리로
"이번에는 감독님만 보고 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십오야' 영상 캡처본.


지난 26일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나영석의 나불나불'에는 영화 '도그데이즈' 홍보차 윤여정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윤식당'을 함께 했던 나영석 PD와의 인연으로 출연한 해당 영상에서 윤여정은 '도그 데이즈'의 출연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했던 윤여정은 당시 조연출이었던 김덕민 감독이 10년 동안 입봉을 못하던 상황에 "입봉을 하고 나면 나한테 무슨 역할이든 얘기해주면 한다고 했다. 근데 그게 너무 빨리 왔다. 약속했으니까 해야지"라며 의리를 보여줬다. 한번 한 약속은 지킨다는 윤여정은 "산 좋고 시나리오 좋고 역할 좋고 감독 좋고 이런 영화 나한테 안 온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역할이 오겠나. 내가 감독을 도와준다고 하면 그 약속을 지킨다. 그거 하나만 봐야 한다. 걔하고 나하고 손 꼭 붙잡고 전우애가 있다. (김덕민) 감독이 인품이 정말 훌륭했다"라고 이야기했다.


◆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회고
"나는 롤모델이 없었다. 흘러가는 대로 가려 한다"


영화 '도그데이즈' 스틸컷./ 사진 제공=CJ ENM
영화 '도그데이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윤여정은 연기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많은 후배들이 자신을 롤모델로 지목한다는 말에 윤여정은 "롤모델이 필요가 있나 싶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살아야지. 나하고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게 어딨나. 나는 롤모델이 없었고, 후배들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자기 걸 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살아보니까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 흘러가는 대로 가려 한다. 사실 배우는 극한직업이다. 촬영장에 나가면 '삶의 체험 현장' 그 자체다"라고 덧붙였다.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에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윤여정은 "상이라는 것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라는 사람이 문을 두드렸고 어떻게 그 시기에 운이라는 게 딱 맞아떨어져서 내가 불가사의하게도 그 상을 받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기쁜 일이지만 사고 같은 거였다. 그것에 매달려 있으면 앞으로 진행을 못 할 것 같다. 기쁜 사고라고 생각하고 내 일상을 살 수 있었다"라며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의 이유에 대해선 "정직과 솔직은 다르다. 솔직함으로써 남에게 무례할 수 있다. 솔직히 자랑은 아니다. 내가 유머 감각이 있다면 너무 어렵고 힘들게 살아서 모든 걸 웃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처럼 너무 힘들고 더럽게 살아서 나오는 농담들이다"라고 전했다.
◆ 2023년 28th BIFF '액터스 하우스, 윤여정'에서의 겸손한 태도
"나는 결점도 많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 아냐"


사진=유튜브 채널 '비하인드' 영상 캡처본.


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액터스 하우스, 윤여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면서 관객들의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답변했다. 1966년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뒤 같은 해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꾸준히 다양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비결로 "모험정신은 아니고 일찍이 미인이 아닌데 배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각증상이 있었다. 아마 남들이 하지 않은 역할이 내게 왔을 것이고 순응해서 순종적으로 선택한 것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여줬다.

400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관객들에게 윤여정은 "나를 아느냐, 이곳에 왜 왔냐"라고 물었고, 관객들은 "빛나서", "거침없어서", "존경스럽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윤여정은 "존경은 하지 마라. 나는 결점도 많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데 여러분은 예능에서 본 나, 특히 명언하는 사람으로 보더라. 그게 어떻게 명언이 됐는지 모르겠다. 오늘 여기서 나가면 전해 달라. '그 여자 별거 없더라' 이렇게"라고 말하는 재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감히 윤여정이 롱런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면, 자신이 짊어진 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솔직한 입담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춘들과 젊은이들에게 위안과 안도가 되는 것만 같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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